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같이 아르바이트했던 형이 해군을 나왔는데 그 형이 해군 가면 배 타고 세계여행 한다길래 해군으로 지원했고, 그래도 식당에서 알바 좀 했다고 조리병으로 지원했다.
"니미럴"
세계여행은 개뿔, 좁디좁은 섬에 갇혀버렸다.
해군은 2차 발령이란 것이 있어서 일병 말쯤에 근무지를 변경할 수도 있다.
나는 수시로 기지대장님께 육지로 가고 싶다고 어필했고 결국 내 요청을 받아들여주셨다.
나는 신나게 짐을 싸고 마치 전역을 하는 마음으로 그 섬을 떠났다.
내가 있었던 섬에서는 80인분만 조리하면 됐었고, 조리병도 5명인데 내가 No.2라서 크게 할 일이 없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고 했던가 도착한 육지는 대략 800인분에 내가 막내였다.
"씨부럴"
나는 본능적으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부터 떠올렸다.
선임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동기가 있었는데 선임을 폭행죄로 신고할지 말지 망설이고 있었다.
"신고할까?.. 그건 좀 아니지?"
"버텨보는 건 무린가?.. 아니, 근데 못 버틸 것 같으면 신고해야 되는 게.. 맞지 않을까.. 난 잘 모르겠다."
대답은 모르겠다 해놓고 속으로는 신고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결국 부대는 동기의 신고로 뒤집어졌고 나는 선임들과 동기 사이에서 외줄 타기를 하다 동기 손을 잡고
다른 곳으로 전출 갔다.
'역시 도망쳐서는 낙원에 갈 수 없는 건가..'
여기서도 역시 마치 도망에 대한 벌을 받는 것처럼 괴로웠다.
나는 또다시 떠올렸다.
'이제 어디로 도망가지? 도망갈 데는 있나?'
본부대장님께 찾아가 내가 일을 너무 못해서 같이 있는 전우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스스로 견디기 힘들다고 이야기했다.
"그럼 당장 다른 데로 보내줘? 아니면 좀 더 해볼래?"
"... 좀 더 해보겠습니다."
"그래 가봐"
그다음 날부터는 왠지 괜찮아졌다. 딱 일주일 동안만.
일주일 뒤 나는 본부대장님께 전화했다.
"필승! 통신보완. 기지대 상병 정글입니다."
"가야겠냐?"
"예.."
"알겠다"
그다음 날 아침, 나는 그곳도 떠났다. 이번에는 그냥 떠나지 못했다.
나는 한번 더 이런 일이 발생하면 모든 것을 내가 책임지겠다고 각서를 쓰고야 떠날 수 있었다.
관심사병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간 곳은 그럭저럭 지낼만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병장 정도 되면 어차피 어디서든 지낼만하지 않았을까 싶다.
전역하기 전 2달은 마음 편하게 있었는데 너무 편했는지 전역하기가 싫었다.
'여기를 나가면 또 어디로 가야 하나? 정해져있는 길마저 이젠 없다.'
그날따라 하늘은 맑고 바람은 살랑살랑, 햇살은 따뜻하니 날씨가 참 좋았다.
사회로 내딛는 첫걸음에 깊은 한숨과 함께 내뱉은 첫마디는 이랬다.
"후~ 막막~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