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잼 매니저 Mar 03. 2020

자본주의에서의 장례식


 새벽 2시경, 해야 할 일을 끝내고 허기를 채우려 라면을 전자레인지에 넣어 돌리고 있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이 시간에 전화를 할 사람이 없는데…. 화면을 보니 엄마였다. 불안하다. 받기가 싫었지만 받아야만 했다. 내용을 알지만 들어야만 했다. “아버지 돌아가셨다. 사장님한테 말씀드리고 집에 오렴.” 고동치는 심장, 떨리는 손, 멍해진 머리. 먹으려고 했던 음식을 모두 버리고 사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잠결에 받으신 사장님은 놀라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난처한 목소리의 사장님은 잠시 기다려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네….” 30분이면 남편 분이 도착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을 듣고 전화를 끊었다. 갈피를 못 잡고 이곳저곳을 서성거렸다. ‘뭘 해야 하지.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할머니와 고모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는 뭔가 느꼈던 걸까? 3번의 신호음이 다 가기도 전에 전화를 받으셨다. 얘기를 들으시고는 “그래. 갔구나. 갔어…. 아침에 고모랑 올라가마.”라고 젖은 목소리로 말하셨다. 옆에서 할아버지가 무슨 일이냐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전화를 끊고 부산 고모라고 적힌 화면을 눌렸다. 받지 않았다. 일본 고모와 미국 고모에게 보이스 톡을 걸었다. 받지 않았다. 안절부절. ‘뭘 해야 하지.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다시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안 되겠는데요. 가봐야 할 것 같아요. 키를 맡기고 가면 안 될까요?” 난감한 목소리의 사장님. “잠시만…. 그럼 밖에 있는 박스 밑에 키를 숨기고 갈래? 옆 가게에 키를 맡기면 혹시 모르니까.” “네. 감사합니다.” 조끼를 벗고 옷과 가방을 챙기고 문을 잠그고 키를 숨기고 집으로 향했다. 걷다가 뛰었고 뛰다가 걸었다. 심장이 마구 뛰었다.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가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수 없어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문은 열려 있었다. 아파트 복도에는 우리 집에서 나오는 불빛만이 유일하게 빛나고 있었다. 낯선 신발, 경찰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는 얼굴 둘. ‘맞아. 집에서 사람이 죽으면 경찰에 먼저 신고해야 한다고 그랬지.’ 아빠는 요 몇 주 동안 그랬던 것처럼 거실에 놓인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누나가 옆에서 울고 있었다. 엄마는 식탁에 앉아 경찰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빠한테 다가갔다. “시체는 만지면 안 된다.” 경찰이 얘기했다. 우리 아빠인데…. 감히 건드릴 생각도 못 하고 감겨있는 눈을 바라보았다. 감정이 솟구쳤다. 가슴속에 울리는 소리가 입 밖으로 삐져나왔고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과학수사대가 우리 집에 왔다. 부검을 하러 왔다고 한다. 해야만 하는 절차라고 했다. 우리가 아빠를 죽였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들렸다. 우리가. 아빠를. “부검을 해야 하니 가족들은 잠시 방안에 들어가 계세요.” 과학수사대 옷을 입은 여자가 말했다. 내 방에는 사촌 동생이 자고 있어 누나 방으로 들어갔다. 부검이 끝나고 엄마와 몇 마디를 나눈 뒤 그들이 떠났다. 엄마는 장례식장을 예약하고 상조회사에 전화를 했다. 주소를 말하고 시신을 운반할 차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다시 아빠 곁으로 모였다. 엄마가 아빠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하고 울었다. 엄마가 울었다. 우리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엄마가. 차가 왔다. 1층까지 운반하는 걸 나보고 도와달라고 했다. 무거웠다. 뼈밖에 남지 않은 사람의 몸이 어떻게 이렇게 무거울 수 있을까. 아빠는 다 비워냈는데. 2달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 했는데. 차에는 한 사람밖에 못 탄다고 해서 내가 탔다. 가는 도중 미국 고모에게 보이스 톡이 왔다. “그래…. 어…. 고모가 갈게. 고모가 갈 테니까 기다려. 알았지? 고모가 갈게.” 고모가 울었다. 나도 다시 울었다. “네…. 네….” 장례식장에 도착하고 운전을 했던 사람이 말했다. “운반비용은 상조에 포함이 되지 않아서 지금 결제를 해주셔야 하는데…. 혹시 카드 갖고 계세요?” “아…. 여기요.” “감사합니다.” 안치실로 아버지를 옮기고 엄마와 누나를 만났다. 우리는 어느 한 사무실로 안내되었다. “방 크기는 어떻게…?, 제단에 올리는 꽃은 어떤 걸로…?, 음식은 얼마나…?” 돈. 돈. 돈. 다 돈과 관련된 것이었다. 이건 얼마, 저건 얼마. 가격을 보고 선택하고 선택해야 했다. 아빠가 죽은 지 아직 몇 시간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선택이 끝나고 장례지도사라는 사람에게 장례식에 대한 절차를 간략히 설명 듣고 집에 가서 짐과 옷을 챙겨 다시 돌아왔다. 검은 옷으로 갈아입고 조문객을 받았다. 상주로서. 한 명, 두 명. 세 명…. 가족들이 왔고 누나의 직장 동료들, 내 친구들이 왔다. 작은할아버지가 쉬지 않고 우리에게 이것저것 이야기했다. “부조를 받는 사람은…. 가족들이 잘 먹고… 주차는…. 어쩌고저쩌고….” …네. …네.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쓰고 싶지도 않고 쓸 수도 없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사람이 왔다. 첫날에는 주로 가족들이 왔고 둘째 날에는 지인들이 많이 왔다. 이틀 연속으로 와 준 사람도 있다. 해외에 있는 자신을 대신해서 어머니를 보낸 친구도 있다. 훈련 중임에도 찾아온 분도 있다. 지방에서, 바쁜 와중에도 잠깐이라도 들르기 위해 와 준 사람들도 있다. 눈물을 함께 흘려준 친구들도 있다. 끝까지 남아준 사람들도 있다. 발인을 도와준 사람들도 있다. 모두 고마운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 때문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꼭 이 빚을 갚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맙고 고마운 사람들…. 잠을 거의 자지 못 했다. 하루도 아니고 3일 밤을 새우려니 죽을 것 같았다. 의자에 앉아 졸다가 조문객을 받고 다시 졸았다. 마지막 날, 작은할아버지가 부조를 일일이 확인하라고 했다. 받은 부조를 모두 꺼내 이름을 적고 그 옆에 금액을 적었다. 모두 고마운 사람들인데…. 금액을 적음으로써 고마운 사람들에게 가치가 매겨졌다. 고마움의 가치가. 3만 원짜리, 5만 원짜리, 10만 원짜리, 20만 원짜리….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잠을 못 자 어지러운 머리가 한층 더 어지러워졌다. 잊으려고 해도 잊히지 않는다. 3만 원, 5만 원, 10만 원, 20만 원….

매거진의 이전글 상실, 그 후의 시간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