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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흔 Mar 29. 2024

달팽이

달팽이      


    

풀잎에 맺힌 이슬 

도르르 구를 때면

발아래는 달팽이 천국  

   

복족류¹의 본성은 

감당하기 힘든 집을 짊어지고

묵묵히 기어 다닌다


어쩌다 눈에 띄는 민달팽이는

수억 년을 안고 살아온 설움을

고스란히 후대로 넘긴다


달팽이 세상에는 없는 이삿짐센터

하나씩 짊어진 집들은

민달팽이를 위한 것이 아니고

태어날 때부터 갈려 있는 

유주택과 무주택

  

달팽이보다 못한 인간이

달팽이를 밟는다

까짓 집쯤은 부서져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냥 실수였을 뿐

밟히는 줄도 몰랐다는 변명만  

   

창졸간에 민달팽이가 되어 버린

유주택자의 귀에 공허함으로 남았다     


그저,

옮겨달라는 부탁은

일절 한 적 없다는 말만 

입 안에서 우물거릴 뿐이다  

   

내뱉을 힘이 없어서이다               



복족류¹ 배가 발인 무리를 일컬음. 대표적인 무리에는 달팽이와 민달팽이가 있다.






첫번째 시집 <흩뿌린 먹물의 농담 닮은 무채의 강물이 흐른다>에 실린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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