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잼 매니저 Jan 08. 2020

탁형의 결혼식

 얼마 전, 부끄러우면서도 따뜻한 경험을 했습니다. 슬픔과 감사함 그리고 여러 복잡한 감정들이 얽히고설킨,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감정을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청첩장을 하나 받았습니다. 삶의 방향은 다르지만, 그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비슷해 평생 함께 하고 싶은 친구의 큰형인 탁형의 결혼식이었습니다. 탁형은 형이 없는 제게는 욕심이 날 정도의 ‘형’이라는 단어에 꼭 알맞은 사람입니다. 저도 평소 “형님, 형님”하며 잘 따르는 탁형은 대구에서 올라와 서울에 있는 제게 직접 청첩장을 전해주었습니다. 저는 대구에서 열리는 결혼식을 무슨 일이 있어도 가야겠다고, 청첩장을 받으며 다짐했습니다. 2~3달 남은 결혼식을 위해 주말 아르바이트 일정을 조율하고, 누나에게 그 날 무슨 일이 었어도 차를 써야 하니 알고 있으라고 통보도 해놨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어느새 결혼식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몇 달 전부터 고대했던 시간이지만, 막상 가려고 하니 고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차를 끌고 4시간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가는 내내 일상에서 인지하지 못 하고 있던 억눌린 감정이 목 위로 뿜어져 나오려고 했습니다. 불안했습니다. 곧 감정이 폭발할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친구와 탁형, 작은 형 내외, 친구의 부모님, 친구의 조부모님을 찾아뵙고 인사를 나눴습니다. 또다시 가슴속에서 감정이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가까스로 화장실에 들어가 다시 감정을 정리하고 진행되는 결혼식을 보기 위해 예식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오른쪽 구석 끄트머리, 있는지 없는지 잘 보이지도 않는 어두컴컴한 곳에서 결혼식의 진행을 지켜봤습니다. 아아, 결국은 감정이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눈가에 조금씩 맺히던 눈물은 저를 발견한 작은 형수님의 손길 한 번에 하염없이 흐르기 시작했고, 입 밖으론 그간 억눌려 있던 흐느낌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예식이 진행되는 20-30분에 걸쳐 펑펑 울었습니다. 친구 가족의 잔칫날인 장남의 결혼식에서 부끄럽게도 감정을 주체 못 하고 말 그대로 뭣 빠지게 울어댔습니다. 그 와중에도 작은 형과 작은 형수님이 제게 “괜찮아, 괜찮아. 아이고 이 어른스러운 놈아.”했던 말이 또렷이 기억납니다. 그 따스한 말과 전해져 오는 마음이, 그 뜨거운 슬픔 속에서 제가 무너지지 않도록 저를 지켜주었습니다.



 저는 대체 왜 그렇게 슬펐을까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지 고작 한 달도 지나지 않아서 일까요. 돌아가신 아버지가 저와 누나의 결혼식을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것이 떠올라서일까요. 아니면 친구의 가족이 너무 완벽하게 행복해 보여서였을까요.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정말 좋은 친구를 사귀었고, 그 친구의 가족 한 명 한 명이 모두 너무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느꼈을 뿐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본주의에서의 장례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