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손자를 데리고 집 뒤편 공원에 있는 놀이터에 올랐다. 이 동네로 이사 올 때부터 손자가 귀국하면 데리고 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어제야 처음 오를 수 있었다. 그동안은 손자가 며느리와 떨어지지 않으려 해서 내가 곁에 있어도 나에게 오려고 하지 않았는데, 어쩐 일인지 어제 아침부터는 나에게도 척척 안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김에 며느리와 함께 유모차를 밀고 공원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하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어제 따라 공원 출입구에 공사 안내띠가 둘러쳐져 있었고 작은 포클레인이 산책로를 정비하고 있었다. 모처럼 벼르고 올라왔다가 갑자기 맥이 빠졌는데, 손자는 오히려 포클레인을 보더니 자리를 떠날 줄 모르고 서서 포클레인만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자니 삼십 년도 지난 기억이 떠올랐다.
아들은 어린 시절 유난히 포클레인을 좋아했다. 아들이 포클레인을 지칭하는 애칭은 코끼리 차였다. 마치 코끼리 코처럼 차체 앞으로 길게 뻗은 삽자루가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하도 코끼리 차를 외치는 바람에 아이들이 올라앉아 놀 수 있는 장난감을 사 주었고, 아들은 시간만 나면 장난감 포클레인 위에 앉아서 포클레인 삽으로 바닥을 두드리곤 했다. 그런 데다가 마침 집 앞 도로변 주차 구획 안에는 거의 매일 포클레인이 주차되어 있었는데, 아들은 밖에 나가기만 하면 그 주위를 빙빙 돌곤 했다. 그 모습을 본 포클레인 기사가 아들을 안아서 운전석에 앉혀 주기도 했다. 그렇게 포클레인만 찾던 아들의 관심이 시들해진 것은 아마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이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오늘 손자에게서 아들의 어린 시절 모습을 발견하고는 혼자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손자를 데리고 공사 구간을 우회해서 놀이터에 올라갔다. 한참을 놀이터에서 놀다가 내려오는 길에 보니 포클레인 기사는 점심식사 시간이라 자리를 비웠는지 그저 포클레인만 덩그러니 혼자 있기에 유모차에 태운 손자를 가까이 데려가서 손으로 포클레인을 만져보게 해 주고는 돌아서서 집으로 내려왔다.
누가 부전자전 아니랄까 봐 아들이나 손자 모두 포클레인을 좋아한다. 그러고 보니 손자가 귀국할 때 갖고 온 장난감 중에서 작은 포클레인이 하나 있었는데 바퀴 부분이 고장 나 한쪽에 치워둔 생각이 떠올랐다. 집에 내려가면 아무래도 작은 포클레인 말고 손자가 올라탈 정도 크기의 포클레인을 하나 장만해야 할 것 같았다. 며느리는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미 당근 마니아가 되어 나에게 손자가 좋아하는 장난감 차를 구해 달라고 한다. 어차피 아이들이 잠시 갖고 놀다가 또 잊어버릴 텐데 굳이 새것을 살 필요는 없다는 것이 며느리의 지론이다. 글을 올리고 나서 곧바로 당근 시장을 뒤져봐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