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아빠 생일 미역국을 끓이고!!
날이 덥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른 더위가 찾아와 시루떡 쌓아 올리듯 하루하루 더위 기록을 경신하고 있어 8월이 두렵다. 이미 유럽에선 40도를 넘는 더위에 몇백 명이 넘게 일사병으로 사망을 하였다니... 더위는 지구촌 모두가 당면한 일이 됐다.
남편이 태어났던 때에는 이리 덥지 않았겠지만 오십여 년이 흐른 지금은 덥다 못해 찌는 날씨가 되었다니. 일요일 낮 당직을 하러 일지감치 남편은 출근했고 아들과 나는 저녁에 아빠 생일상을 차리자 했다. 더운 날이다. 오후 3시에 아들이 시장을 봐왔다. 소고기 반 근과 케이크! 미역국을 유독 좋아하는 아들이 남편 생일상에 올릴 미역국을 끓여 보겠다니... 오후 4시에 함께 하자 했다. 아빠 생일을 맞아 아들이 미역국을 끓이는 것으로 생일 선물을 하겠다니 이것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미국 유학 중 방학을 보내려 온 22살 아들이다.
찬장에서 미역을 찾은 아들이 미역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내게 얼마나 불려야 하는지 물었다. "엄마, 한 묶음이 4인이 한번 먹을 미역 양이라는데.... 몇 개를 넣어요?" 아들이 미역 뭉치를 들고 고개를 갸웃하며 쳐다봤다. "더운 날 미역국을 끓이는데 두 끼는 먹어야지. 두 묶음 불리자" 하니 아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그럼 8인분인데요?" 했다. 한번 끓여 먹을 국을 이런 더위에 끓이는데 적게 끓이는 게 에너지 낭비다. 최소 노력으로 최대 효과를 내는 아줌마 정신이 필요한 때이다.
시원스레 찬물에 미역 두 묶음을 담그며 "걱정 마. 아들! 두 묶음도 내일 저녁이면 다 없어져. 엄마가 많이 먹을 거란다. 미역이 다이어트 식품이거든" 하고 말하니 아들이 웃었다. 일생 다이어트 중인 내가 남편 생일날 미역국을 조금 많이 먹는다고 누가 뭐랄까? 아들이 사 온 케이크를 한조각도 못 먹을 터이니 미역국이나 실컷 먹을 작정이었다.
불린 미역을 씻어 칼로 듬성듬성 썰 때 덩치 큰 아들은 유심히 칼질을 봤다. "너무 잘지도 너무 크기도 않게 설어야 미역국 먹기가 좋아" 웍을 꺼내서 가스불에 올려다라니 아들이 웍을 꺼내 올리며 "어떤 기름으로 볶아요?" 했다. "엄만 참기름이나 들기름으로 볶는데" 했더니 아들이 "참기름이나 들기름이 없으면 콩기름을 넣어도 돼요?" 했다. "글쎄, 콩기름은 써본 적이 없는데 없으면 넣지 말고 볶던지" 하니 아들이 웃었다.
내가 마늘, 액젓, 참기름, 미역을 웍에 넣고 아들에게 볶아보라 했다. 뜨거운 불 앞에서 아들은 땀을 흘리며 "얼마나 볶아요?" 했다. "참기름을 넉넉히 넣고 볶다 보면 미역이 맑은 진초록 빛을 내며 색이 변해. 자 봐봐. 그리고 조금 더 볶으면 자작하게 초록 기름 물이 생기거든. 그러면 거의 다 볶았다고 생각해도 되고" 하니 아들은 바쁘게 웍을 저으면서 뚫어져라 웍 속의 미역 상태를 살펴봤다.
