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 때쯤일 것이다.
아버지가 중학교 3학년인 남동생과 나를 불러다 놓고 뜬금없이 물어보셨다.
"너네는 왜 사냐?"
나는 내가 뭘 잘못했나 생각해 보다가 일단 대답했다.
"행복하기 위해서 살제."
아버지는 바로 남동생에게 물으셨다.
"니는?"
"나는? 나는 이길라고 살제"
"니는 잘 살겠고만"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그 당시 나는 어영부영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
남동생은 요리를 제대로 해보고 싶다고 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아버지는 왜 그런 질문을 하셨을까? 아마도 내 모습이 마음에 안 드셨던 모양이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경쟁하기를 싫어했다.
이기고 지고 하는 것이 그냥 싫었다. 그래서 누가 달려들면 항상 뒷걸음질 쳤다.
그러다 보니 나는 뭘 해도 적당히 내가 하고 싶은 만큼만 했다.
아버지는 그런 나의 태도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동생한테 물어봤다.
"니가 이길라고 살어? 글믄 맨날 싸워야 된디 그게 좋냐?"
"그라믄? 형은 이기기 싫은가?"
"싸우기 싫응께. 글고 이기고 지고 그게 뭐 그리 중요하냐 좋은 게 중요하제."
"나는 이겨야 좋응께 싸워야 되믄 싸워야제. 글고 형도 자전거 탈 때 글드만"
"내가? 내가 언제?"
"아따, 이길 수 있을 거 같으믄 달라들드만 뭘. 형도 이겨야 좋은 거 아니여?"
"그거슨..그.."
맞다. 지기 싫어서 애초에 포기했고 나는 안 싸웠으니까 이긴 것도 아니고 진 것도 아니라고
정신승리하고 있었다.
하루는 아버지가 그러셨다.
"나는 니가 학교를 댕기는지 놀러 댕기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니가 학생이냐?"
학교는 나에게 그냥 가야 되니까 출석만 찍는 곳이었다.
나는 수업 시간에 공책을 펴놓고 어떻게 하면 공부 안 하고도 성공할지에 대해 하루 종일 끄적이다
저녁을 먹고 나면 자연스럽게 학교를 나선다. 교문을 지나는 내 뒤통수에 대고 친구가 외친다.
"어디가?"
"도서관"
"거서 뭐 한디?"
"여기선 뭐 한디?"
"ㅇㅋ"
그렇게 야간자율학습시간에 땡땡이를 치고 도서관에 간다.
거기서 학교 공부 안 하고도 성공한 사람들 이야기를 기어이 찾아내곤 했다.
보통은 일찌감치 장사를 시작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는데 나도 장사나 할까 하다가
그건 별로라고 읊조리고는 또 다른 게 없나 다시 찾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딱히 마음에 드는 답을 못 찾은 채로 고등학교를 마쳤다.
공부는 하기 싫고, 성공은 하고 싶고, 쉬운 성공 없나 찾아 헤매다 학창 시절 다 보냈다.
'아니,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는 게 맞는 거냐고 그건 전혀 행복하지 않단 말이지'
그 결과로 남들 서울대 가고 홍대 갈 때 나는 군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