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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 매니저 Mar 26. 2020

어느새 어른이 되어

어느새 어른이 되어.


학교가 끝나면 어김없이 가게에 들러 “엄마! 500원만!”하던 아이가 어느새 어른이 되어


군인을 아저씨에서 안쓰러운 동생들로 바라본다.


철없던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과 10년 지기가 된다.


유행과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는 자신만의 확고한 취향을 갖는다.


자동차 운전석에 앉아 능숙한 솜씨로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닌다.


옳음을 추구했던 신념을 내려놓고 유불리를 따지며 이익을 잰다.


궁금한 것들로 가득 찼던 세상을 호기심을 상실한 눈으로 바라본다.


한없이 호기롭던 꿈과 이상을 현실과 타협해 점점 작게 만들어 간다.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려 했던 옷차림을 깔끔하고 단순하게 바꾼다.


매일을 함께했던 친구들과 뜸해지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좋아한다.


몸에 좋다는 음식과 다양한 영양제를 챙겨 먹고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한다.


밥과 빨래, 청소 등 집안일을 곧잘 해내며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보다 취미나 관심사가 같은 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어쩌다 올려다본 하늘이 푸르다는 것과 들에 핀 꽃이 꽤나 예쁘다는 것에 새삼 놀란다.


마음 하나면 충분했던 사랑에 여러 조건들을 붙이고 상황을 고려해가며 사람을 가린다.


올려다보던 아빠보다 넓은 어깨, 튼튼한 팔과 다리, 커다란 키 그리고 확신에 찬 눈빛을 갖는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하던 면도를 하루에 한 번씩 하고 거울로 불룩 나온 배를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또래의 친구들이 한 사람의 남편이자 아내가 되고 한 아이의 엄마이자 아빠가 되는 모습을 지켜본다.


피자 한 판, 치킨 한 마리를 예전처럼 단번에 먹어치우지 못하고 기름진 것들을 버거워하는 위장을 갖게 된다.


열렬히 좋아했던 아름다운 배우가 이제는 한 아이의 엄마 역할을 하는 것을 바라보며 세월이 흘렀음을 자각한다.


형, 누나였던 텔레비전 속의 아이돌이 동생들이 되고 나의 아이돌이었던 별들이 지거나 전설이 되는 것을 지켜본다.


세상살이의 고단함과 무서움 그리고 불공평함을 알게 됨과 동시에 아름다움과 따뜻함 그리고 경이로움을 알게 된다.


상종도 하지 않던 사람들의 모습이 자신에게서 느껴지자, 이게 현실이고, 이게 어른이고, 이게 당연한 것이라 자위한다.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했던 시절을 지나 겉모습만 가진 사람이 얼마 지나지 않아 가장 별 볼일 없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술, 담배, 섹스…. 베일에 싸여 욕망을 자아냈던 금단의 영역에 있던 것들이 이제 더 이상 신비롭고 욕망이 들끓는 세계가 아니게 된다.


‘몸이 예전 같지 않네’, ‘요즘 애들’, ‘그때가 진짜 좋았는데’ 따위의 말을 입에 달고 살고 교복을 입고 학교를 오가는 아이들을 보며 향수에 젖는다.


정의와 평등, 도덕과 윤리, 확고한 신념 같은 말들이 상대적이고 유동적임을 깨닫고는 더 이상 그러한 말들에서 울림을 느끼지 못 하는 사람이 된다.


예리하고 날카로웠던 성질머리가 깎이고 닳아 더 이상 위협적이지 않게 되고, 가볍기만 했던 어깨가 책임이라는 무게를 알게 되면서 점차 무거워진다.


한 없이 높고 멀게만 느껴졌던 선생님과 서로의 속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관계가 되고, 또래들이 그 위치에 서서 무언가를 가르치는 모습을 바라본다.


단단하고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부모가 나와 같은 한 명의 나약한 인간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들이 가진 아픔과 설움 그리고 희생을 조금씩 체감한다.




몇 시간이고 길바닥에서 소리 내어 울던 그 아이가 어느새 어른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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