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평생 즐거움은 통장 늘리기다. 단돈 몇만 원에서 몇십 만원씩 돈을 모아 단위를 늘리고, 다시 돈을 쪼개어 통장을 만드니, 돈의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돈을 모으는 행위가 마음 안식이었다. 돈뿐이랴! 모으는 것은 품종을 가리지 않아 소소한 물품이 집안 곳곳에 있다. 20여 년 전 산 김치냉장고, 10년 전 산 김치냉장고, 4년 전 구매한 김치냉장고가 좁은 부엌 한편에 일렬로 늘어서 어머니 보디가드 인양 부엌을 지키고 있다. 김치냉장고뿐인가? 평생 일을 하시며 받은 기념품과 선물세트들이 4개 방중 2개 방에 차곡차곡 쌓여있고 부엌 찬장은 기억도 나지 않은 일가친척의 결혼, 환갑, 회갑에 받은 수제 세트, 포크세트, 찻잔세트가 나이를 먹어가며 숨어있다.
25년 전 몇 번인가 부엌 찬장을 보며 "예쁜 수저 있네요. 어머니 내어 쓸까요?" 했을 때 어머님은 "얘, 지금 쓰는 수저도 한창 쓸만하니 그건 나중에 쓰자." 하셨다. 내놓지도 내게 주지도 않은 물건들의 쟁여놓음을 내가 어찌 이해하랴? 작년 추석, 수저통에 두 벌 뿐인 수저를 보고 "어머니, 저희 수저들은 어디다 놓으셨어요?" 하니 어머니는 "그걸 어디다 두었더라? 얘, 그냥 찬장에 있는 것 중 아무거나 꺼내 쓰자." 하셨다. 신혼 때 보았던 수저세트를 뜯었다. 어머니는 그렇게 좋은 게 있는데 이 못난 수저를 여태 썼다며 혀를 찼다. 내가 "낡은 수저들은 버려도 될 것 같은데~ 그래도 되죠?" 하니 어머니는 "그래 네가 버려라. 난 못 버린다." 하시며 24년이 되어서야 오래된 수저의 버림을 허락하였다.
밥상에 앉아 "어머니, 아낀다고 다 좋은 건 아녀요. 20년 전, 10년 전에 꺼내 써도 됐는데, 몇 번 바꾸어 먹을 수저 세트가 있는데, 너무 오래 쓰셨어요. 제가 와서 종종 버릴게요. 뭐 버릴 것 있음 말씀하세요. 싹 버려드릴게요." 했다. 어머님은 "버릴게 수저만 있겠니. 저 방에 버릴 것 천지다. 나랑 네 아버지가 모은 잡동산이가 가득한데 버릴 기운이 없다. 너희들이 와서 버려라." 하신다. 잡동산이라니! 어머님은 늘 다음에 쓸 귀중한 것이라며 쟁여두었는데 이젠 기운이 없어 못 버리는 잡동산이라 한다.
근검절약도 유전된다. 남편도 무엇이든 차곡차곡 쌓아둔다. 어머니를 닮아 사는 물건도 아깝고, 쓴 물건도 아깝고, 버릴 물건도 아깝다. 냉동식품에 딸려온 아이스팩도 언젠가 꼭 쓸 것 같아 냉동실에 슬쩍 넣어두고, 잼통도 찬장 깊숙한 곳에 넣어두고,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도 살그머니 뒤꼍 선반에 올려둔다. 그것뿐인가? 본인이 구매한 소소한 제품들은 버리는 법이 없고 수중에 들어온 돈도 아껴 쓰지만 늘 예상치 못한 씀씀이를 불러온다.
집을 짓곤 남편은 사야 할게 많다며 입을 내밀었다. 정원관리는 맨손으로 할 수 없지 않은가? 물을 주고, 땅을 파고, 잔디를 깎고, 거미줄을 치우고, 가지를 치고, 휘어진 가지를 세우는 작업엔 다 필요한 도구가 있다. 꽃들을 옮길 통이며, 작은 화분이며, 약통이며 생각보다 많은 물품이 필요했다. 어머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쟁여놓는 습성과 근검절약이 합쳐진 상황에서 21세기 인터넷 구매가 겹쳐지니 그 시너지는 놀랍다.
돌을 깔자는 남편의 반대를 무릅쓰고 "잔디 관리는 내가 할 터이니 걱정 말라." 하여 잔디를 깔았다. 2년 전 마당에 깐 잔디가 여름 장맛비에 초록 빛깔로 성장하니 좋았다. 잔디 깎을 때가 되어 기계를 사달라 하니 남편은 "알았어, 내가 사줄게, 당신이 깎는다 하니~ "하며 싱글벙글 웃었다. 일주일을 기다리니 남편이 주문한 상자가 도착했다. 커다란 상자에 담겨온 잔디 깎기 기계를 조립하는 남편에게 "왜 이건 전원이 없어?" 하니 남편은 "이건 수동이야." 했다. "수동? 뭔 힘으로 깎어?" 하니 "그냥 살살 밀고 다니면 되는 거야. 운동도 되고 좋잖아?" 했다. 잔디 쓰레받기가 덜렁덜렁 뒤에 달린 잔디 깎기는 너무 설렁해 보였다.
