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때 S 선생에게 영어 문법을 배웠다. (이하 S의 선생 존칭 생략. 선생으로 불리면 안되는 새끼라는 것을 밝힘.) 어느 날, 나랑 친했던 N이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나 S 선생님이 너무 좋아.” 그래? 나는 느끼한 S가 재수 없지만 네가 좋다는데 뭐.
다른 반 친구인 O도 S를 좋아했다. 나는 O가 S와 휴대폰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친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너도 S한테 문자 보내봐.” N은 S와 문자를 주고받았다면서 기뻐했다. 나는 정말 몰랐다. 그때 이미 건전한 선생과 여제자의 관계가 끝이 났다는 것을.
며칠 후 N이 심각한 표정으로 나한테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나와 N은 우리의 아지트였던,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앉았다. N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어제 S가 나오라는 거야. 그래서 S 차를 타고 H시로 갔어. H시에서 고기랑 술을 먹고 돌아오는데… 차를 세우더니 뒷자리로 오라고 하더라. 뒷자리로 갔더니… 막 키스를 하는 거야.” N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술을 가리켰다. N의 입술이 푸르뎅뎅하게 멍이 들어 있었다. 아뿔싸, 내가 악마 새끼를 찾아가는 방법을 알려줬구나. 나는 N한테 몇 번이나 당부를 했다. “이제 S랑 연락하지마. 불러도 나가지 말고.” S는 고등학교 선생님인 작은아버지와도 친했다. 그래서 유독 나를 신경 써주기도 했다. 나는 어쩌다 일어난 실수니까, 조심하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모른 척 하기로 했다.
하지만 N은 할 말이 있다면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나를 다시 끌고 갔다. “추석에 연락이 온 거야. 자기 Z시에 있는데 내가 보고 싶다고. 당장 갈 테니까 나오라고. S가 얼마 안 되어서 집 앞이라고 전화했어. 엄마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는지 못 나가게 하더라.” 당시 S는 40대 중반이었고 자식이 둘이나 있었다. 나는 N한테 신경질을 냈다. “야, S 새끼 씹으라고 했지! 나가지 말라니까.” N은 무척 힘들어했고 나는 그런 N이 답답했다.
하지만 N은 그 후로도 S를 만났다. 나는 N을 이해할 수 없었고 우리는 점점 멀어졌다. 수능을 앞두고 엄청 괴로웠다. 아, 내가 S의 번호를 N에게 가르쳐 주지만 않았더라도, 별일 없었을 텐데. 나는 N이 S와 잤을 거라고 단정 지어 버렸다.
졸업 후 나는 S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S가 다른 반 친구인 O에게도, N에게 했던 행동을 똑같이 했던 것이다. 역겨운 새끼. 나는 역대 물수능 덕분에 서울 소재 대학에 진학했다. 기억을 두고 오고 싶었지만 N과 S를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잊을 수 없었다.
나는 대학생이 되고 S를 잘 알고 있던 선생 L에게 넌지시 S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물론 N에 대해 밝히지는 않았고. “저기 S가요…….” 하지만 L의 반응은 내 예상과 달랐다. “설마. S가? 그럴 리가 없어.” 아이, ㅈ 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몇 년 전, 지방 선거를 앞두고 뉴스를 통해 우연히 선출직 교육 공무원 후보들을 알게 되었다. 그 중 어느새 머리가 하얗게 센 S가 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진정한 교육을 원한다면 자신을 뽑아 달라고 했다. 나는 고민을 했다. 저런 악마 새끼가 당선이 되면 안 되는데. 하지만 나는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었다. 선생이 제자를 유린했다는 증거도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내가 곤란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수시로 지지율 등 S와 관련된 뉴스를 찾아봤다. 다행히 S는 세 후보 중 가장 낮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나는 일단 S를 지켜보기로 했다.
돌이켜 보면 고등학생이었던 나의 성인지 감수성은 엉망이었다. 그저 문제가 커지지 않기만을 바랐다. 20년 전이었으니 도움을 요청했어도 묵살 되었을 것이 뻔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고 나도 달라졌다. 性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 잡혔다. 늦어서 부끄럽기는 하지만.
나는 틈틈이 S의 SNS를 감시 중이다. S의 SNS는 지금도 선출직 교육 공무원에 대한 욕망에 대한 글로 가득하다. 이 악마, 허튼짓하지 마라. 내가 지켜 보고 있다. 오늘부터 나는 어제의 나보다 더 용감해지기로 결심한다. 그 악마 새끼의 싹수를 잘라 버리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