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호 작가의 세상을 들여다보자.
이은호 작가의 세상을 들여다보기.
이은호 작가는 이른바 문단에서 이름난 작가는 아니다. 그렇다고 글쓰기 창작을 처음 시작한 작가도 아니다. 그동안 기업체에서 30여 년을 관리업무에 종사하다가 퇴직하면서 제2의 인생으로 작가라는 세계에 발을 디딘 사람이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사실은 기업체 생활 이전부터 틈틈이 다양한 글을 쓴 경력이 있는, 또 다른 의미의 작가이기도 하다.
나는 이은호 작가를 창작 플랫폼 ‘브런치스토리’에서 만났다. 다양한 글을 발행하는 작가들 사이에서 내가 이은호 작가에게 관심을 가졌던 가장 큰 이유는, 나와 같은 소설을 창작하는 작가였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물론 대외적으로는 소설가를 꿈꾸는 작가 지망생으로 자처했지만, 어느 기성 작가 못지않은 글에 대한 열정을 품고 있었다. 매일, 혹은 매주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면서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던 차에, 이은호 작가가 그동안 브런치에 발행했던 소설과 아직 미발표한 소설을 모아서 책을 출간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나는 그의 출간을 격려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소설을 읽고 書評을 작성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은호 작가는 사실 수십 년 전부터 소설을 창작해 왔다. 물론 나와 마찬가지로 전문적인 창작 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 젊은 날의 낭만으로 가득 차 있던 소설에 대한 그리움으로 꾹꾹 눌러쓴 작품들이 이은호 작가의 가슴 깊은 곳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었다. 당연히 뭐라 표현하기 힘든 풋풋함을 지닌 소설들이다. 이은호 작가 소설의 특징은 한마디로 말하면 ‘신선함’이다. 소설의 기본이 되는 작가적 상상력부터가 기존 소설들에서는 접할 수 없는 ‘신선함’을 갖추고 있다.
“시절 인연” 단편집에 수록된 작품은 총 10편이며,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이지만 대부분 작품의 어느 한 편에는 모두 아스라이 잊힐만한 어린 시절의 기억이라든지, 아니면 마음속으로만 상상했음 직한 신파형 청춘 스토리가 숨겨져 있다. 작가가 성장한 어린 시절은 5~60년대의 산업화 시기였다. 아이들은 밖에서 바쁘게 일하는 부모님의 얼굴도 잘 보지 못하고 자라기도 했고, 학교에서는 이제 막 잘 사는 집 아이와 가난한 집 아이라는 빈부의 격차를 실감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집에 아무도 없는데요?”
“다들 어디 가셨는데?”
“이따 해지면 어머니가 올 거예요.”
<원더풀 달동네 中>
아이들은 집에 와 봐야 아무도 없었다. 이 한마디로 그 시절의 모든 사회상을 그릴 수 있다. 빈집에 돌아오는 아이들, 빈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밖이 어두워질 때까지 동네를 배회하던 아이들. 그런 모습에서 우리의 어린 시절을 엿볼 수 있다. 작가는 마치 그림을 그리듯 작품 전반에 걸쳐 굳이 기억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잊고 싶지도 않은 애매한 추억을 불러 주고 있다. 한 작품, 한 작품을 넘길 때마다 한 편의 성장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에 빠진다. 분명 서로 다른 작품임에도 그렇게 은연중에 앞뒤에서 독자를 이끌고 간다.
<청춘블루스>나 <시절 인연>은 이 단편집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이 있거나, 상상만 했던 청소년기의 이성 교제를 통해서 당시 청소년의 “어설픈 사랑관”을 엿볼 수 있다.
용삼이 속으로 부르짖었다.
“아쉽게도 너의 첫사랑은 못되었지만 너의 마지막 사랑은 바로 나란 말이야!”
<청춘 블루스 中>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경우를 많이 보아 왔다. 하지만 순수한 마음에는 그런 속설을 믿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사랑하는데 왜 헤어져야 하는가? 그건 말이 안 되는, 말 그대로 속설일 뿐이다. 그 시절의 청춘은 그렇게 순수한 면이 있었다.
“너도 가희랑 잤냐?”
명진은 코를 찡긋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런 애를 왜 나랑 붙여줬냐?”
