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딸과 함께 아들이 유학 중이던 중국을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도중 며느리가 딸에게 어떻게 불러야 하냐고 아들에게 물었다. 우리는 한국의 가족 간 호칭에 맞게 원래는 결혼하지 않은 남편의 여동생을 ‘아가씨’라고 부른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오빠의 아내가 아이를 낳게 되면 아이를 기준으로 여동생은 고모가 되므로 그냥 며느리도 남편의 여동생을 ‘고모’로 부른다고 덧붙였다. 며느리는 딸을 보고 ‘아가씨’, ‘고모’를 연발하다가 혹시 그냥 ‘언니’라고 하면 안 되냐고 했다. 며느리는 딸보다 두 살 아래였고, 여자 형제가 없던 며느리는 다른 친구들이 언니를 부르는 것이 부러웠던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결혼식을 하기 전이었으므로 그냥 편한 대로 부르라고 하면서 그러면 딸이 며느리를 어떻게 불러주면 좋겠냐고 했더니 자기는 그냥 이름을 불러주면 좋겠다고 했다. 그 이후로 우리는 며느리를 이름으로 불렀고, 며느리는 아버님, 어머님, 언니로 호칭을 결정했다.
중국 방문이 결혼을 약속한 두 집안의 상견례 자리와 마찬가지였으므로, 당연히 사돈이 될 며느리의 부모와도 인사하는 자리를 가졌다. 며느리의 아버지는 아들이 없었던지라 우리 아들을 끔찍하게 챙겨주면서 자신이 아들의 중국 아빠라고 하는 친근감도 과시했고, 며느리의 어머니는 우리 부부와 나이 차이가 커서 그런지 아니면 한국 드라마의 영향도 가미되어 그런지 아내에게 웃으면서 ‘언니’라고 부르기도 했다. 아무튼 처음부터 우리 사이에는 호칭이 평범하지는 않았다.
며느리와 손자가 입국하자 이번에는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손자와 호칭 다듬기가 시작되었다. 손자가 가장 먼저 배운 한국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였다. 할머니는 비교적 금방 익혔지만, 할아버지는 할머니보다 한 글자가 많아서 그런지 더듬거리는 시간이 길었다. 그다음이 바로 ‘고모’였다. 그런데 고모가 생각보다 입에 잘 붙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결국 열흘이 지나서 ‘고모’하는 말이 나왔다. 며느리는 여전히 아버님 어머님을 연발하다가 결국 그냥 편하게 엄마 아빠로 타협을 보았다. 우리나라 호칭 중에 ‘님’으로 끝나는 호칭이 외국인에게는 비교적 적응하기 어려운 호칭인 것 같았는데, 아무튼 우리는 덕분에 막내딸이 한 명 생긴 기분이었다.
며느리는 ‘고모’와 ‘언니’를 기분대로 섞어 부른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며느리의 이름을 부른다. 아마 그런 호칭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보통은 며느리에게 새아가니 하면서 이름도 아닌 어중간한 호칭을 부르는 집안도 있지만, 우리는 그냥 이름이 편하다. 하긴 나부터도 아내를 결혼 전부터 지금까지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으니, 며느리를 이름으로 부른다고 해서 어색할 이유는 전혀 없다.
아들과 딸은 어려서부터 일만 생기면 ‘아빠’를 불러댔다. 그런데 지금은 물어보고 싶은 일이나 부탁하고 싶은 일만 있으면 ‘아빠’를 불러대는 막내딸 같은 며느리도 ‘아빠’를 불러대는 대열에 합세했다. 어떤 아빠는 아이들이 번번이 불러대면 귀찮아하는 예도 있다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원래부터 ‘딸바보’인 내가 딸 같은 며느리가 한 명 더 생긴다고 해서 귀찮을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저 불러주는 아이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는 체력이 건재하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살아갈 뿐이다.
대문 사진은 며느리와 나란히 앉아 글을 쓰고 있는 거실 테이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