전기식 잔디 깎기를 구매해 달라했는데 십만 원 후반대의 수동 잔디 깎기를 덜컥 구매하곤 어렵지 않다며 깎아보란다. 5미터 밀고 나가는 동안 가다 서기를 네 번은 한듯하다. 성근 잔디는 그래도 깎였지만 촘촘하고 뻣뻣하게 자란 잔디는 기계가 나가지 않았다. 잔디 잎이 짓이겨졌다. 잔디에게도 내게도 못할 짓이었다. "힘들어! 잘 안 나가는데~ 이걸로는 난 못 깎겠는걸?" 했다. "운동도 되고 좋지 않아?" 하며 남편은 뜨거운 8월 저녁, 땀을 비 오듯 쏟으며 잔디를 깎더니 고개를 떨궜다. 잔디는 내가 깎겠다 하였지만 수동 잔디 깎기 기계로는 팔에 힘이 적은 내가 쉽게 깎을 수 없음을 남편은 8월 삼복더위에 잔디를 깎아보고 깨달은 듯했다. 결국 남편은 자신이 구매한 수동 기계로 직접 잔디를 깎던지 새로 전기식 기계를 사던지 하는 난관에 봉착했다.
남편이 수동 잔디 깎기로 2개월간 잔디를 깎았다. 집에 잠시 다니러 온 딸은 기계를 밀더니 "아빠! 이건 인간이 할 짓이 아니야. 왜 이런 걸 샀어? 이걸로 엄마가 어떻게 깎아? " 하며 깎던 기계를 세워두었고, 주말에 집에 왔던 아들은 생글거리며 "이게 최선이에요? 아빠! 이걸로 엄마가 잔디를 깎을 수 있다고 정말 생각했어요?" 했다. 남편은 난감한 미소를 머금고 두 얘들과 나를 번갈아 봤다. 남편은 2개월간 땀을 뻘뻘 흘리며 잔디를 깎고는 "할만한데, 조금 덥네." 했다. 그 수동 잔디 깎기 기계는 2개월간 마당 잔디 위를 남편과 함께 얼정대다 창고에 처박혔다.
새 전동 잔디 깎기가 집에 온날 내가 전원을 연결하고 파워를 누르니 딴 세상이었다. 손잡이를 잡고 약한 힘을 주어도 기계는 앞으로 성큼성큼 나아갔다. 흡입식 잔디 깎기라 깎여진 잔디는 통에 잘 흡입되어 지저분한 잔디 잎이 나뒹굴 지도 않고 마당에 굴러다니던 나뭇잎, 꽃잎, 잔가지들이 통에 소옥~ 쏙 빨려 들어갔다. 기계가 한번 지나가면 잔디는 반드르르하게 정리됐다. "여보 정말 쉽고 편하네, 잔디가 이리 예쁠 수가 없네. 딱 좋아. 이제 걱정 마. 잔디는 내가 깎을 터이니 쉬어. 그냥 쉬어. 푹 쉬어" 했다. 남편은 그제야 환하게 웃었다. 이동도 쉽고 작업도 쉬우니 전동 잔디 깎기 기계는 나와 찰떡궁합이 맞았다. 날 좋은 주말 오후 해 저녁 빛에 잔디를 깎으면 그 향긋한 내음과 이발한 머리처럼 반드르르한 잔디 모양은 얼마나 좋은지. 남편은 데크 의자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움직이는 나를 가끔 보며 좋단다.
구석 잔디가 문제였다. 비를 맞으면 삐죽빼죽 독보적으로 자란다. 작은 가위로 자르며 "조그만 포터블 전동 잔디 깎기를 사줘요." 했다. 며칠 후 남편은 큰 전지가위를 내게 내밀었다. 무게만도 1킬로가 넘을듯한 가위로 잔디를 깎으라니. 구석진 곳 잔디를 30분 깎다 어깨가 빠지는 줄 알았다. 땀을 흘리며 입을 내밀던 나를 보곤 "어렵지 않을 텐데, 왜 그래?" 하고 남편이 한 번 해보더니 "이건 아니구나~" 하곤 포터블 전동 잔디 깎기 기계를 사주었다. 그렇게 구매한 용품이 하나라면 얼마나 좋을까?
