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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 매니저 Oct 24. 2020

돈가스와 스파게티

 청계천을 거닐다 그가 그녀에게 말했다.
 “이곳에 올 때면 항상 떠오르는 음식이 있어.”
 “뭔데?”
 “돈가스랑 스파게티.”
 돈가스랑 스파게티, 라고 그녀가 되물었기에 그는 다시 분명하게 말해주었다.
 “응. 돈가스랑 스파게티.”
 “왜?”
 “초등학교 때 가장 친하게 지낸 친구 어머니가 저 어딘가에서 일을 하셨거든.”
 남자가 주위의 고층 건물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응.”
 “그래서 우리는 주말이면 자주 지하철을 타고 거길 찾아갔어. 그러면 어머니는 항상 그 건물 지하에 있는 식당에서 돈가스랑 스파게티가 담긴 메뉴를 사주셨지.”
 “매번 그것만 먹었어?”
 “응, 언제나 돈가스와 스파게티였어.”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었어?”
 음, 하며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손으로 입 주위를 어루만졌다.
 “사실은 그게 기억이 나질 않아. 주말이면 그 친구와 지하철을 타고 이곳에 와서 어머니를 찾아갔고 어머니는 항상 그걸 사주셨던 건 분명한데 그게 맛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우리가 그걸 먹고 싶어 주문했던 건지 아니면 그냥 어머니가 시켜주셔서 먹었던 건지, 기억이 잘 안 나.”
 남자는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이상하네.”
 여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치, 이상하지? 매번 그 음식을 먹었다는 사실 외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데 올 때마다 또렷하게 그게 생각난단 말이야. 풀었던 문제의 공식이나 원리는 기억하지 못 한 채 정답만 떠오르는 기분이랄까.”
 “… 쓸데없는 것만 남았네.”
 “쓸데없는 것만 남았지.”
 그가 미소 지으며 그녀의 말을 반복했다.


 입추에 이르렀지만 날은 여전히 습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오랜만에 찾아온 깨끗한 공기를 즐기기 위해 거리에 나와 주위가 북적거렸다. 그들이 정통교를 지나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땐 사위가 느리지만 착실하게 저녁 하늘을 녹여내고 있었다.
 “삶이 불행해.”
 멍하니 흘러가는 냇물을 바라보던 그녀가 무심하게 뱉었다.
 “때때로 사회가 우리에게 너무 무리한 걸 요구한다고 느낄 때가 있어.”
 무릎을 모아 감싸 안고 있던 그녀가 고개를 돌려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들어봐, 하는 눈으로 그가 그녀의 눈에 시선을 맞추었다.
 “이를 테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질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어떤 목적을 위해서만 사용하게끔 분위기를 몰아가는 거야. 그러면 우리는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르는 쥐떼처럼 맹목적으로 갖고 있는 모든 걸 쏟아부어가며 그걸 좇는 거지. 마치 부덴브로크 가의 엘리자베스가 가문의 명예를 위해 그녀 자신과 재능을 소진해버렸던 것처럼.”
 “그게 지금 내가 불행한 이유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아니.”
 “그럼?”
 “음, 너는 엘리자베스처럼 재치 있고 총명하니까 그녀와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한다면 조금은 덜 불행하지 않을까 해서.”
 “그녀는 어떤 삶의 방식을 택했는데?”
 “사회적 분위기, 가문의 명예, 가족들의 요구 뭐 그런 것들에 맞게 자신을 끼워 맞췄어.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 했음에도 결국엔, 그렇게 되어버렸지.”
 “나는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데?”
 “그래?”
 “응.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고. 안 그래 보여?”
 생각해보니 그렇네, 하며 그는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그를 보며 그녀는 불행이 조금은 줄어든 것 같다고 느꼈다.


 냇물이 쉼 없이 흘러가듯 시간은 흘러 어느새 주위가 어둑해졌다. 천을 따라 북적이던 사람들은 어딜 갔는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몇몇 커플들만이 여전히 자리를 지킨 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슬슬 일어날까?”
 “응. 벌써 어두워졌네.”
 여자의 대답에 남자가 엉덩이를 툭툭 털며 일어났다.
 “근데 있잖아, 생각해봤는데.”
 계단을 올라 정류장을 향해 걸으며 생각에 잠긴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응?”
 “아까 삶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 말이야.”
 “아아, 응.”
 “아무래도 나도 엘리자베스처럼 내게 요구되는 것들에 맞춰 살아가는 것 같아.”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데도?”
 “글쎄, 그건 모르겠어. 예전에 내가 어떤 삶을 바랐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 지금의 삶이 정말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내 삶을 곱씹을수록 명확해지는 건 나도 그녀와 다를 바 없는 삶 속에 있다는 느낌뿐이야.”
 “끼워 맞춰진?”
 “아마도.”
 “음, 말하자면 쓸데없는 것만 남았다는 거네.”
 장난기 어린 미소로 남자가 말했다.
 “돈가스랑 스파게티만 남아버렸네.”
 그녀도 그를 따라 피식, 하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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