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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흔 Oct 01. 2023

詩想 가다듬기

시 창작의 첫걸음은 시상을 가다듬는 것이다.

시상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시상이 무엇인가? 한국어 사전을 보면, 말 그대로 시를 지을 때 떠오르는 시인의 느낌이나 생각이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시상은 시를 짓는 데 꼭 필요한 요소임을 알 수 있다. 즉, 우리가 흔히 시를 짓기 위해 습작할 때 종종 입에 오르내리는 ‘詩作법’이라는 개념보다 먼저 이해해야 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시작법은 시를 짓는 법을 말한다. 시작법 책을 펼치면 주로 시의 구조와 행, 연 등의 개념을 포함하여 시적 대상, 시적 표현, 시적 묘사, 시적 진술, 비유와 활용 등 시를 구체화하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그런 기술(표현이 어색하기는 하지만 적당한 단어가 금방 생각나지 않는다.)을 익혀서 시를 짓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이해해야 하는 개념이 있다. 그것이 바로 시상이다. 다른 말로는 글이라는 표현 양식을 동원해서 시라는 형식으로 시인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상상력이다. 시인이 살아가며 접하는 다양한 자연이나 사물, 현상, 인간을 포함한 다양한 생명체 등으로부터 떠오르는 느낌이다. 그런 느낌을 형상화하여 시를 짓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시인의 자질은 어찌 보면 그런 느낌을 다른 사람보다 더 잘 느끼는 데에서 찾아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시를 짓는 방법은 배워서 익히면 되겠지만(그래서 사람들은 국문과나 문예창작과에 진학하여 공부하기도 하도, 아니면 다른 형태의 공부 모임에 참여해서 공부하기도 한다.) 시상을 떠올리는 것은 단순히 공부를 통해서만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상은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나가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한 잎을 보아도 보는 사람에 따라 각자 다른 상상을 떠올릴 수 있다. 그렇게 각자의 상상한 결과가 서로 다른 이유는 보는 사람이 성장한 환경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차이로 인해 사물을 보면서 느끼는 생각에 차이가 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가지 현상을 보고 서로 다른 상상을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당연히 정답은 없다. 그러므로 한 가지 현상과 인과관계를 이루어 나타나는, 다른 말로 그 현상의 진행으로 인해 나중에 나타나는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시인은 그런 현상을 다른 사람과는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기도 하고, 예견되는 결과에 대하여 전혀 다른 상상력을 발휘하기도 하는 사람이다.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하다 보면 시인의 자격이 마치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다는 소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앞에서 시작법은 공부해서 익힐 수 있지만 시상을 떠올리는 것은 원래부터 사람에게 주어진 각자의 천부 능력인 것처럼 말했으니 말이다. 물론 전혀 들린 말은 아니다. 그러니 천재 시인이라는 말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범한 사람은 절대 시인이 될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나를 비롯한 평범한 사람은 시상을 제대로 가다듬는 방법을 몰라서 모든 현상이나 대상은 단순하게 바라보는 것일 뿐이므로, 그 현상이나 대상을 조금이라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연습만 해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시상을 떠올리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아침에 유난히 시끄러운 까마귀의 울음소리를 자주 듣는다. 듣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그냥 단순히 새의 울음소리(사실 이것도 우는 것인지 말하는 것인지 경계가 불분명하긴 하다.)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소리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날에는 그 소리가 조바심을 내는 소리로 들리다가도, 어떤 날에는 즐거워서 재잘거리는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간혹 비라도 내리려는 날이면 낮게 날면서 다급하게 울기도 한다. 물론 다른 사람은 어떻게 들을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나부터도 단순한 하나의 까마귀 울음소리를 이렇게 다르게 느끼고 있는데, 다른 사람도 당연히 나와는 다른 느낌을 받고 다른 생각을 할 것은 분명하다. 그것이 바로 각자의 시상이다.

     

시상을 가다듬는다는 것은 나의 견해로는 시상을 그리는 것을 말한다. 맞다. 그린다는 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해서 펜으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런 시각적이고 평면적인 그림을 그린다는 말은 아니다. 글이라는 수단을 이용해서도 얼마든지 그림은 그릴 수 있다. 나는 주로 평범한 방법으로 시상을 가다듬는다. 위에서 말한 까마귀 울음소리를 예로 들자면, 그렇게 다양하게 들리는 울음소리를 글로 나열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 평범하지 않은 상상력을 선택하는 과정을 거친다. 다른 사람은 물론 나조차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상상력을 선별하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두서없이 떠오르는 시상을 가다듬기에 상당히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래서 메모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상상은 말 그대로 순간적으로 떠올랐다가 사라지기 때문에, 분명히 전혀 의외의 기막힌 상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잠깐의 시간만 흘러가도 잊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나면 다시는 떠오르지 않을 경우도 있다. 그렇게 되면 그 시상은 덧없이 흘러간 것이다. 어차피 처음부터 나의 시상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래서 시상을 가다듬는 것은 시를 짓기 위한 가장 기초가 되는 작업임과 동시에, 본인의 시적 감수성을 높이는 길이 된다. 물론 시상을 가다듬는 방법도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잠시 위에서 이야기한 방법은 그저 나 혼자의 독학으로 습득한 방법일 뿐, 결코 왕도는 아니다. 단지 시를 짓기 위해 시상을 가다듬는 과정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이다. 


우리가 시를 짓겠다고 메모지와 필기도구를 준비하거나, 노트북을 켜서 한글 창을 띄우거나 하고도 문장 하나는 고사하고 첫 단어, 혹은 첫 글자 한 자조차 적지 못하는 경우가 바로 시상을 가다듬는 과정을 건너뛰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시를 짓고는 싶은데, 도무지 무슨 주제로 시를 지을 것인지 아무런 생각이 없어서 시를 짓지 못하는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뭔가 언뜻 머릿속을 스치는 상상이 있었는데, 정작 시로 표현하자니 너무 단순하고 짧은 상상이었을 경우에는 첫 줄은 고사하고 첫 단어조차 떠올리지 못하고 한글 창을 닫는 일이 허다하다. 

    

시상을 가다듬는 작업의 중요성은 이 정도 이야기하면 대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시는 아무나 지을 수 없지만, 반대로 누구나 지을 수 있다. 시는 시인(여기에서는 단순히 시를 짓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문단이나 시 세계에서 인지도가 있는 사람을 말한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내가 다른 글에서 누누이 이야기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시상을 어느 정도 정리할 수만 있다면, 시를 쓰는 일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그 과정이 바로 시 짓기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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