0일 차 - 순례길 준비
1월. 대한민국에서는 엄청난 추위를 피해 다니기 급급할 시기. 그곳에서 서쪽으로 저 멀리 떨어진 유럽 서쪽 끝나라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는 바람막이 하나만 입어도 될 정도의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그 바람을 느끼며 나는 순례자의 길에 필요한 물풀을 사기 위해 ‘데카트론’이라는 대형 스포츠 물품점으로 향했다. 평소 아이쇼핑을 즐기는 나는 여유롭게 넓은 매장 이곳저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비옷, 등산화, 양말, 후레시, 발목 보호대, 무릎 보호대…. 순례자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해 온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나는 이곳에서 약 3주간 걷기 위해 필요한 장비를 다 구매해야 했다. 가격과 품질 등을 따져가며 내게 맞는 제품들을 장바구니에 넣고 계산대를 향해 가고 있을 때 나의 시선을 강탈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 언젠가 나에게 속도감이라는 짜릿한 쾌감을 처음으로 느끼게 해 준 킥보드였다.
어렸을 적, 또래의 친구들이 자전거를 타기 시작할 무렵 나는 금색의 킥보드로 동네를 쌩쌩 누비며 속도감을 즐겼었다. 부모님의 회초리 말고는 무서울 것이 없던 어린 시절 나에게 킥보드는 누구에게도 빼앗기기 싫은 소중한 보물이었다. 24살의 나는 자연스레 그곳으로 몸을 향했다. 어렸을 적의 금색 킥보드는 아니었지만 알록달록한 어린이용 킥보드와 함께 성인용으로 제작된 검은색 킥보드가 있었다.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라고 외치며 밀도를 측정하는 방법을 생각해 냈듯이 나는 전시용으로 조립된 킥보드에 몸을 올리고선 ‘이거다!’라고 속으로 외치며 벌써 킥보드를 타며 순례자의 길을 걷고 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음식을 먹을 때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을 고민하고, 운동을 할 때 ‘더’ 효과적인 방법을 생각하며, 무언가를 할 때 ‘더’ 의미 있게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나의 ‘더’ 고질병이 도진 것이다. 계속해서 발로 걸어야만 하는 순례자의 길을 킥보드를 타고서 좀 ‘더’ 재미있게 걷기로(?) 결정한 것이다. 전시용 킥보드를 가지고 넓은 매장을 한 바퀴 돈 뒤 10만 원에 달하는 킥보드를 고심해서 고른 다른 물건들과 함께 계산을 하고선 상자에 들어있는 킥보드를 그 자리에서 조립하여 매장에서 나왔다. 타일 모양의 돌들로 이루어진 리스본의 인도를 듣기 좋은 마찰음을 내며 달려 묵고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어안 벙벙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안 그래도 많은 짐에 순례자의 길을 위한 짐까지 더해 가방을 싸 보니 과히 장관이었다. 내 몸의 반만 한 거대한 물체가 있었고 나는 이제 이것을 메고서 약 614km에 달하는 거리를 걸어야 했다. 짐을 싸면서도 내일부터 약 3주에 달하는 순례자의 길을 시작하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 거대한 물체를 메고서 내가 산티아고까지 도착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품은 채 나는 크레덴셜(순례자 여권)을 받기 위해 성당으로 몸을 향했다. 좀 헤매기는 했지만 어렵지 않게 3유로에 크레덴셜을 구함으로써 나의 순례자의 길을 위한 준비는 끝이 났다. 이제 내일 아침 스페인의 산티아고를 향해서 걷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나는 순례자가 되는 것이다.
약간의 설렘을 안은 채로 마지막 만찬을 즐기기 위해 어느새 어둑어둑 해진 길을 나섰다. 리스본에 온다면 꼭 먹어 봐야 한다는 해물밥을 기가 막히게 한다고 소문난 두 명의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식당을 찾아가니 벌써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있었다. 가만히 서있자니 웬걸, 이 할아버지들은 먼저 온 사람보다 일행이 많은 순서대로 식당에 들이는 것이 아닌가. 혼자 온 나는 자연스레 우선순위에서 밀려 제일 마지막 순번이 될 수도 있는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꼭 이 음식을 먹고자 했던 나는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한국인으로 보이는 두 명의 여성분이 계셨고 나는 애절한 눈빛으로 정중하게 합석을 제안했다. 할아버지의 스타일을 파악한 두 여성분들도 흔쾌히 제안을 받아 주셨고 우리는 곧 한 명의 동지를 더 받아들여 총 4명이 해물밥을 먹기 위한 기다림을 함께했다.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니 어느새 우리 차례가 되어 들어갔고 식탁에 마주 앉은 우리는 어느새 어색하지 않은 사이가 되어 있었다. 이 먼 타지에서 나와 기다림을 함께한 이들은 지난 유럽 여행 중 짧은 일정의 포르투갈 매력에 푹 빠져 이번엔 오직 포르투갈 여행만을 위해서 날아온 초등학교 선생님 누나 두 명과 방학을 이용하여 유럽 여행을 하고 있는 대학생 동생 한 명이었다.
