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제대하고는 역시 식당을 전전했다.
'언제까지 이 짓거리로 먹고살지?'
'누가 그러던데 중고차 팔면 부자 된다고'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자동차 파는 곳마다 들렸다.
"여기서 일하고 싶습니다."
먼저 제대한 군대 선임이 그랬다.
"중국집에 전화했으면 주문을 해야지, 짜장면 어떻게 만들어요 물어보고 있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자동차 파는 곳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역시 나는 될 놈이여'
신나서 여기저기에 떠들고 다녔다.
"나 이제 차 판다. 차 살 일 있으면 연락해"
"저 어디서 일하니까요 차 살 일 있으시면 말씀하세요잉"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떠들고 그만뒀다.
출근해서 하는 일이 근처 놀이터 가서 앉아 있는 것이었는데
심심해서 전화번호부 뒤져보다가 괜히 연락해서 차 판다고
떠드는 게 내가 했던 일의 전부다.
내가 상상했던 직장 생활은 선임 졸졸 따라다니면서
못 하면 욕도 먹고 쥐어박기도 당하면서 그렇게 배우면서 성장하는 것이었다.
내가 일했던 주방들은 그랬고 군대도 그랬어서 다 그런 줄 알았다.
막상 가보니 자리 하나 주고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는데
22살의 나는 차를 사러 온 사람보다 차에 대해서 몰랐다.
2주간 놀이터에 멍하니 앉아서 생각해 본 결과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 멋있어 볼라 했드만 졸라 거지 같네 쓰바꺼'
사장님께 더 못 하겠다 말씀드렸다. 시작한 지 딱 2주 만이었다.
그 사이에 내 전화번호로 전단지를 돌린 게 있어서 그만두자마자 번호를 바꿨는데
아는 사람들에게 바뀐 번호를 알리지 않았다. 쪽팔려서.
그래서 22살 이전에 알던 사람들과의 연은 그렇게 끝났다.
'이제 뭐 하지?'
결국 다시 식당, 몸과 생각이 따로 논다.
'뭘 해야 되지? 나는 뭐가 되고 싶지? 뭐가 되면 좋을까?'
'검사나 돼 볼까? 의사가 더 나으려나?'
'그냥 가서 따까리 한 10년 하면 뭐든 돼있을 거 아니여?'
'아니 근데 따까리도 대학 나와야 시켜주네.. 수능 보기 싫은데..'
'군대에서 말뚝 박을 걸 그랬나.. 아 뭐가 다 이러냐.. 귀찮다 니미'
"야!"
"야! 양파 가져오라고 몇 번 말하냐!"
"아 예!"
한참 방황하던 중에 대뜸 엄마가 그랬다.
"그 머시기 학교 알아봐라. 거기는 뭐 돈 안 내도 다닐 수 있다더만."
"아 그런 똥통 학교 가서 뭐 해. 시간만 버리는 거제."
"니가 똥잉께 똥통으로 들어가는 것이 맞제"
"???!"
그날도 막 일하다가 저기 보이는 저 30대 형님이 10년 뒤의 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하.. 진짜'
'다른 건 모르겠고 식당에 계속 있는 건 확실히 아니여'
나는 동생한테 느닷없이 얘기했다.
"요리사 할 거냐?"
"뭔 소리여 갑자기"
"요리사. 계속하고 싶냐고"
"아니 뭔 갑자기 개소리를 하고 있어?!"
"하지 마. 드럽고, 위험하고, 힘들고 3D 아니냐 쓰리디!!"
"왜 근디 갑자기. 뭔 일이여?"
"닌장껏.. 나는 다시는 식당일 안 하련다."
"글믄? 뭐 할라고?"
"몰라 씨벌"
코 끝에 소똥냄새가 살짝 스치더니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니는 똥이여"
'...'
'똥..'
'글제.. 그것이 나제..'
'그래 가자. 뭐 어차피 다른 길도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