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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디울 Sep 25. 2024

소설 _ 09. 나의 유배지

소설 _ Flight to Denmark  09. 유배지를 벗어난 걸까?

'백구네 순두부'

앞 코가 둥글고 탄탄해 보이는 갈색 가죽 운동화를 신는 순두부 집 사장은 나를 잘 몰랐겠지만, 나는 동네에 이 가게가 들어서면서부터 이곳을 여러모로 예의 주시 하고 있었다. 


진실한 단골은 아니어도 가끔 아버지와 밥을 먹으러 올 때면, 아빠는 이 집 사장이 참 사람이 좋다는 말을 하곤 했다. 나는 그런 말 하나까지도 데이터에 더해가며, 이 가게에서 일을 하면 어떨까 하는 구직자의 자세로 식당의 이모저모를 탐색하곤 했다. 


이런 복심이 있는 손님이 나 혼자가 아닐 것 같은 단정한 가게. 여기에 ‘함께 일 하실 분을 구합니다’라는 작은 구인 글이 달렸다.

 계산 대 옆에 스탠딩 아크릴 액자 형태로 세워져 있는 조그만 글을 발견한 것은 그때 나에게 너무도 시의적절한 것이었다.


그래서 급한 마음으로 순두부집으로 달려온 날, 운 좋게도 그는 별다른 군 말없이 나를 채용해 주었다. 그렇게 주위가 온통 초록 초록했던 이른 여름에 시작한 일이 쓸쓸해 보이는 마지막 낙엽이 뒹구는 늦가을이 되기까지 이 백구네 순두집에서 일을 하게 된 지도 벌써 넉 달이 다 되어 간다. 


괜히 가게에서 시키는 일을 제대로 못해, 자주 오던 식당마저 오기 민망해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섰던 처음을 생각하면 이제 제법 제 가게 굴리듯 여유로이 일하는 내 모습이 대견할 정도가 되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생각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히 아닌가! 내 딴에는 욕심 내어 버젓해 보이는 곳만을 찾아 헤매다가  이도 저도 안 되는 모양이다 하며 더 한없이 고꾸라지면 어쩔 셈이었을까?  아이들을 가르치는 미술 학원 선생에 지원하려다, 삼십 대 후반에 접어든 내가 학원원장 보다 나이가 많아 꺼리는 곳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놀라듯 의기소침해진 시점이라 더욱 그런 마음이 들었다.


대단한 일자리는 아니지만 시간을 들여 살피고 선택한 결정이 괜한 위험을 줄여 준 셈이다. 무엇보다 마음 편히 일 하니, 먹고사는 일을 더해 빚까지 빨리 갚아 나가야 하는 내게 전일제 일이 안정감을 주어  좋았다.

힘들지만 저녁에는 집에 돌아와 외주 이모티콘 작업을 더해가며 차근차근 조금씩 빚도 갚아 갈 수 있었으니 더욱 그랬다.




가게가 문을 닫는 월요일 나는 오랜만에 도서관으로 갔다. 작년까지 내게 도피처이자 유배지 같았던 공간. 그리고 끝내 순전히 그 목적에 맞게 책으로부터 위안을 받을 수 있었던 나를 위한 공공시설.

사실 손님에게 내어주는 순두부만큼이나 순둥 순둥한 식당 주인을 처음 밖에서 본 것은 작년 이맘때 이 도서관이었다. 


도서관 이용자에 한해 주차가능이라는 팻말이 무색하게 포터블 트럭들이 수시로 대어 져 있고 주변 상가 손님들의 차들도 천연덕스럽게 주차를 하는 혼돈의 야외 도서관 주차장. 


그날 밤새 내린 눈에 길이 미끄러워 되도록이면 도서관 주차장에 차를 대려고 애를 썼는데, ㄷ자 모양의 주차장 모서리에 주차를 하려고 차의 엉덩이 들이민 순간 아차 싶었다. 사선 옆 방향으로 욱여넣듯 주차된 중형 벤의 크기를 빗겨 들어가기엔 초보 운전 티를 벗지 못한 내가 헤쳐 나갈 수 있는 각이 아님을 알고 순간 당황하고 만 것이다. 들어가기에만 애매한 것이 아니라 정면의 트럭 때문에 다시 나올 자신이 없어진 나는 그대로 멈춰 섰다.


때마침 폭설 끝에 울퉁불퉁 다져진 눈들이 쌓여 있어 차 창을 내리고 더욱 우물 주물 할 때, 맞은편 차에서 한 남자가 내려 조심스럽게 “제가 나갈 테니 여기에 주차하세요” 하며 차를 빼 주었다. 앞에서 헤매고 있는 나를 보기가 딱했던지 자기 자리를 양보하고 그 애매한 내 자리에는 본인 차를 주차해 준 것이다. 역시 그때도 나만이 그가 순두부 가게 주인임을 알아보고 있었지만 아는 체하지 않고 연신 고맙다는 인사만을 하고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도서관에 들어가 그를 다시 만난 위치. 일반 열람실 도서 청구기호 '100' - 철학 코너 한 모퉁이였다.

한나 아렌트는 고독해야만 사유와 이해가 가능하다고 하지 않았나. 모든 도서의 처음 시작은 철학이 되는  배치의 분류처럼 나에겐 정신의 질서를 찾고자 하는 사람이 모여드는 상황의 분류로 인식되는 이 코너에서 그를 보니 다시금 뭔가 반가워진 기억이 있다.