처음 사온 삽은 당일 두어 번 삽질에 두 동강이 나 둘이 일을 하다 폭풍 웃음을 날렸다. 물주는 긴 호수는 호수길이만큼 스토리가 기니... 물은 내가 주고 싶어 넉넉히 긴 호수를 사달라 했다. "몇 미터?" 하고 묻기에 "25m나 30m면 될 것 같아. 그래야 쉽지." 했다. 배달 온 호수는 15m였고 짧았다. 남편은 15m도 충분할 것이라 생각해 구매했단다. 한참 짧았다. 한 두세 달은 그 호수로 가까운 곳 나무는 물을 주고 조리에 물을 담아 들고 다니며 나무에 물을 주었다. 정말 조리를 들고 다닐 때마다 화가 났다. 남편이 몇 달을 보다 미안한지 25m 호수를 구매했지만 호수 재질이 좋지 않아 호수를 감을 때마다 애를 먹었다.
결국 30m 호수를 샀다. 그 두 제품의 가격차는 일만 원이 조금 넘을까 싶다. 30m 호수는 1년 6개월을 사용하니 호수가 꼬이고 경화되어 감아 정리하기가 버거웠다. 내가 한 시간 넘게 물주는 모습을 설렁설렁 보며 게임을 하던 남편에게 호수를 감아달라 하니 조금 뻣뻣하지만 감을만하단다. 남편의 이두박근과 삼두박근에 힘이 불쑥불쑥 들어가는 게 보였다. 얼마 가지 않아 호수를 살 수밖에 없음을 그 근육을 보며 느꼈다. 올여름 결국 가격이 비싼 30m 호수가 들어왔다. 호수가 말랑말랑하니 내 힘으로도 호수는 잘 감겼고 호수의 헤드도 어쩌면 그리 분무가 아름다운지... 사실 그런 용품을 말하자면 입이 아프다. 유리창 닦기, 거미줄 걷기, 조그마한 정원 삽, 정원 가위, 풀 뽑기 도구들과 꽃 받침대 등등 종류도 다양한 제품들이 몇 차례 돌아가며 집에 들어왔다 창고로 들갔다. 남편은 한국경제 및 지역상권 활성화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다. 근검절약하려다 잡화상이 될 판이다.
정원관리를 위해 플라스틱 조립 창고를 사자니 남편은 아까워 손을 떨었다. "플라스틱 창고가 뭐 이리 비싸!" 하며 "뒤꼍에 그냥 정원용품을 쌓아 놓으면 되지." 했다. 아들과 창고를 조립하곤 꽤 넓다 하던 남편은 언제 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커피 머신, 로스팅 기계, 초기 조립한 앰프, 직접 구매한 중고 엠프, 아들방에 만들어 주겠다는 엠프, 연습용 엠프 등, 나도 모르는 사이 구매한 온갖 전자 도구들로 창고를 채우기 시작했다. 수동 잔디 깎기, 목재화분을 만들 때 사용하던 엄청난 크기의 부직포 꾸러미 등 다시 사용할 것 같은 전기기구와 정원 도구들이 창고에 가득 찼다. 인터넷 시대니 필요한 사람들에게 그냥 주라 해도 선뜻 올리지 못한다. 언젠가 쓸 것 같아서, 필요할 것 같아서 말이다.
저녁식사 후 집 주변 산책을 하며 그만 버릴 것과 남 줄 것을 골라 정리하자 하였더니 다 쓸데가 있단다. "당신 정말 어머니 닮았어. 수저세트 기억 안 나? 이러다간 우리가 그리 되겠어! 그만 정리해서 버리고 필요한 사람 있으면 나눠주고 하면 좋겠어." 했다. 남편은 고개를 끄덕이다 "몇 개는 그럴게. 그런데 다 쓸 거야. 걱정하지 마." 한다. 2년 전 저녁 산책 후 같은 말을 했고 같은 대답을 들었었다. 나의 말은 그때부터 정원창고 지붕 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산책을 하며 남편에게 "여보! 딸, 아들, 사위, 며느리가 우리가 쟁여놓은 물건을 버리게 하고 싶지 않아. 정말 소중하지 않으면, 내가 쓰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보내야지. 쟁여놓는 게 아끼는 게 아니야. 물건이건 사람이건 말이지." 하니, 남편은 알았다 한다. 날이 좀 선선해지면 해보겠단다. 두고 볼일이다.
남편이 정원 창고를 보며"그렇게 다 버리면 뭐가 남아?" 하기에, "아니 누가 다 버리래? 지금 우리가 안 쓰는 것은 인터넷에 카페에 올리고, 밖에 내놓으면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겠지. 저번 테이블도 딱지 붙여 내놓으니 가져갔잖아. 그럼 그 사람들이 쓰고 좋지." 하니, 남편은 "허긴 금방 가져가더라." 하면서 "아껴야지! 버려 버릇하다 당신도 버리면 어쩌려고!" 하며 내 손을 꼭 쥐었다. "뭐 날 버리겠다고? 날 버리면 주워갈 사람 어디 있겠어? 참." 하니 남편은 "그러니까 버려 버릇하다 버릇 들면 어쩌려고. 큰일 나!" 한다. 남편이 이리 근검절약하며 날 사랑해주니 참 뭐라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