“그거야 너 동정 떼라고 그런 거지 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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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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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은 내 진심이었어”
짤막한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시절 인연>
가끔은 불량 청소년 흉내도 동경할 줄 아는 나이가 바로 그 나이였다. 남학생 여학생이 어울려서 어른들 흉내를 내는 것도 상상해 보고, 그렇지만 그 상황에서도 나름은 순정 있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아프니까 청춘인 거다. 작가의 작품은 그런 설렘이 있다. 나는 그런 설렘은 작가가 의도적이건 아니건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로 느꼈다. 당신들도 어릴 적에는 다들 이랬을걸? 하면서 독자들에게 작가가 펼치고 있는 청춘의 향연에 동참하기를 권한다. 사실 이런 작품 속이 아니라면, 조금은 쑥스럽거나 어쩌면 살짝 부끄러울 수도 있는 모임에 착석하기에 망설여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의 손을 잡고 입장하면 그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을까? 하늘 저쪽에서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빗방울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곧 소나기가 내릴 모양이었다. 동철은 채집한 곤충과 가지고 온 물건들이 젖지 않도록 서둘러 느티나무 그늘 밑으로 옮겼다. 이내 굵은 빗줄기가 세차게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둘은 바닥에 깔고 앉았던 비닐을 함께 뒤집어쓰고 나무 그늘 밑으로 들어가 나란히 쪼그리고 앉아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종이학 中 >
이 작품은 청춘물 이전의 어린 사내와 계집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애틋한 사랑 이야기이다. 마치 작가가 황순원의 “소나기”를 “오마주”한 것과 같은 분위기를 그렸다. 그저 마냥 순수한 사랑이다. 작품 전편에 걸쳐서 “사랑”이라는 표현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것은 분명 사랑이었다. 그것도 어른의 사랑 못지않은 애달픈 사랑이다. 이처럼 작가는 등장인물의 나이대에 어울리는 사랑을 그린다. 초등학교 이전이든, 초등학생이든, 또는 중학생이든 아니면 훌쩍 자라서 대학생이나 사회인의 시각에서 느낄 수 있는 사랑을 그 나이에 어울리면서도 애절하게 그리고 있다. 어쩌면 작품을 읽는 사람들은 작가가 직접 그 많은 사랑을 모두 경험했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진솔하게 그리고 있고, 이런 사랑의 전개가 작가만의 사랑하는 방법처럼 보인다.
“창식 어머니가 건네주시던 고등어는 그냥 고등어가 아니었다. 바로 마음이었다. 아들이 처음으로 집에 데리고 온 친구, 고등어는 그 친구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었을 것이었다”
<고등어 한 손 中 >
작가는 작품들을 통해서 고등어로 대변되는 사랑을 독자에게 전하고 있다. 이제 창작 생활을 시작하는 작가는 아직 자신의 글을 읽어줄 독자에게 진심을 전하는 방법을 모른다. 창식 어머니가 깊이 생각하지 않고도 선뜻 고등어 한 손을 건네듯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을 아직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작품집을 읽으며 작가의 그 마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물론 다른 독자들도 그럴 것이다. 작가는 작품들을 건넸고, 독자는 받는다. 고등어를 구워 먹듯 작품을 차분하게 읽는다. 고등어의 짭조름한 맛이 입안에 퍼질 때쯤이면, 작가의 진솔한 마음도 독자에게 전해지리라 믿는다. 위에서 잠깐잠깐 이야기하지 않은 작품들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작가의 작품을 단번에 다 읽었다.
이은호 작가의 작품에서 대단한 문학적 가치를 찾기는 힘들다. 그도 그럴 것이 본 작품집은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그래서 지금은 작품이 조금 가벼워 보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앞으로 나아갈수록 조금씩 더 묵직하고 진중한 작품을 그려낼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하지만, 나는 지금으로도 좋다. 작가의 작품에는 단순하고 잔잔한 사건의 연속이라는 이야기의 전개 자체에는 큰 울림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도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어설프기는 하지만 다듬지 않은 순수함이다.
이은호 작가가 작품에서 펼친, 어린 시절의 짝사랑부터 시작해서 어른의 사랑까지 모두 아우르는 인물의 심리 묘사는 어느 중견 작가 못지않게 뛰어나다고 확신한다. 혹자는 이런 나의 평에 대해서 조금은 후한 것이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은 그들의 잘못된 생각이다.
이은호 작가는 문장을 세련되게 다듬고, 멋진 비유와 묘사를 능수능란하게 휘두르는 작가는 아니다. 그렇기에 문장 하나하나에 순수함이 더욱 묻어나고 있다. 만일 나중에 발표되는 작품에서 이런 문장 구사력에서 약간의 발전을 이루기만 해도 작품이 주는 감동의 전달력은 폭발적으로 높아질 것이다.
이은호 작가의 건필을 기원하겠다.
<정이흔. 소설가, 브런치 작가>
혹시 개인적으로 블로그에서 신간 소개를 하시는 작가님들이 계시면, 원하실 경우 본 서평을 서적 소개 글로 퍼 가셔도 좋습니다.
이 글은 단행본으로 출간된 [글쓰기가 두려운 사람은 책을 읽지 마라]에 수록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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