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이흔 May 20. 2024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두 번째 송지현 작가의 소설집을 읽었다.

바로 전에 소개한 <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의 저자인 송지현 작가의 또 다른 책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을 읽었다. 작가에 대한 소개는 이미 했으므로,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책의 내용을 소개하기 전에 미리 언급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 두 권의 책을 통해서 느낀 작가의 작품 세계는 허무하리만치 평범하게 보인다. 가족의 이야기라고 치부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작품마다 그리고 있는 그림이 서로 다른 것도 아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런 인상을 주었다. 작가는 평범한 일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사건을 그저 담담한 필치로 그려가고 있지만, 그 안에서 가끔은 작가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가족이라는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조금은 생각하게 해 주고 있다. 

     

“소설 속에서 나는 가족을 골고루 죽였다. 엄마를 죽인 것은 다섯 번, 할아버지를 죽인 것은 세 번, 삼촌도 세 번, 동생은 두 번이다. 그 와중에 아빠는 죽인 적이 없는가 하면, 그건 좀 애매하다. 계속 자살 시도를 하는 좀비가 된 아빠에 대해서 쓴 적은 있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아빠는 좀비이기 때문에 끝내 살아난다. 아니 죽지 않는다.” (233쪽, 쓰지 않을 이야기)에서처럼 작가는 수틀리면 가족을 죽인다. 


사실 나는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소설가들은 대부분 가장 쉽게 접하고 경험을 간직할 수 있는 가족 이야기를 소재로 삼는다고 하는데, 작가의 가족 이야기도 그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시 한 적이 있다. 이른바 '소설가 소설', '소설 속 주인공과 작가를 동일시 하는' 시각 등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 것도 사실이니까.


“아빠가 잘하는 음식은 찌개와 탕이었다.” (189쪽, 사진의 미래)에서는 아빠가 요리를 잘하는 사람처럼 등장한다. 작가의 다른 소설인 <좀비 아빠의 김치찌개 조리법>에서도 아빠는 요리를 잘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이런 소설을 여러 편 읽다 보면 정말 작가의 아버지는 요리를 잘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갖게 된다.


“내가 말을 걸어도 언니는 별 대꾸를 하지 않은 채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사탕을 요리조리 옮기며 언니가 무심하게 말했다. ‘나 결혼하려고.’ ‘뭐?’ 전날까지도 나랑 같이 남자친구 욕을 했으면서, 언니가 그제야 게임을 종료했다. 게임에서 나오던 오케스트라풍의 배경음악이 사라지고, 취한 엄마 방에서 누군가와 통화하는 소리가 들린다. ‘좀 빌려줘, 미친년아.’ 미친년이라고 하면서 엄마는 숨이 넘어가도록 웃었다.” (180쪽, 사진의 미래) 부분을 읽다 보면 집안의 세 모녀 사이에서 일어나는 그림을 상상할 수 있다. 어딘가 모르게 각자에게만 충실한 사람들이 모여서 가족을 이루고 있다. 그런 것이 가족인가?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오랜만에 만난 외삼촌은 스님이 될 거라고 했다.” (41쪽, 손바닥으로 검지를 감싸는) 같은 소설을 읽다 보면 실제로 그런 외삼촌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스님이라는 단어에서 평범하지 않은 외갓집의 모습을 추측해 볼 수 있기도 하다. 무엇인가 고민도 많고 복잡한 가족처럼 느껴지는 분위기의 외갓집 모습을 잠시 상상해 볼 수 있기도 하다.

     

작가에게 가족이 갖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부모님과 언니와 동생, 이모와 외삼촌, 그리고 다양한 친구들. 이 모두가 작가에게는 가족이다. 그렇기에 <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처럼, 이 책에 수록된 아홉 편의 소설이 주인공의 성장 속에서 일어나는 연속된 일련의 사건들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그 소설들에서 이야기하는 개별 사건들이 전혀 생소한 것처럼 느껴지지도 않는다. 자칫하면 젊은 청춘의 성장 일기와도 같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아니,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흩어지는 가족, 되돌아가서 붙잡기에는 소설 속 주인공의 성장이 항상 가족적 배경을 앞질러 가고 있는 상황을 보면서 언젠가 도달해야만 하는 성장 여정이 평범한 사람의 기준에서도 원만한 길을 따라 계속되기를 기대해 본다.

      

내가 책의 막장을 덮고 생각한 것은 ‘송지현의 소설은 절대로 깊은 생각을 하면서 읽으면 안 될 것 같다.’는 것이다. 혹시라도 작품 속에 작가가 의도한 무엇인가가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읽다가는 정말 재미없는 소설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너무 편하고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전개되는 소설을 일부러 고민하면서 읽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냥 편하게 스쳐 지나듯 읽다 보면 소설 속에서 간간이 드러나는 작가의 속마음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작가 작품의 영원한 화두는 <가족> 이다. 누구에게나 가족은 있을 것이고, 그래서 작가의 작품이 읽는 사람에게 잔잔한 여운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이 송지현 작가 작품의 특징이자 장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