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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글 Nov 11. 2024

주제 파악_하

#5

머시기 대학_수시 1차 면접,

면접대기실에서 분위기를 살폈다. 대충 다 똥들로 보였다.

 '난 100% 합격이겠네'

자신감에 차서 면접장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머시기 대학 전자과에 지원한 정글입니다."

 "예, 반갑습니다. 전자과에 대해서 아는 거 이야기해 보세요."

 "예?"

 "전자과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 자유롭게 이야기해 보세요."

 "아.. 그.."

 "이야기할 게 없나요?"

 "저는 잘 몰라서 배워보려고 왔는데요."

 "..."

 "..."

 "저희 학교는 아시다시피 국비로 운영하는 학교입니다.

  열심히 배워보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함이죠.

  그런데 입학 후 제대로 공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다른 열심히 하려고 했던 학생의 기회를 빼앗는 것이자

  크게 보면 국가적 손실이겠죠.

  제 경험을 바탕으로 봤을 때, 면접자 같은 학생들은 대부분

  학습태도가 썩 좋지 않았습니다. 제 판단이 틀렸나요?"

 "저도 열심히 배우려고 왔는데요?"

 "전자과에서는 무엇을 배우는지 알고 있습니까?

  졸업 후 계획은 있나요?"

 "하다 보면 생기는 거 아닌가요?"

 "예.. 알겠습니다."

 "아니, 저도 세금 내는데 이런 기회 가질 권리 있는 거 아닌가요?"

 "탈락하면 또 지원하실 건가요?"

 "예"

 "알겠습니다. 나가보세요."

1차 충돌이 끝났다.

 '똥통 학교 주제에 뭐 되는 척 하기는. 개나 소나 가는 데를 내가 못 가?

  아니 군대 갔다 온 놈들 다 합격시켜 준 데메. 뭐 저리 따져.'

자존심이 상했다. 나는 똥 이하인가 싶었다.

내가 개나 소도 안 되는 무슨 손톱에 끼인 때 같은 건가 싶었다.

 '아니 나 정도면 어서 업쇼하고 데려가야 되는 거 아닌가?

  까짓 거 비유 좀 맞춰주지 내가. 꼴에 학교라고 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머시기 대학_수시 2차 면접,

또 그 면접관이다. 나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또 왔네요?"

 "예. 저번에 제가 준비가 미흡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면접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저는 전자과에서 전자 관련 지식을 습득한 뒤에 4년제 대학으로 편입을 목표로

  이 학교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디자인공학과에 편입해서 최종적으로는

  조명디자인을 하려 합니다. 전자과에서 배우는 것들을 잘 활용해서 새로운 융합기술을

  실현하는 선두자가 되고 싶습니다. 이상입니다."

뿌듯했다. 완벽했다. 내가 준비한 모든 것을 상상했던 그대로 완성했다.

 '이제 내가 이겼다. 닥치고 나를 뽑아라. 이 정도면 내가 다 맞춰줬잖아. 안 그래?'

면접관은 안경을 벗어서 내려놓더니 말했다.

 "자, 우리 솔직히 이야기해 봅시다.

  바로 디자인공학과에 입학하면 되지 굳이 우리 학교를 거쳐가야 할 이유가 있나요?

  성적이 안 되니까 여기는 만만해 보여서 지원한 거 아닌가요?"

예상 못 했던 공격이다. 당황스럽다.

 "아닌데요."

 "그럼 그 이유가 뭡니까?"

 "..."

 "탈락하면 또 지원하실 건가요?"

 ".. 예"

 "알겠습니다. 나가보세요."

졌다. 이 똥통 학교한테 내가 또 졌다. 내가 상상한 그림이 완전히 찢겼다.

축 쳐진 내 뒷모습에 대고 면접관이 말했다.

 "이봐, 여기 직업훈련과정 중에 디자인과가 있어. 거기 한번 지원해 봐"

 ".. 예"

면접이 끝나고 밖에 나와보니 노을이 지고 있었다.

 '직업훈련과정?'

직업훈련과정은 대학이 아니라 직업인 양성을 위한 1년짜리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터덜터덜 힘없이 걸었다. 생각에 잠겼다. 한참을 걷다가 그제야 내 주제를 깨달았다.

 '나는 대학 갈 수준이 못 되는구나.'

내가 대학에 갈 수준이 되려면 무엇을 갖추어야 할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역시 수능을 다시 준비해야 되는 건가? 아 그건 자신 없는데..

 마지막 면접에 가서 정말 열심히 하겠다고 빌까? 그럼 붙여주려나?

 그러다 또 떨어트리면? 아이씨..'

나는 무작정 직업훈련과정 디자인과에 찾아갔다.

 "저기.. 혹시 여기가 디자인과 맞나요?"

 "네. 그런데요? 어떻게 오셨어요?"

 "아 제가 여기 다니고 싶어서요."

 "아 일단 들어오세요."

 "저.. 질문이 있는데요. 혹시 제가 여기 수료하면 여기서는 저한테 뭘 해주나요?"

 "네?"

 "제가 여기 과정 마치고 나면 뭘 얻을 수 있나 해서요."

 "아.. 여기서 저희가 해주는 건 없어요."

 "예?"

 "여기서는 학생이 하려고 하는 걸 도와주는 거지. 저희가 뭔가를 해주는 건 없어요."

 "아.... 그게 그렇게.... 아.... 네.. 알겠습니다"

멘붕이었다. 다 갖다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1년을 또 식당에서 전전하는 것이

더 싫어서 디자인과 면접을 준비했다. 절대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머시기 대학_직업훈련과정 면접,

나는 저번 대학 면접 때 받았던 질문들을 토대로 면접을 준비했고 굉장히 진지했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동네 학원 등록 할 때 반배치 시험정도였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대기업 최종 면접이었다.

면접대기실에 초등학교 동창을 우연히 마주쳤다.

 "오 너도 여기 지원했어? 반갑다."

 "어? 어.. 반갑다야"

 "이게 얼마만이야 ㅎㅎ "

 "그러네.. 한 10년 만이려나?"

 "야, 면접 보는 사람 별로 안 보이는 게 우리 다 합격하겄다 글지?"

 ".. 뭐.. 면접 준비 좀 했어?"

 "준비? 야, 무슨 이런 데를 준비까지 해. 그냥 물어보는 거 대답하면 되지 ㅎㅎ"

 ".. 그래?.. 너는 여기 수료하고 어떻게 할 생각이야?"

 "나? 뭐 여기서 해주는 대로 알아서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나는 그 친구의 모습에서 불과 몇 달 전의 나를 봤다.

나와 그 친구, 그날 거기서 면접 봤던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합격했다.

나는 대기업에 합격한 것 마냥 기뻤고, 등교하는 첫날이 정말 기대됐다.

 '이제 진짜 내 인생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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