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시간 7: 말의 탑 쌓기
금요일 오후! 연구실에 앉아 학생들 과제를 막 체크하려는 순간이었다. 보이스톡이 울렸다. 아들이구나! 모니터 앞에 휴대폰을 세우며 미소가 절로 났다. 마음은 벌써 풍선처럼 둥실하다. 8월 중순 아들이 짐을 싸서 시카고로 갔을 때만 해도 날마다 아들 생활이 궁금했다. 유심칩을 준비하지 않고 간 아들 때문에 전화를 기다리던 이틀 동안은 얼마나 걱정이 되던지... 종일 마음을 조리며 아는채를 한 남편을 째려봤다.
"야 뭘 사가냐? 시카고 공항에 널려 있을 텐데. 거기서 사."
자신 있게 말하던 남편 말이 그때처럼 얄미웠던 적이 없었다. 미국 시카고 공황 상황을 모르는 소리였다. 사실 남편을 탓할 일이 아님을 나도 안다. 아들은 성인이고 자신의 행동에 따른 결과는 아들이 져야만 옳고 아들이 준비하지 않았으니 옆에서 아는 척 남편이 참견을 했다 해 남편을 나무랄 수 없지 않은가? 그렇지만 그 소리를 한 남편이 미웠다. 여하간 이틀 후 아들과 통화를 하곤 가슴을 쓸어내렸다. 통화 후 남편은 되려 날 구박했다. "쓸데없는 걱정은~~ 거봐 잘 하잖아"면서 말이다. 아들이 자신을 닮아 일처리는 잘한다나?
일주일에 한 번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날마다 걱정이 됐다. 하루 종일 걱정되니 하루 종일 전화를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참았다. 궁금함을 참는 일도 부모의 일이다. 아침에 눈을 뜨며, 밤에 잠에 들며 "아들이 잘 있나 궁금하다" 하니 남편은 "뭐가 그리 궁금하냐? 쓸데없는 생각은"이라며 혀를 찼다. 뭐가 궁금하겠나? 어떻게 수업을 듣는지, 어떤 요일에 무슨 과목을 듣는지, 수업은 들은만한지, 궁금함이 차곡차곡 쌓여 다보탑이라도 쌓을 기세였다. 개강 2주 후 내 궁금함에 답을 하듯 아들이 수업시간표를 캡처해 보내주고 한주가 더 흐른 후 도서관과 수업 종료 후 교실 사진을 보내줬다. 답답함이 조금 가셨다. 어떤 동선으로 하루 일과가 시작되는지 짐작이 되니 마음이 편해졌다.
주말에는 내가 전화를 했다. 토요일이나 일요일 아침 보이스톡을 하면 시카고는 저녁 무렵이라 아들이 최소한 잠을 자느라 전화를 못 받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으니 주말 저녁 무렵에 맞춰 전화기 통화버튼을 눌렀다. 해가 지는 시간이 그리움이 가장 강한 시간 아니겠는가? 그럼 혹여 아들이 귀찮다 할지라도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해주지 않겠는가 말이다. 자식은 한평생 구애의 대상처럼 조심스럽다. 너무 가까우면 서로 휘둘리고 너무 멀면 남보다 못하니 말이다. 대화는 늘 별거 없다. 한 주를 어찌 보냈는지, 날씨는 어떤지, 친구는 조금 사귀고 있는지, 기숙사 생활은 편안한지, 수업은 들을 만한지, 너무 어렵거나 쉽지는 않은지 등등 소소한 질문과 답변을 하며 아들 얼굴을 보는 시간은 즐겁고 편안하다. 주말 아침 내가 서재 컴퓨터 책상 앞에서 아들과 통화를 하면 남편은 옆에서 작업을 하거나 게임을 하다 "잘 있냐?" 하며 잠시 얼굴을 드밀고는 옆에서 "잘도 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라며 구시렁댄다. 그렇게 2개월 동안은 일주일에 한 번 내가 전화를 걸어서 통화를 했다. 그러곤 지나가는 말처럼 아들에게 말했다.
"네가 편한 시간에 전화를 주면 좋을 듯하다. 엄마야 날마다 전화하고 싶지만 네가 일이 있어 전화를 안 받으면 괜히 걱정을 하니 네가 편한 시간에 하렴. 걱정이 자라면 쓸데없이 더 걱정을 해서. 아들, 그렇지 않겠어? "
"그런가요? 저는 잘 지내요."
남편과 제주도 가을소풍을 갔던 때도 아들에게 보이스톡을 하니 아들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남편이 "주말이니 놀 것이라나?" 하며 쓸데없이 제주도에 와서도 전화를 한다며 날 구박했다. 한 30분 지나니 아들이 기숙사 로비에서 전화를 했다. "엄마, 묵음으로 해 두어서 소리를 못 들었어요" 했다. 내가 핸드폰으로 섭지코지의 풍광을 보여주니 아들이 귀여운 탄성을 내며 "좋은데요? 친구 부모님도 이번 주말 제주도로 놀러 갔다던데. 잘하셨네요. 날씨가 너무 좋네요" 했다. 아들에게 "제주도 바다 빛이 너무 예쁘지. 하늘과 바다가 정말 예술이다. 너는 잘 지내니? 엄마는 아빠랑 놀러 오니 좋구나" 했다. 아들은 "저야 잘 지내죠. 뭐 못 지낼 일이 없잖아요" 했다. 아들과 풍광을 공유한 후 남편이 내 핸드폰으로 아들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눈 후 내가 운전을 해서 전화를 끊었다. 남편이 다시 누우며 "심심한가 보네 전화를 다 하고" 했다. 내가 웃으며 남편에게 말했다. "이제 아들이 전화할 거야. 처음이 어렵지 몇 주만 잘 기다리면 아들이 알아서 전화를 걸 테니 두고 보라고."
그런 후 아들은 주말만 되면 알아서 전화를 했다. 남편과 있다 전화를 받고 내가 "어이구 어찌 전화를 다했니? 감동이다 아들!" 하니 아들이 "엄마가 좋아할 듯해서 제가 먼저 했죠" 한다. 참 자식들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참고 기다리면 저절로 다가오니 말이다. 부모에게 있어 가장 큰 위협은 자식에 대한 불안, 걱정, 궁금함이다. 다른집 딸, 아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집 딸은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하면 말을 잘 듣는데 아들은 좀채로 눈을 마주치기 어려웠다. 아들이 골이 나면 눈은 고사하고 방으로 연기처럼 사라지니 말이다. 남편말을 빌리지만 딸은 말은 잘 듣지만 행동은 제 마음대로 하고 살고, 아들은 말은 듣지 않지만 행동은 우리 마음같이 한단다. 참 모를일이다. 여하간 자식사랑 앞에선 믿음과 인내, 존중과 배려, 존재에 대한 확신이 쉽지 않다. 눈앞에 있는 아들이 시험기간 하루 종일 방바닥에 누워있는 것을 다년간 참아온 나로서는 눈앞에 없는 자식의 걱정과 궁금함을 못 이겨 내겠는가?
아들 키우는 엄마들에게
궁금함을 참는 일은 부모의 일이다.
불안과 걱정을 감내하는 일도 부모의 몫이다.
아들에겐 부모가 사랑하여 다가간 말이 참견이 되기 쉽다.
그러니 자식 키우는 부모는 마음속에 말의 탑을 잘 쌓아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