미역을 볶은 후 아들에게 국물을 낸 소고기 냄비에서 고기를 꺼내 고기를 자르라 하니 칼을 들고는 "어떻게 썰어요" 했다. 아들은 미역국을 좋아해서 미역국이라면 반찬 투정 없이 미역국을 먹었는데, 수없이 미역국을 많이 먹었는데, 늘 소고기로 국물을 내 지겹도록 거의 똑같은 모양으로 자른 고기를 먹었는데, 어떻게 고기를 써냐고 묻다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남편이나 아들이나 똑같다. 둘은 가끔 음식을 해보겠다 해 놓고는 둘 다 멀뚱멀뚱 날 바라보며 생전 처음 먹어보는 음식을 하듯 내게 묻고 또 물으니 말이다.
도마에 익은 고기 덩어리를 꺼내놓고 고기결의 반대로 적당히 자르라고 하니 고기를 숭덩숭덩 잘라 더 얇게 썰으라 하니 "큰 고기가 좋지 않아요?" 하며 말은 그렇게 하곤 잘라진 고기를 집게로 잡고 얇게 고기를 다시 잘랐다. 어찌나 조심스럽게 고기를 썰던지 웃음이 나왔다. 아빠보다 더 덩치가 있는 아들이지만 귀엽다. 자식은 자라도, 늙어도 귀여울 수밖에 없는 존재다.
볶은 미역을 국물 낸 냄비에 넣고 아들이 잘게 썰어놓은 소고기를 함께 넣고 간을 했다. 멸치액젓으로 간을 하며 아들에게 먹어보라니 약간 싱거운 듯하다 하여 소금으로 간을 조금 더 하며 너무 뜨거운 상태에선 간을 하기 어려우니 끓이기 전에 약간 싱겁다 싶게 간을 하고 한소끔 끓이면 간이 잘 맞는다 하니 아들이 "그럼 얼마나 더 끓여요?" 하기에 땀을 닦으며 아들에게 일렀다. "일단 사십 분에서 한 시간 가량 끓이면 돼. 센 불로 끓여 끓고 난 후 약불로..." 땀이 났다. 전기밥솥에선 밥이 되느라 뜨거운 김이 나고 가스불에 올려진 미역국은 국물과 미역이 어우러지느라 펄펄 끓고 집은 에어컨을 켜지 않아 열기로 가득 찼다.
남편이 집에 들어서며 "왜 이리 더워?" 하면서도 미역국 냄새에 미소가 번졌다. 아들과 내가 생일 상을 차렸다. 김치, 야채볶음, 설에 했던 야채, 인삼 튀김을 반찬 삼아서 말이다. 아들이 설렁설렁 걸으며 수저를 놓고 밥을 푸고, 내가 담아 놓은 국을 옮기며 한낮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식탁에 모여 앉았다. 남편은 "뭘 미역국을 끓였어" 하며 싱글벙글이다. 식탁에 내가 앉으며 "덥지?" 하니 아들이 "에어컨 켤까요?" 했다. 음식을 할 때도 안 키던 에어컨을 말이다. "그냥 먹자. 이열치열이라고.. 여보. 아들이 아빠 생신이라고 미역국을 손수 끓였어. 고기도 사 오고, 미역도 불리고, 미역도 볶고, 고기도 자르고, 간도 나랑 하면서.." 아들이 생글거리며 웃었고 남편은 너무 행복하게 웃으며 "아니 이렇게 맛있는 미역국을 아들이 끓였다고? 이 더위에?" 하며 아들을 바라봤다.
더운 날에 더운 요리를 해서 집안 열기는 가득했지만 맘속이 시원했다. 남편도, 아들도 너무 맛나게 미역국을 먹었다. 더운 날들의 연속이지만 올해 들어 가장 시원한 저녁이었다. 아들이 끓인 뜨거운 미역국을 먹어서 마음속은 계곡 물속에 있는 듯했다. 저녁을 먹고 아들에게 아이스커피를 내려달라니 두말없이 커피를 내려준다. 아빠에겐 뜨거운 미역국을 대접하더니 내게 차가운 아이스커피!!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남편과 동네 산책을 했다. 뜨거운 여름날! 행복한 저녁이었다. 아들이 끓인 남편 생일 미역국을 먹어서일까? 차가운 아이스커피를 마셔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