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라이프가 대세인 요즘이다. 나도 뭔가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아 이층 서재를 둘러봤다. 정리가 필요하단 생각이 단박에 들었다. 어떻게 정리할까 생각하며 벽면 가득 있는 6단 책꽂이를 쳐다봤다. 첫 단에 놓인 아들 일기장이 눈에 들었다. 일기장 십여 권이 쌓여있어 자연스레 손이갔다. 아들은 대전 성모초등학교를 다녔는데 1학년부터 6학년 때까지 일기와 독서일기를 작성해야 했다. 사내아이 아닌가! 일기 쓰기를 정말 싫어했다. 아들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투정을 부리던 때가 일기장을 펴며 생각났다.
아들은 책을 읽으면 됐지 왜 독서일기를 써야 하냐며 쓸 때마다 투정을 했다. 나도 꼭 써야 할까 싶었지만 학교 정책이라니 어쩌겠는가! 정해진 권수의 독서일기를 쓰지 않으면 써서 제출할 때까지 아들과 부모가 함께 독촉을 받아 늘 아들을 달랬다. 아이스크림으로, 작은 용돈으로, 그게 학생의 일이라는 잔소리로, 가끔은 큰 소리로 혼을 내 한바탕 눈물바람을 본 후 독서일기를 모두 채웠더랬다. 어찌하겠는가? 학교 정책이니 말이다.
내가 자라던 때는 언감생심 독서일기는 생각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육성회비 낼 돈도 없던 시절 책을 사서 독서를 한 후 일기를 써서 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던 때였다.
아들 학교는 사립인 데다가 원장 수녀님이 교육수장인 곳이라 유독 쓰기가 많았다. 그래서일까? 아들도 내가 독서일기를 모아둔 걸 버리라 하지 않는다. 나중에 아들이 결혼해 아이를 낳으면 꾸러미로 묶어 보내줄 작정이다. 과거를 돌아보라고 말이다.
독서일기 목록 삐뚤빼뚤...
'그 시간에 동물들은 행복했을 것 같다'는 아들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6학년 졸업할 때까지 쓰는 것이라면 모조리 싫어했던 아들! 정작 고등학교 시절 독후감으로 여러 번 상을 탔다. 어린 시절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하기 싫다 꾀를 내고 투정을 부리고 나와 다투던 아들이 초등학교 때 다져진 독서일기 덕에 고등학교 매 학년 다양한 분야에서 독후감 상을 탔다. 참 세상은 모를 일이다.
책꽂이 앞에 앉아 아들 독서일기를 보니 얼마나 쓰기 싫었는지 삐뚤빼뚤한 글자만 봐도 그 마음이 잡힌다. 아마 아이를 키울 때도 읽고, 이사 때도 이걸 버려야 하나 가지고 가나 생각하며 이 일기를 읽었겠지만 도통 기억이 없다. 너무 새로워 한참 읽었다. 틀린 글자와 아들 마음이 읽혀 웃다가, 안쓰럽다, 아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하는 맘으로 읽었다. 어떤 소설보다 재밌어 잔 미소가 입가에 한가득이다. 아마 이런 이유로 버리지 않고 일기장을 챙겨놓았나 보다.
하늘을 나는 자전거 2008년 7월 21일 일요일
돌이는 자전거를 타고 먼 곳을
여동생 찌아도 함께 데리고 미국까지 갔다.
동생이 별나라를 가고 싶다고 하니
자전거가 별나라까지 갔답니다.
별나라 친구도 만나고 힘든 일도 있었지만
무지개를 타고 집에 왔다.
이런 자전거가 있다면 토성까지 가고 싶다.
엄마를 태우고 여행 가고 싶다.
그나마 잘 쓴 글씨다. 어떤 글자는 한참 봐야 되니....
나를 태우고 여행 가고 싶다는 마지막 구절을 읽으니 행복하다. 7월 더위에 선풍기를 틀고 서재에 앉아있는데 맘속은 에어컨 바람같이 좋다. 마지막 그 한 구절로 이리 행복하니 부모 마음이란 헬륨가스 같다. 8살 아들의 사랑이 느껴져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