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침 풍경

SIMA 24호 2025년 가을호에 실린 시

by 정이흔
아침풍경_시마25호.jpg




아침 풍경



이른 아침 바람 뚫고

파지破紙 모으는 노인의

손수레가 길을 서둔다


머리와 뿔을 주욱 빼고

꼼지락거리며 기어가는 달팽이처럼

손잡이를 허리에 깊이 묻은 채

상체와 얼굴을 주욱 내밀고

힘겨운 걸음을 내딛는다


어느 노숙자의 집이었을지도 모르는

손수레 위 박스 파지 더미가

이제 노인의 집이 되었다


노인이 달팽이처럼

집을 이고 걷는다






지난번 손바닥 소설 부문에 나의 소설 '동행'을 실어주었던 계간지 SIMA가 이번에는 시 부문에 나의 시 '아침 풍경'을 실어주었다. 모처럼 자작시를 발표할 지면을 준 SIMA에 고마움을 표한다.


아침 일찍 거리를 나가면 유달리 파지를 모으는 노인의 모습이 많아진 것을 볼 수 있다. 생계수단이라고는 하지만 위험하기 그지없는 모습이다. 차들이 달리는 도로변에 조심스럽게 리어카를 끌고 가는 노인도 있는 반면에 도로의 차로 하나를 온통 점령한 채 뒤의 차는 아랑곳하지 않고 느릿느릿 가는 노인도 있다. 그 모습을 보자니 리어카 위에 높이 쌓아 올린 파지더미가 마치 달팽이 등에 얹힌 집처럼 보였다. 하긴 파지가 생계의 수단이니 달팽이로 치면 집이나 다를 바 없지 않을까?


잘못 밟히면 부서지는 달팽이 집처럼 파지 줍는 노인의 아슬아슬한 집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 나의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