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2014년, 23살의 나는 즐거웠다.
운이 좋았던 건지 학교에서 하는 모든 것들이 재밌었다.
뭔가 드디어 내 삶의 주인이 된 것 같았다.
자격증도 따고, 공모전 입상도 하고, 간판도 직접 만들고
성취와 보람의 연속이었다. 그 순간순간을 온전히 즐겼다.
하루는 지도 교수님이 잠깐 보자고 하셔서 교수실로 갔다.
"정글아, 너 서울로 학교 갈래?"
"예? 정말요?"
"서울에도 우리 학교랑 같은 학교가 있는데 거기에는 전문학사과정이 있거든"
"저 갈 수 있는 거예요?"
"지금부터 잘 준비하면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여름방학이 지났다.
"정글아, 너 고등학교 성적이 어떻게 되지?"
"그건 왜요?"
"왜긴 왜야? 서울로 갈 때 필요하니까 그렇지."
"많이 안 좋은데.."
"얼마나 안 좋은데?"
"은하철도요."
"뭔 소리야?"
"999.. 요."
"뭐?!"
"평균 9등급이라고요."
".. 정글아, 그러면 힘들겠는데.."
"교수님.. 갈 수 있다면서요.. "
"나는 네가 열심히 하길래 중간은 하는 줄 알았다."
"교수님, 안 돼요 저 서울 가야 돼요."
나는 교수님의 만류에도 기어이 서울로 면접을 보러 갔다.
서울_수시 1차 면접,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 1년 동안 무얼 했는지가 전부였다.
그래도 나름 자신 있었다. 나는 1년 동안 한 것들을 카탈로그로 만들어서 서울로 올랐다.
표지에는 '하고 싶다', 맨 마지막 장에는 서울에서 공부가 정말 하고 싶다고 썼다.
'아 이건 합격이다 백퍼여 백퍼' 혼자 중얼거리며 면접대기실에 앉아있는데 내 이름이 불렸다.
나는 면접실에 들어가자마자 자신 있게 내 포트폴리오를 면접관들에게 전달했다.
"이게 뭡니까?"
"제 포트폴리오입니다."
"가져가세요"
"예?"
"가져가시라고요. 저희는 형평성에 어긋나기 때문에 이런 거 받지 않습니다."
"아.."
나는 내 포트폴리오를 다시 수거했다. 그리고는 기억이 안 난다.
'쓰바껏'
버스 타고 다시 지방으로 내려오는 길 내내 투덜거렸다.
'아니 나는 보여줄 게 그거밖에 없는데 그걸 뺏어가면 나는 어찌라고 아 진짜 짜증 나네
형평성은 뭔 얼어 죽을. 나한테 무기 없이 싸우라는 거는 공정한 거냐고 아놔 쓰바껏'
투덜거려 봤자 뭐가 달라지나. 그저 할 수 있는 게 그뿐이었다.
당연스럽게 면접에서 떨어졌다.
"정글아, 여기 근처에도 학교들 많아. 그런데 다시 알아보자"
"교수님, 저 서울 가야 돼요."
"아니면 취업도 괜찮아. 여기서 잘 배워서 니 거 차리는 것도 괜찮을 거야"
"교수님, 저 서울로 갈 거예요."
이미 내 머릿속엔 서울 밖에 없었다.
자동차 판다고 자랑하다가 2주 만에 때려치우고 쪽팔려서 잠수 탔다.
그 뒤로 아는 사람을 길에서 마주치면 모른 척하고 도망갔다.
다시 그 사람들 앞에 서기 위해서 스스로 명분이 필요했다.
'나 서울로 학교 갔어. 그때 그거에 집중하느라고 연락을 끊고 살았어'
이렇게 말하고 싶어서 나는 꼭 서울로 가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