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옆 테이블 손님의 얼굴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실내조명은 어두웠고, 그 어둠 속에서 잔잔히 흐르던 기타 선율에 얹힌 목소리는 분명 내가 알던 그 목소리였다. 세월이 아무리 흘렀어도 절대 잊을 수 없는 그 목소리가 마침 자리에서 일어서던 내 발을 붙잡아 바닥에 붙여 놓았다. 이런 곳에서 그 목소리를 들을 줄이야. 술집 한구석의 라이브 무대를 밝히는 희미한 불빛 아래 고개 숙이고 노래를 부르던 무명 가수가 긴 머리를 뒤로 넘기며 숙였던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을 때,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나에게 묘한 흥분을 안겨 주었다.
우리는 대학에서 만났다. 시간만 나면 교정의 잔디에 앉아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고, 그녀 옆에는 항상 내가 있었다. 그녀가 노래를 부를 때 자아내는 몽환적 눈빛과 뇌쇄적 몸짓, 표정은 언제나 많은 남학생의 시선을 끌고 다녔으며, 그녀 옆의 나는 자연스럽게 그 남학생들 선망의 대상이었다. 물론 그녀의 몽환적인 눈빛이 점점 흐려만 가는 시야를 밝히기 위한 의도적인 눈빛이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단순한 시력 약화의 가벼운 증상으로만 생각했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기 전부터 몇몇 행사에 초대되어 노래를 불렀을 정도로 출중한 음악적 재능을 갖고 있었지만, 그리고 나에게는 한없는 애정과 사랑을 보여주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아무 말 없이 내 곁을 떠났다. 그리고, 다시는 그녀를 볼 수 없었다.
그녀의 공연이 끝나고 나는 반가운 마음에 그녀에게 다가가기 위하여 발을 옮기려다 그 자리에 다시 멈춰 섰다. 무대 바로 앞에 앉아 있던 한 남자가 일어서더니, 그녀에게 다가가 기타를 챙기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남자의 손을 잡고 내 옆을 지나쳐 가는 그녀의 얼굴에서는 아무런 표정도 찾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