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일상 잡문이라 함은...

by 정이흔

나는 글을 쓰면서 수필과 일상 잡문을 엄격하게 구분하려 했다. 물론 두 가지 글의 형식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런데 글을 쓸수록 경계가 모호해짐을 느꼈다. 가장 기본적인 구분의 기준이 서로 같다는 점 때문이다. 수필이든 일상 잡문이든 작가가 직접 경험한 일상을 소재로 쓰는 글이라는 점에서는 구별이 불필요하다는 사실을 나중에 느낀 것이다. 제대로 글쓰기를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 흔히 겪는 일이다. 글을 쓰면 쓸수록 그런 경계는 오히려 나 스스로가 만든 것일 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우리가 고등학교 시절쯤 되어서 배운 관점에서 보자면 ‘수필은 그저 물 흐르는 듯 쓰는 글이다.’라는 정의에 너무 깊이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 흐르는 것처럼 쓰는 글이라니, 그렇게 막연한 정의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수필은 작가의 경험담이라고 하는데, 그런 경험을 글로 쓴다고 해서 다른 형식을 모두 배제해도 된다는 법이라도 있는 것일까? 아무튼 그저 말장난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라면, 흔히 말하는 일상 잡문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나? 일상 잡문도 일상에서 경험한 일을 글로 쓰는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앞섰다.



그렇지만 수필과 일상 잡문이라는 형식적 명칭의 차이가 혹시 문학적이니 뭐니 하는 표현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같은 상황을 묘사한 글이라 하더라도 수필이면 좀 더 그럴싸한 문학적(?) 비유를 곁들인 묘사여야 하고, 일상 잡문은 그냥 단순한 서술이면 된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글의 형식은 시나 수필이나 소설처럼 예전부터 익히 들어온 형식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다양한 공모전을 보아도 공모 분야에 ‘일상 잡문’이라는 부문은 없으니 말이다. 그러면 문학적 장르에 ‘일상 잡문’이라는 분야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그런 의구심도 가질 만하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브런치스토리만 보아도 수많은 작가가 활동하고 있지만, 작가마다 그들이 발행하는 글의 성격은 정말 각양각색이다. 나는 이른바 순문학 계열의 글을 쓰는 사람이므로, 자연스럽게 내가 선호하는 작가도 그런 분야의 글을 발행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나를 비롯하여 그런 글을 쓰는 작가는 브런치스토리에서 아웃사이더 격인 작가들이다. 한마디로 해서 별로 인기가 없는 글을 쓰는 작가들이고, 오롯이 자기만족적인 글을 쓰는 작가라는 사실이다. 그런 작가들은 브런치에서 찾아주는 독자 작가도 많지 않을 뿐 아니라, 속된 말로 인기도 별로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출판 프로젝트에서 출판사의 선택을 받는 작품도 거의 순문학 계열의 작품이 아닌 다른 글들이다. 출판사의 시각에서 볼 때, 돈벌이가 될 만한 작품 말고는 출판 가치도 없는 글이라는 소리다. 순문학을 추구하는 작가의 시선에서 본다면 서글픈 현실이다.


물론 나처럼 말로만 순문학을 추구한다고 하면서 실상은 대단한 시나 소설을 쓰는 것도 아닌 작가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중이 자기가 싫으면 절을 떠나야 하듯이 브런치스토리가 순문학을 추구하는 작가 지망생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플랫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냥 조용히 주저앉아서 있으면 될 일이다. 그럼에도 브런치를 떠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 글을 읽어 주고 사랑해 주는 단 한 명의 독자라도 있다면,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계속 글을 써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내가 추구하는 글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라도, 문학적(?)인 시나 수필이나 소설이 아닌 일상 잡문이라도 써야 한다는 강박이 가끔 들기는 한다. 행여 그런 글조차 쓰지 못한다면, 더 이상 브런치에서의 활동 의욕이 사그라들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은 모처럼 술을 한잔 마시고 한참 만에 새 글을 하나 발행했다. 이런 글이 일상 잡문인가? 이런 글을 발행하는 행위가 나의 글쓰기 성과를 보여주는 글인가? 아니면 단순히 격조한 나의 글 발행을 모면하려는 일시적인 유혹의 글인가? 내 글 발행 알림이 가면 의무적으로 와서 읽어 주는 구독 작가를 농락하는 글은 아닐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긴 한다. 그래도 솔직히 어떤 명분으로든 글을 쓴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은 아닐까? 그냥 그런 생각을 위안으로 삼을 뿐이다.


이래서 술을 마시고 글을 쓰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다. 별 쓸데없는 소리도 아무런 생각 없이 내뱉기 때문이다. 그래도 술이 깨면 지우고 싶어지는 글일지언정 글을 썼다는 사실이 더 의미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냥 그렇게 계속 글을 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일일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세월이 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