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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가정? 한국 가정?

by 정이흔

우리 집은 말하자면 다문화 가정이다. 물론 나는 ‘다문화 가정’이라는 용어를 싫어한다. 우리 집이 그래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단지 그냥 다양한 가정 중의 한 가정일 뿐인데, 그렇게 다른 가정과 구분 짓는 용어를 만들어 가면서까지 특정화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동안 유행했던 장애우라는 용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이런 견해는 나만의 시각이라는 점은 미리 이야기하고 싶다. 그냥 어떤 면에서 불편함을 조금 느끼는 사람으로 대해주면 좋을 것을, 그들은 원하지도 않은 장애우라는 표현을 만들어서 그들을 일반인과 구분 짓고 있다. 그런 용어를 만들고 그들에게 특별한 혜택이나 도움을 주지도 못할 것이면서, 그냥 생색만 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장애우에 대한 사회적 배려나 혜택 중에 어떤 것이 있는지는 잘 모른다. 그런 까닭에 나는 나의 이런 시선이 선입견에 의한 편협한 시각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애써 부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는 장애우라는 용어가 없던 시절에 대학을 다녔다. 입학 동기 중에 몸이 불편한 친구가 있었는데, 같은 학과 동기가 대학 시절 내내 강의실을 옮길 때마다 업고 다녔다. 물론 업고 다닌 그 친구 이외에도 다른 친구까지 기회가 되면 그 친구의 가방을 들어준다든지 하면서 학업을 도왔다. 장애우라는 개념이 없어도 얼마든지 불편한 사람을 자진해서 도와주던 시절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았기에 장애우라는 용어가 처음 유행했을 때, 그다지 탐탁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냥 도와주면 되지, 장애우는 무슨 장애우람? 하는 심산이었을 거다.



아무튼 다시 돌아서 다문화 가정으로 와 보자. 우리는 한국인, 며느리는 중국인, 아들은 한국과 중국 양쪽에 국적을 갖고 있는 혼혈이다. 양국 모두 출생신고를 했기 때문에 이름(한자 이름)은 같아도 부르는 법은 다르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중국 발음으로 부르고 우리는 한국식으로 부른다. 아이는 태어나서부터 두 가지 언어를 듣고 자랐다. 이 역시 그냥 보통의 한국 가정과 사소한 차이가 있는 가정일 뿐이다.



손자는 일단 중국어로 며느리와 소통한다. 며느리는 우리와 중국어, 한국어, 어설픈 영어와 일본어까지 동원한다. 손자는 우리와 한국어로 소통하기에는 한국어 단어를 아직 많이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아이라서 그런지 습득 속도는 무척 빠르다. 한 번 알려준 단어는 거의 외워서 스스로 발음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대견함을 느낀다. 아마 어린이집에 가면 더욱 빨라질 것이다. 아, 손자도 가끔은 영어로 말하기도 한다. 아내가 ‘별’이라고 하니까 며느리는 星(xing)이라고 하고, 그 대화를 듣던 손자가 star라고 소리친다. 그런 손자를 보고 우리는 또 깔깔 웃는다.



며느리는 나와 아내와 딸에게 한국어를 배우고, 우리는 며느리와 손자에게 간단한 중국어도 배운다. 언어뿐 아니다. 양국의 문화가 다른 까닭에 사소한 오해도 있을 수 있는데, 그런 오해를 극복하는 길은 같은 실수를 두 번 이어서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태도를 지켜가는 것이며, 서로 상대국의 문화를 존중해 주는 것이다. 이제 불과 3주가 되었지만, 식생활의 차이도 상당 부분 절충해 가는 중이다. 우리는 지나친 육류 섭취를 자제하면서 채소 위주로 식사했다. 그렇지만 며느리는 중국에서 육류 섭취가 많았던 모양인데, 우리가 잘 모르고 육류가 조금 덜한 식단을 준비하다 보니 멀쩡한 며느리를 허기지게 만들기도 했다. 고향 떠나 남편도 없는 시집에서 배까지 고프면 그 얼마나 서러울 것인가? 자칫했다가는 며느리를 서러운 처지로 만들 뻔했다. 아내가 잠시 누워 있는데 며느리가 와서 “엄마 나 배가 고파요.”하는 바람에 아들과 통화해서 며느리의 식습관을 자세히 전해 듣고 대처할 수 있었다. 우리는 처음에 며느리에게 무엇이든 불편하거나 요구할 사항이 있으면 이야기하라고 했다. 말하지 않으면 우리가 모르지 않겠는가? 모르면 서로를 배려할 수 없다고 말해 주었다. 그래서 며느리가 편하게 배가 고프다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두 나라의 문화가 융합하는 과정은 물론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며느리도 대학원까지 졸업한 재원인 데다가, 평소 한국 문화에 대해 좋은 인상을 품고 있던 터라 한국 문화에 적응하려는 대도는 매우 적극적이다. 우리는 우리대로 아들을 통해서 며느리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처음 중국을 방문해서 며느리를 보았을 때부터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지금 함께 지내면서도 마치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있다. 그렇기에 적어도 우리 가족 내에서는 다문화라는 개념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냥 다른 가정에 비해, 서로 부대끼면서 각자 다른 언어로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만 하나 더 있을 뿐이다.



이제 손자는 어린이집에서, 며느리는 한국어학당에서 한국 문화에 대해 좀 더 배울 것이다. 그러다 보면 단지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평범한 한국 가정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러니 분명 우리 가정은 다문화 가정이지만, 다른 시각에서 본다면 그냥 평범한 한국인 가정이다. 이 글을 쓰는 중에도 손자가 며느리에게 중국어로 뭐라 뭐라 하면, 아내는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는다. 아내보다는 중국어를 몇 마디 더 아는 내가 알고 있는 표현이면 내가 알려주고, 나도 모르는 표현은 영어나 번역기(파파고)가 도와준다. 그래도 우리 가정은 여전히 한국 가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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