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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흔 Sep 06. 2023

공모전 낙방기

이런 공모전도 있다.

한동안 쉬었다가 엽서시 공모전 안내 사이트를 기웃거려 보았다. 작년에는 종종 들어가 보았지만, 올해는 거의 들어가 보지 않았다. 특별히 응모하고 싶은 공모전도 별로 없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의 글들이 공모전에서 입상할 수준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공모전에 응모한 작품은 발표일까지 다른 곳에 공개할 수 없다. 물론 다른 곳에 공개된 시는 아예 처음부터 응모할 수도 없다. 간혹 다른 곳에 발표되었거나, 단독 저서로 된 시집에 실린 시들도 응모를 받아주는 공모전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어느 공모전 공고를 하나 접하고, 그곳에 응모했다. 오랜만에 응모한 이유는 간단했다. 응모하는 시 편수가 적었고, 공모 기간이 짧았고, 당선작 발표 일자도 빨랐다. 즉, 지어둔 시가 있으면 응모했다가 탈락하면 그 시를 다른 지면에 발표해도 되니까 부담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명 ‘시의 재활용’이라고나 할까? 어떤 공모전은 공모 마감 후 거의 두세 달이 지나서 당선작 발표를 하는 공모전도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시의 재활용’이 불가능하므로, 또 기다리는 것도 지겨워서 응모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 응모한 공모전은 속전속결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속전속결 일정으로 공모하겠다는 공고를 보았을 때 약간은 의심했어야 했는데, 깜박 속은 것 같았다. 아니 속은 것이 맞았다. 그렇다고 뭐 내가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았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단지 그저 짜고 치는 고스톱에 농락당한 기분이랄까? 뭐 그런 약간은 더러운 기분을 느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메일로 응모작을 보내면 주최 측에서 메일을 받자마자 열어보는 경우가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 응모 마감일 다음 날 응모작 전체를 한꺼번에 열어보기도 한다. 아무튼 어떤 경우든 그렇게 메일이 열리면 발송자는 수신확인을 통해서 상대방이 메일을 열어보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메일 서버에 따라서 수신확인이 안 되는 메일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네이버나 다음 메일은 모두가 상대방이 메일을 열어보면 수신확인 일시가 표시되며, 대부분 응모자는 메일을 보내고는 수시로 수신확인을 한다. 그래서 만일 수신확인이 뜨지 않으면 직접 전화를 걸어서 응모작이 접수되었는지 확인하기도 한다. 

     

일단 공모 기간이 짧으므로 접수일에 맞춰서 응모작을 메일로 보냈다. 그리고 하루 이틀 지나서 수신확인을 해 보았는데, 아직 응모작을 열어본 기척이 없었다. 어? 마지막 날이 지나서 한꺼번에 열어보는 모양이네. 하면서 그냥 잊었다. 그리고 응모 마감일도 지나고 당선작 발표일을 이틀 남기고 다시 메일을 확인해 보았는데, 이게 뭔 일인지 아직도 메일은 열어본 흔적이 없었다. 당선작 발표가 코앞인데 응모작들을 열어보지도 않았다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내 메일만 왕따를 당했다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수신확인이 안 되는 메일 서버라는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은 아닌 것 같았다.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이 네이버에서 다음으로 보낸 다른 메일들은 수신확인이 잘만 뜨는 것으로 보면 말이다. 그냥 접수처에서 응모자의 메일을 열어보지도 않았을 확률이 더 높은 상황이었다.

      

결국 발표일이 되었다. 그날도 역시 메일 수신확인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이런 경우는 단 한 가지 경우다. 당선작을 미리 정해 놓고 형식적으로 공모라는 절차를 밟은 경우이다. 그러니 다른 응모자의 메일은 열어볼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순진한 나는 그렇게 믿고 싶지 않았다. 물론 내 작품이 당선되었으리라는 희망에서 그런 것은 아니고, 솔직히 조금은 궁금했다. 내 추측이 맞는 것인지 확인하고 싶은 짓궂은 생각이 떠올랐다. 젊잖게 문자를 넣었다. 조금은 깐죽대는 말투로 당선작 발표는 났느냐? 그렇다면 응모작들을 열어보지도 않은 채 어떻게 당선작을 골랐냐? 뭐 이런 말투로 시비를 걸어 보았다. 어떻게 회신이 오는지 보고 싶기에.     

당연히 문자는 읽씹이었다. 회신이 안 올 것이라는 사실은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정작 읽씹히니까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메일을 다시 확인했다. 여전히 메일은 열어보지도 않았다. 이 정도면 그냥 뻔뻔한 얼굴들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을 꾸몄을까? 답은 하나다. 수상 실적. 그렇다. 일반적으로 일반인은 모르고 있겠지만, 문인들의 이력에 몇 줄 쓸 때 수상실적이나 출간실적 등이 있어야 활동 이력을 인정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메이저급 공모전에서는 당선될 자신은 없고, 그렇다고 이력란은 비우기도 싫은 일부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그 칸을 메운다. 일반인이 잘 모르는 지방의 작은 문예지에서 주최하는 신인상에 돈을 주고 등단할 수도 있고, 적당한 문인 카페나 밴드에서 제정한 소규모 공모전에 회원 자격으로 응모해서 적당한 등수에 입상할 수도 있다. 실제로 모 문학에서 주관한 백일장에서는 일반인도 참가시켜 참가비까지 받아 챙기고는, 회원들 작품만 수상작으로 발표해서 지탄받은 사례도 있었다. 그놈의 수상실적이 뭐라고 그렇게 기를 쓰는지 모른다. 

     

물론 그런 관례를 여러 번 보아 온 나는 이제 거의 공모전 감별사 정도의 선구안이 생겼다. 이 공모전은 응모할 필요가 없다든지, 저 공모전은 비교적 공신력이 있다든지 하는 판단력이 조금은 생긴 것이다. 그랬음에도 이번에 약간 지저분한 공모전 응모 경험을 겪게 된 이유는 그 공모전이 이전부터 있어 온 공모전이 아니라 이번이 1회였기 때문에 그 공모전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었던 까닭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나의 공모전 응모 이력에 또 한 번의 낙방 이력을 추가한 셈이다. 다행스러운 일은 그나마 발표 일자가 속전속결이었던 까닭에 ‘시의 재활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좀 더 다듬어서 이런 농간이 존재하지 않는 다른 공모전에 응모해 볼 생각이다.   

   

이 글을 발행하는 지금 시간까지도 이메일 수신확인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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