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리브 Jun 12. 2022

나는 무엇으로부터 위안받는가

 

“돈 많이 주고, 의미 없는 일은 없을까?”

세 번째 영화를 개봉한 중년 여성 감독 지완. 흥행은 계속 실패하고, 아들은 엄마 영화가 재미없다고 한다. “돈 많이 주고 의미 없는 일”을 하고 싶지만, 현실은 돈은 적고 의미 있는 일뿐이다. 한국 1세대 여성영화감독의 영화 복원 작업에 참여하게 된 지완 감독의 여정이 펼쳐지면서 과거와 현재가 평행하듯이 하나씩 겹쳐진다. 영화 <오마주>의 내용이다.


영화 <오마주>에서 한국 1세대 여성영화감독의 모습은 현재의 지완 감독과 다르지 않다. 각기 다른 시간에 있지만, 평행이론처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두 사람.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나의 모습이자, 내면이었다. 지금, 나의 상황 때문일까? 퇴사를 하고, 일을 멈춘 지금. 수시로 상념에 빠지는 요즘의 나에게 영화 <오마주>는 생각보다 큰 위안과 격려를 안겨주었다.


“이 일을 내가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자문하는 감독의 모습은 매번 일을 할 때마다 반복되는 나의 고민이었다. “영화 일 말고, 뭐 할 건데?”라는 질문은, 현실의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아등바등 대는 내가 자주 듣는 말이었다. “끝까지 살아남아”라고 누군가 감독에게 묵직하게 건네는 말은, 어쩌면 내가 듣고 싶은 말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영화를 보면서 순간순간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내가 미처 답을 고민하기도 전에, 든든한 위로와 격려를 받았다. 끝까지 살아남으라고.


어느날, 후배가 물었다.

“사람들이랑 부딪치면서 일하는 게 힘들지 않아요?”

한때 같이 일했던, 지금은 꽤 괜찮은 회사에서 경력을 쌓아가면서 일하고 있는 후배가 물었다. 막상 이런 질문을 받고 나니, 잠시 생각을 했다. 내가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대부분은 사람 때문이었다.


“나도 사람이 힘들고, 지겹다. 근데, 그보다는 사람들에게 받는 에너지가 더 큰 거 같아.

그게 내가 버티는 힘인 거 같기도 하고. 난 영화보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더 좋아하는 거 같아”


나는 사람이 지겹다. 지친다. 상처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이 그립다. 모든 게 다 싫다고 진절머리를 내는 상황에서도 따뜻한 위로와 에너지를 안겨주는 건,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영화를 즐겨보고, 영화를 사랑하는 씨네필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마케팅이라는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같이 일하는 사람들, 동료들과의 희로애락의 힘이 크기 때문이다. 동료는 어느 순간, 친구가 된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료, 관계사로 만나는 스탭, 홍보를 위해 만나는 기자. 만남의 시작은 업무 때문이었지만, 어느 순간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같이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친구가 된다. 그렇게 친구들이 하나둘 생기면서 나만의 에너지를 채워가면서 지내왔다.


“당신 잘못이 아니야. 잘했어. 걱정하지 마”

오래 전의 일이다. 영화 마케팅이라는 직업의 세계에 처음 뛰어든 시기였다. 나이도 같고, 입사 시기도 비슷해서 금세 가까워진 동료가 있었다. 아직 각자의 업무는 서툴지만, 서로를 다독여주고 의지하면서 회사를 다녔다. 그러나 회사에서 동료로 지내는 시간은 길지 못했다. 작은 사건이 불화가 되어, 그는 이직을 하게 되었지만 우리는 자주 연락을 하면서 친구가 되었다. 어느 날,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소리가 다급하다. “내가 지금부터 어떤 얘기를 할 건데. 나한테 이 말만 해줘. 네가 잘못한 건 없어. 잘했어. 걱정하지 마. 이렇게만 말해줘”


나는 알겠다고, 얘기해보라고 했다. 그는 회사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 대해서 하나씩 설명하기 시작했다. “당신 잘못이 아니야” 그의 부탁 때문이 아니었다. 업무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지만, 이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최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얘기하면서 그를 안심시켰다. 작은 사고로 인해, 더 큰 불상사가 생길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던 그는 "당신 잘못이 아니야, 걱정하지 마"라는 말을 듣고 조금씩 안정되는 것 같았다. 기승전결 과정에 대해 차분히 얘기를 하면서, 스스로도 상황 정리가 되는 것 같았다. 이 전화 통화로 그는 안심이 되었고, 나는 오히려 이런 관계에서 에너지를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나의 얘기를 들어주고, 나의 편이 되어서 얘기해줄 수 있는 동지들, 친구들. 그들에게 받는 위로와 에너지는 내가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맨날 다 처음이잖아.”

윤여정 선생님의 유명한 어록이다. 우리 모두 인생은 처음이기에, 매번 아쉽고 후회되지만. 그래서 살아볼 만한 거라고, “인생은 정답이 없다”라고 얘기하신다. 그럼에도, 어떤 순간이 오면 누군가 답을 알려주고 안내를 해줬으면 좋겠다. 모두가 처음이고, 정답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선견지명이 있는 누군가를 찾아 나서고 싶어 진다.


퇴사 후, 혼자 계획을 세우고 고민을 하는 상황이 많아졌다. 어떤 선택을 하는 게 좋을지 모르겠다. 멘탈이 강하지 못한 나는 막연하게 좌절하기도 한다. 혼자 터널 속에 매몰된 기분이 되면, 시야가 좁아지고 생각이 막힌다. 그래서 잠시 잊고 있었다. 나에게 잔소리를 해주는 친구, 응원해주는 친구, 나보다 나를 더 믿어주는 친구, 긍정의 에너지를 채워줄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그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꼬인 실타래를 풀 매듭을 찾는다. 복잡하고 답답한 일들을 하나씩 정리할 수 있는 기운을 얻는다. 그들이 나에게 ‘정답’을 알려주는 건 아니다. 내가 길을 찾아갈 수 있게, 부딪쳐 볼 수 있게 가이드를 해준다.


모든 건 부딪쳐봐야지 안다. 부딪치기 전에, 나도 너무 두렵다. 자신이 없다.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래서 부딪치지 않고, 방법을 찾고 싶어 한다.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마주해봐야지 안다. 나의 위치와 깜냥을 확인하게 된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지, 대안을 세울 수 있을지, 직구가 나을지 변화구가 나을지는 부딪쳐봐야지 안다. 그래서 끊임없이, 사람을 만난다.


요즘 나의 일상은 끊임없이 사람을 만난다. 부딪쳐보기 위해서, 사람을 만난다. 일을 하면서 알게 된 관계자, 기자, 그리고 자주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까지. 마치 밀린 숙제를 하듯이, 만난다. 서로의 근황 토크를 한다. 나의 현재의 상황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막연하지만 솔직하게 얘기를 한다. 그렇게 누군가를 만나고 집에 돌아가던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 게시판에서 윤여정 선생님의 멘트를 보게 되었다.


“저는 일할 때 그 일 자체보다는 사람을 봐요. 그 사람과의 인연, 그 사람에 대한 믿음”

일을 하는 이유, 일을 선택하는 기준에 대해서 하신 말씀. 일을 하면서 어떤 선택의 순간이 필요할 때, 고민을 하게 될 때마다 다시금 생각해야겠다. 사람을 보고, 그 사람과의 인연, 그 사람에 대한 믿음에 대해서.


작가의 이전글 내 인생의 마지막 퇴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