“재민아, 너는 어떻게 포르투갈 여행을 온 거야? 보통 유럽 여행하는 사람들도 포르투갈까지는 잘 안 오는데.”라고 선생님 중 한 명이 내게 묻는다.
“저는 포르투갈 여행을 온 게 아니라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걸으러 온 거예요.” 하며 나는 나의 계획에 대해서 설렘을 품은 눈으로 장황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의아함과 놀라움이 뒤섞인 표정을 지으며 나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이야기를 마치자 그들은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하듯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선 조심스레 한 번 더 확인을 했다.
“그러니까 정리를 하자면, 너는 리스본에서 산티아고까지 614km을 걷기 위해서 유럽의 서쪽 끝 포르투갈까지 왔고 갑자기 킥보드를 사서는 그 길을 킥보드를 타고 가겠다고?”
“뭐 정리하자면, 맞아요.”
두 할아버지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만들어왔을 해물밥을 음미하며 나는 대답했다.
“종교도 없는 네가 3주 동안 킥보드를 타고 스페인에 있는 종교적 성지를 향해서 614km에 달하는 거리를 순례자가 되어 걷기 위해 이 먼 포르투갈에 왔다라.."
애써 이해하려는 듯이 들릴 듯 말 듯 나에게 왜 포르투갈에 왔냐고 물었던 누나는 웅얼거렸다.
과연, 저렇게 나의 순례자의 길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니 나로서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그러지 말고 오빠도 우리랑 같이 포르투로 가요. 거기서부터 산티아고로 출발해도 되지 않아요?” 두 선생님과 일정이 맞아 같이 내일 포르투로 함께 떠나기로 한 대학생 동생이 내게 물었다.
스스로 순례자의 길을 걷는 것에 대한 답을 생각하고 있던 차에 예상치 못한 제안을 받은 나는 질문을 이해하기 위해서 멍청한 표정으로 눈을 깜박였다.
“그거 좋은 생각이네. 같이 가자.”
“그래그래. 힘들게 걸어가지 말고 편하게 포르투까지 가서 우리랑 재밌게 놀다가 거기서부터 출발해.”
질문을 이해하는 사이 두 누나들도 가세해 동행을 제안했다. 마치 원래 세 명이 함께 여행 온 사람들인 것처럼 어느새 그들은 하나의 그룹이 되어 있었다.
“좋은 생각이긴 한데 당장 내일 출발이고..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들이 좋았던 나는 최대한 완곡하게 거절하기 시작했다.
제안과 거절의 반복이 이어지고 나의 완강함을 느꼈는지 세 여자는 단념하는 듯했다. 순례자의 길을 걸어야만 하는 명확한 이유가 있었거나 그녀들과의 여행이 싫었기 때문에 거절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진짜로 같이 여행을 할까 고민이 될 정도의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거절하고 리스본에서 출발을 하겠다고 한 것은 곧잘 나오는 청개구리 같은 나의 똥고집 때문이었다. 그런데 계속 거절을 함으로써 이상하게도 꼭 이것을 완수해야만 할 것 같은 사명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매력적인 제안을 거절하고 지켜낸 나의 사명.
헤어짐이 아쉬워서일까 해물밥과 함께 마신 와인을 시작으로 우리는 두 번의 작은 술자리를 더 가졌다. 12시가 넘어서야 기분 좋게 취한 모습으로 우리는 헤어짐을 준비했다.
“내일 아침이라도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지 연락해. 언제든지!”
미련이 남은 듯 연락처를 공유하며 한 누나가 이야기했다.
“네! 즐거운 여행 하세요!”
나 역시 아쉬움을 숨긴 채 그녀들에게 힘차게 손을 흔들며 숙소를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