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알게 모르게 변해 뒤돌아보면 어느새 변치 않은 것을 찾기가 더 힘든 것처럼, 돌아보니 나 역시 참 많은 것이 변해있다.
하교 후 매일같이 가게에 들러 “엄마, 500원만!” 하곤 동전을 받아 문방구 앞에서 게임을 하던 꼬마는, 중-고-대학교를 훌쩍 졸업하고는 어느 순간 군대를 전역하더니 직장인으로서 사회의 일원이 되어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다.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서른을 앞둔 나이다.
이젠 영화든 책이든 음악이든, 새로운 것을 찾기보다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들을 다시 찾는다. 내게 인상 깊게 남아있는 것들보다 더 깊은 인상을 줄 작품을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좋은 작품을 만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인간관계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평생을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친구이자 동반자로 살아갈 것이라 생각했던 많은 이들이 사라졌다. 소중한 추억과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소중한 사람들이었는데, 놀랍게도 심경의 변화가 크지 않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무뎌지는 것과는 별개로 마음의 어딘가가 고장이 난 것 같다. 그럼에도 아직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존재하고, 분에 넘치는 사람들을 새롭게 알게 되기도 한다.
돈, 돈에 대한 태도가 크게 변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냥 살면 되지, 하는 나른한 삶을 살고자 했었는데, 현실은 얼마나 지독한지. 그런 삶이 주어지지 않은 나 같은 사람에게 그, 별 것 아니라 생각했던 그 나른한 삶이 얼마나 향유하기 어려운지, 상상도 못 했었다. 지금은 안다. 입고, 먹고, 자는 최소한의 것들조차 욕심내며 쟁취하지 않는 한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지는, 하잘 것 없는 허상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것들이, 수많은 중요한 것들이, 판단되고 결정되는 지를. 발버둥 치며 살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하는 세상에서, 허상으로부터, 내가 살아내고자 하는 삶을 지켜내기 위해 마음을 굳게 먹어본다.
세상은 아름답지 않고, 불공평하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보이는 것들의 이면에 얼마나 추악하고 더러운 것들이 만연한지, 그리고 그런 것들에 절여져서 인식조차 못 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모르고 살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으면서도, 생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몇몇 인간들의 삶처럼은 절대로 살지 않겠다, 는 이 신념을 지켜낼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멀리서 보면 하찮고 안쓰러운 인생들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칠 땐 얼마나 지독하던지. ‘나의 20대처럼, 30대도 지독한 사람이, 삶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문장을 깊이 새겨본다.
.
.
.
2019년 이후로, 나는 항상 죽음을 가까이에 두고 자주 들여다보며 한 해가 끝나갈 즈음이면 그것을 마주한다.
흑색종으로 발가락을 하나 잃은 뒤 몇 년 동안이나 삶에 욕구를 보이지 않던 아빠가, 현실로 다가온 죽음 앞에 갖지 못 한 생에 대한 미련을 날 것 그대로 내비쳤을 때 나는 적잖이 당황했으며 혼란스러웠다. 살아온 인생이 너무나 후회된다며 후회 없는 삶을 살라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으로 각인된 11월 24일. 나는 매해 11월이 다가올 때면 그때의 아버지가 떠오르고, 자연스레 내 생의 마지막을 그려보게 된다. 그리곤 그때 내렸던 나의 결심에 따라 자문하고, 답한다.
나는 아빠처럼 죽지 않을 거야. 내 마지막은 후회 없이 죽음을 마주할 수 있을 때야.
지금이 그때일까?
아니, 아직 아니야.
.
.
.
서른이면 단단하고 성숙한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나는 아직 단단하지도 성숙하지도 못하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나답게 살아내려 발버둥을 멈추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