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온타나스 Hontanas ~ 보아디야 델 카미노 Boadilla del Camino ( 30km )
2. 알베르게: EN EL CAMINO(사설 알베르게)
날이 밝기도 전에 출발한 아침길... 구름이 가득하다. 날은 밝았지만 낮고 두터운 구름이 뒤를 따랐다. 긴 길이 펼쳐졌다. 작은 언덕을 넘으니 눈 아래 긴 길 위에 순례자들이 개미처럼 걷고 있다.
언제 저곳에 다다를까? 그런 생각은 이제 없다. 길은 있고 한발 나서면 언젠가 그곳에 다다를 것을 배웠으니.. 그저 다가올 길을 보고 다가간 길에 미소 지을 뿐이다. 5km마다 바(bar)에 들러 휴식을 하던 일은 잊어야 할 길에 도착했다. 10km마다 작은 마을이 있으니 말이다. 오늘도 10km 걸어 나와 한국 여인이 운영하는 알베르게( 오리온)에서 비빔밥을 먹었다. 반가운 인사와 푸짐한 비빔밥을 보니 침이 절로 고였다. 한국인의 인심은 밥심이고 밥심은 진심이다.
20km에서 두 번째 휴식을 취하고 막 1km를 지났을 때였다. 424km가 남았다는 이정표를 보고 일행들이 돌아가며 사진을 찍을 때 내 차례라 한발 내디디니 발에서 우지직하는 소리가 들렸다.
달팽이의 죽음! 원하지 않았으나 작은 돌처럼 생긴 달팽이가 웅크리고 있다 내 신발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무정한 죽음이다. 내 집 화단에서 꽃잎과 꽃들을 먹어치우던 달팽이가 아니다. 양쪽 길가 수풀에서 자라던 달팽이가 길을 건너 새로운 복음자리를 차지하러 길을 나섰던지, 짝을 찾아 길을 나섰던지 했을 게다. 이유야 알 수 없지만 나의 신발 아래서의미없이 죽었다.
순례길에서 달팽이와 지렁이, 민달팽이의 죽음은 일상이다. 나의 발만이 무정한 것이 아닌 모든 순례자의 발은 무정하다. 자칫 피하려 하다 균형이 깨지면 근육에 문제가 생기니 말이다. 순례자의 발길을 피하지 못한 죽음이 즐비했다.
순례자의 길은 달팽이의 길에 무정하고 달팽이의 죽음은 개미에겐 축제이니 생과사는 늘 함께한다. 달팽이의 죽음을 애도하고 개미의 축제를 축하하고 내 부주의를 탓하며 남은 길을 걸었다.
12시를 넘어 남은 8km를 걸으니 구름 속에서 태양이 살며시 나왔다. 일찍 태양이 나왔으면 달팽이가 긴 길을 나서지 않았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등 뒤에서 바람이 불었다. 쳐진 내 등에 힘을 주기라도 하듯 살랑이는 바람에 마지막 힘을 냈다. 생과 사를 오가는 미물들의 삶에 비하면 얼마나 큰 축복 속에서 이 길을 걷고 있는가? 내 발바닥이 디딜 때마다 아프다 한들 달팽이의 죽음에 비하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모든 생은 아름답고 찬란하건만 오늘 내 발밑에서 생을 마감한 달팽이에게 애도를 표하며 발의 고통을 뒤로했다. 내 고통에 예민하기 전에 살아있음과 걷고 있음에 감사해야 함을 배운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