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바람
나는 내가 나무와 같다고 생각했어.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고 한 방향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는.
계절에 따라 그 색과 향이 달라지지만 뿌리내린 근본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어.
사람들을 내 그늘 밑에서 쉬게 하고 비를 막아주는 역할도 할 수 있을 거라 믿었지.
나무가 나이테를 하나씩 두르며 보다 넓게 굵고 단단해지듯이
나도 언젠가는 강한 태풍에 흔들리지도 부러지지도 않을 튼튼한 몸통을 갖게 될 것이라 상상했어.
그런데 아니었어. 나는 나무가 아니라 바람이었어.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 하고 정착하지도 못 하는, 바람이었어.
어느 누구도 감싸주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는
존재하는 듯 존재하지 않으며
누군가에게는 환희를 선물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혹독함을 가르치며
흘러가는 바람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