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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 매니저 Feb 15. 2020

상실, 그 후의 시간들


 여러분은 상실 이후 나의 감정에는 아랑곳 않고 무자비하게 이어지는 시간 들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혹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오늘 저는 상실을 겪은 이후부터 계속해서 이어지는, 지금 제가 보내고 있는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저는 꽤나 잘 지내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정을 다 아는 사람들이 보더라도 상실 그 이전으로,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죠.


 허나 글쎄요, 솔직하게 얘기해보자면, 괜찮아진 것이 맞긴 한 건지 앞으로 괜찮아질 것이긴 할 건지 지금까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혼자 있을 때, 문득 상실한 이가 떠오를 때, 그리고 때때로 생각이 많아질 때면 모든 것을 다 놓아 버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모든 행동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맺고 있는 관계들 전부가 무가치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바보 같은 짓. 그럴 때면 모든 것이 바보 같은 짓 같습니다. 


 그리고 감정의 증발. 그 무엇에도 감정이 격동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것에도 출렁이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자연재해처럼 갑작스럽게 감정이 몰아쳐 옵니다. 곪을 대로 곪은 고름이 피부를 뚫고 터져 버리는 것처럼 조절도 안 되고 억누를 수도 없는 감정의 폭발이.


 물론,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삼시 세끼 밥도 먹고, 가끔은 쇼핑을 하기도 하고, 종종 친구들도 만나며, 웃기도 잘 웃습니다. 찾아 헤매던 일상을 찾았고, 나아가고자 했던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뭐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저 살아왔던 방식으로 똑같이 살아가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그렇다고 아무런 노력 없이 가만히 앉아서 슬픔에 잠식당하고 있지 만은 않습니다. 지금처럼 이렇게 글도 쓰고 일상을 웃음, 유희, 장난, 농담, 재미 같은 것들로 채워 털어내려는 노력을 합니다. 그럼에도 감정의 폭발은 어느 때고 찾아오고, 그럼에도 가슴속에 뚫린 구멍은 메워지지가 않습니다. 도대체 이 뚫린 구멍을 어떻게 메워야 하는 것일까요. 누군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대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요.


 그래도 희망이 아예 안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온몸 구석구석에 생기던 염증은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고, 평생 모르고 살았던 무기력증, 만성피로, 무감각, 불면증 등도 조금씩이나마 호전되고 있습니다. 또, 주위 사람들의 배려하는 마음이, 저를 생각해주는 마음의 온기가 전해질 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진동과 떨림이 일어납니다.


 저는 이렇게 상실 후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 얼마 전, 우연히 ‘김영흠’이라는 서울예대 학생이 부르는 ‘가족사진’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원곡자인 김진호 씨가 부른 가족사진 영상을 찾아봤고 또다시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 영상 밑으로 달린 상실한 이들의 댓글들. ‘상실을 겪은 다른 이들은 이렇듯 각자의 방식으로 상실 후의 시간 들을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역시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언젠간 제 글이 다른 누군가에게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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