해가 바뀌어 찾아온 도서관은 내가 관찰하던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다. 두 명의 사서부터 익숙했던 얼굴 모두가 보이지 않았다.


3층 노트북 열람실에서 공시 준비를 하던 중년의 여인. 열이 나는지 옆의 사람 아랑곳없이 혼자서 에어컨을 껐다 켰다를 반복하여 주변을 힘들게도 했지만 죽어라 매진하는 열정만큼은 대단해, 격려해 주고 싶었던 그 사람의 당락은 어떻게 되었을까? 시험에 붙었어도 그 자리에 없겠지만 아마 떨어졌어도 상심으로 다시 나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늦은 나이에 매달린 일은 시기적으로도 다시 도전하기란 쉽지 않을 테고 말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매일 해가 드는 일반 열람석 창가에 앉아 두서없이 이런저런 종류의 책을 쌓아 놓고 읽다가 두세 시가 되면 꾸벅꾸벅 졸던 젊은 남자. 거의 일 년이 다 되어 가도록 도서관 문을 열자마자 들어와 같은 자리를  꿰어 차고는 저녁 즈음 쓰윽하고 짐을 챙겨 나갔는데, 어느 날 점심이 지날 때쯤 걸려 온 전화를 받고 화들짝 놀란 듯 나가더니 그날 이후로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 사람을 두고 몇몇 공상을 이어 가다가 그가 발길을 끊은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그와 나의 유배지에서 벗어날 계기가 된 좋은 메시지였기를 바라 마지않았었다.


아 참, 그리고 그리운 한 분. 도서관 맨 꼭대기 휴게실에서 도시락을 먹고 있노라면 아동안전지킴이 조끼를 입은 할아버지 한 분이 앉았다 가시곤 했다. 밖에서는 버티기 힘든 지난한 여름과 겨울, 냉난방 되는 휴게실에 앉아 잠시 창 밖을 보다 가시는 노인. 인자해 보이는 그분을 자주 만나다 보니 손에 든 귤 몇 개를 나눠드리곤 했는데, 그 이후로 서로 목례를 하며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다른 어르신 두 분과 같이 담소를 나누는데, “내가 6. 25 때 아들을 데리고 피난을 내려오는데 말이야”라며 말문을 열었다. 도시락을 먹으며 귀동냥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깜짝 놀랐다. 그 당시에 아이가 있는 남자였다면 할아버지의 연세는 얼마란 말인가? 새삼 고개를 돌려 할아버지를 봐도 정정하신 모습이 그렇게까지 보이지 않아 의아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던 할아버지가 열람실에 내려와 돋보기를 쓰고 역사책을 읽고 가시곤 했는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지금 그 할아버지의 안부가 제일 궁금해져, 오는 날 다시 뵙고 인사하고 갈 수 있으면 좋았으련만 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섰다.


도서관에서 나를 보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지켜보았을까? 어느 날은 책을 읽다가 다른 어느 날은 쓰임새가 있을지 모르는 글을 쓰고 앉아 있던 내 모습을 보고 있던 누군가가 있기는 했을까?


도서관에서 본 사람들은 내게 호기심을 주는 관찰 대상이었지만, 정작 내게 가장 큰 힘을 주었던 사람은 이 유배지의 장서에 묻혀 있는 동서고금의 천재들이었다. 문자의 힘을 빌어 살아 숨 쉬는 유령들이 나를 일깨우고 살아갈 용기를  불어넣은 것이다.


내가 겪고 인지하는 모든 것은 인간이 끝내 해답을 찾지 못하는 알 수 없는 영역에서 벌어지는 것들임을 깨닫는다면 내 생의 의문과 불만족과 만들어지는 고통 또한 모두 맥없이 부질없어지는 것이다. 진실이 아닌 이 모든 현상들 때문에 단 한 가지 진리 인 내 존재를 무너뜨릴 것인가? 철저히 경험론자인 데이비드 흄은 경험하지 못한 죽음 너머의 시간 까지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나는 이런 사람의 정신을 알고도 더 이상 연약해질 필요가 있을지 반문하며  공공 서재 한편에서 나만의 고비를 이겨내고자 애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의 유배지를 너무 오래 벗어난 탓일까? 그날은 의연하고자 했던 마음을 잊고 조금은 무너지고 말았다. 


도서관에 갔다가 마치 퇴근이라도 하는 것 마냥 집에 돌아가면 아버지가 손수 된장찌개를 끓이고 콩나물까지 무쳐 저녁 밥상을 차려 주시기도 했는데 그날 빈 집에 들어서니 갑자기 울컥해진 것이다. 그립기 시작하면 안 되는데….

아버지가 지워져 가는 것인지 쌓여 가는 것인지 모를 집에서 또 혼자 저녁을 차려 먹었다. 화장실 두 개인 더 큰 아파트로 이사하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이제 지켜 낼 수 있을지도 걱정이 된 소중한 집. 


유난히 추운 밤, 적막이 싫어 아버지가 앉던 푹 꺼진 소파 자리에서 잠시 티브이를 보다가 일어나, 내일의 일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글 반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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