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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디울 Jun 22. 2018

허스토리

영화 허스토리×반디울


관부재판을 아시나요?

허스토리는 우리나라 10명의 ‘위안부’ 할머니들이 원고가 되어 일본 사법부를 상대로  장고의 시간을 싸워낸 길고 험난했던 여정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확실히 알지 못했던 ‘관부재판’(시모노세키관~부산 재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991년 故)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실상에 대한 최초 증언을 합니다. 이 순간을 어렴풋이 기억하는데, 당시로선 처음 듣는 위안부에 관한 인터뷰여서 듣고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생소한 내용일뿐더러  왜 이제야 저런 이야기를 드러낼까 의아하고 놀라운 감정이 먼저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렇듯 위안부 실태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이해도 없이 위안부 문제에 무지했던 국민이 태반이었던 그 분위기는 고스란히 영화에 드러나는데, 최초 부산에 개설한 위안부 문제 사무소에 돌이 날라 들어오는 장면은 문뜩 옛 기억을 소환합니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 그렇게 우리조차도 날 서고 비뚤었던 시선들.




영화에서 문 사장(김희애)은 위안부였음을 드러내지 않고 문 사장의 집에서 가족처럼 집안일을 돌보던 배정자(김해숙) 앞에서 김학순 할머니의 TV 인터뷰를 보던 딸에게 너도 저 할매처럼 삐끗하면 인생 끝이라고 독설을 날립니다. 이것은 기억 속 가감 없는 그 시대의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사회의 시선을 되살리는 장면입니다. 그랬던 문 사장은 자신의 딸아이를 할머니나 진배없이 아끼며 키워왔던 가족 같은 배정자 할머니가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뼈아픈 반성을 하게 됩니다. 곧 배짱 두둑한 이 여성은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커다란 조력자로서 전면에 나섭니다.

바로  오늘의 위안부 실태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의 전환이 있게 한 불씨가 된 1991년 김학선 할머니의  용기 있는 최초 증언이 영화 ‘허스토리’의 시작이자 우리의 ‘히스토리’의 시작인 것입니다.




‘관부재판’은 1992년 시작된 위안부 소송에 관하여 일본 사법부로부터 6년간의 길고 지루한 23번의 재판 끝에 1998년 1심에서 받아 낸 유례없는 ‘승소’ 판결입니다. 세계 최초로 위안부 소송 승소 판결을 이끈 유일무이 한 기록입니다. 

이 승소 판결이 있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가며 겪어 냈을 실제 10명의 위안부 할머니들, 사비를 털어 할머니들을 모시며 전 과정을 지원하고 이끈 문 사장, 그리고 무료 변호에 나선 재일 변호인이 주축이 된 13인의 변호인단. 이들의 끈질긴 투쟁은 참으로 눈물겨운데, 특히나 법정에서 그들의 아픈 기억을 다시금 상세 진술해야 했던 할머니들의 모습에 가슴이 무너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평생 한 번도 법정이란 곳에 서지 않은 일반인에겐 얘기만으로도 위축되고 무서운 일이 소송, 하물며 자신의 아픈 과거사를 드러내며 절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자세의 일본 재판정에 서야 했던 그 심정과 각오는 어떠했을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국 정부의 도움 없이 파산 직전까지 사재를 쏟아부으며 원고단을 이끌었던 문 사장의 희생도, 일본 땅에 사는 재일동포로서 한국인의 변호를 기꺼이 맡았던 변호사들의 용기도 모두 믿을 수 없이 놀랍습니다.

그랬기에 그들이 얻은 1심 승소의 결과는 눈물겹도록 대단하며, 고통스러우리만큼 처절합니다.  

   

관부 재판 1심 승소에 일본 열도는 발칵 뒤집혔고, 이런 일본은 이 사건을 고등법원에서 패소시킴으로써 일본 정부는 절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죄를 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끝내 바꾸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최초로 위안부 존재를 인정하게 된 계기가 된 것도 바로 이 ‘관부 재판’입니다.     




바로 영화 제목의 HERSTORY 처럼  여성의 관점으로 새로 쓰는 역사에 큰 획을 긋는 힘 있는 외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초로의 노인이 된 할머니들은 죽기 전에라도 조국이 건재하지 못한 시대에 아무도 지켜 줄 수 없었던 자신의 청춘을 대신해 절규하듯 싸움을 이어갑니다.

허스토리는 지배 망상에 빠진 인간의 잔학성, 전쟁의 아픈 기억으로부터 용기 있게 나선 그녀들의 스토리가 ‘History’에 멈추지 않는 위안부 할머니 한 분 한 분의 ‘HERSTORY’ 임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관부재판’에는 생소하지만, 유태인 ‘홀로코스트 전범 판결’엔 더 익숙할지 모릅니다. 소녀들이 약취 유인당하여 전쟁터로 끌려가 성노예로 무참히 유린당한 반인륜적 위안부 범죄보다, 홀로코스트에서 얼마나 많은 유대인들이 나치에게 어떻게 가스실에서 쓰러져 갔는지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있을 듯합니다. 그 이유는 아직도 유대 자본에 의해 홀로코스트에 관한 영화가 무수히 제작 방영되고, 세계 곳곳에 숨어있는 전범자들을 찾아내 법정에 세운 기사들이 매체를 통해 생생히 전파를 타고 있으며,  홀로코스트에 대한 독일의 사죄와 그들의 의식을 다룬 다큐를 매번 접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일본 정부에 대한 사죄 요구는 계속되는데 그러한 사죄 요구는 묵살되고  소녀상 철거를 주문하며 이제는 상호 간 위안부 문제는 다시 거론하지 말고 덮고 가자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투쟁에 대한 이 영화는 아마도 일본 정부의 심기를  건드리는 매우 불편한 영화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숨기려 하는 역사의 일부를 다루는 이런 불편한 영화가 세계로 퍼져 나가는 것에 크게 맘이 상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세태에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발과 당당한 사죄 요구는 지금의 Me Too 운동의 한 발 앞선 시작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Me Too’ 열풍도 유독 일본에서만 외면받고 있는 정도를 보면 그들의 여성인권에 대한 의식이 여전히 답보 상태인 것만 같아 답답한 마음이 듭니다.          



민규동 감독의 대표작 ‘내 아내의 궁금한 모든 것’도 아직도 기억에 남는 영화 리스트로 자리하고 있는데, 이번 

영화 역시 가슴 한편에 남는 뭉클함을 선사하며 감독 자신이 영화인으로  꼭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를 풀어 주는 듯합니다.          

문 사장은 돈도 다 쏟아붓고 왜 그렇게 위안부 할머니들한테 집착하느냐며 묻는 지인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 부끄러버서! 이렇게 여태 나 혼자 잘 먹고 잘 산 게 부끄러버서!” 실상 이 영화를 보며 부끄러움을 느낄 당사자는  누군지 묻고 싶어 지는 영화 ‘허스토리’. 그럼에도 이 영화에 등장하는 후쿠오카 시민회 등 일부 일본 시민의 지원과 위안부 할머니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한 일본 시민협회의 모습을 보며 한 부분 희망과 안도를 느낍니다.


사람에게 전하는 사죄가 돈을 전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인지?     

진정한 사죄를 기다리고 있는 그녀들의 단단한 목소리가 우리 사는 온 세상에 다시금 파장을 일으킬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글·그림 반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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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포스팅은 (일러스트는) 소정의 수수료를 지급받아 만들어진 제휴 컨텐츠로 <허스토리>의 추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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