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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숲섬 Nov 20. 2024

내가 든 칼이 힘겨울 때

{숲섬타로} 직장 내 인간관계로 힘겨운 당신을 위한 스물세 번째 상담일지


 


  알고 보니 이 분 때문에 나뿐 아니라 나머지 직원들 모두가 힘들어하더라고요. 권위적이고, 꽉 막힌, 전형적인 자기만 아는 상사인 것 같아요. 저는 언제쯤 괜찮아질까요? 이 회사에서 계속 다닐 수는 있을까요?   - H님의 질문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고질병, 인간관계라는 몹쓸 병. 결코 쉽지 않다. 상사와의 갈등은 언제나 내 가슴에 장착된 시한폭탄처럼 째깍째깍 초침소리를 내며 언제 터질지 모를 화병을 키운다. 우리 모두가 겪는 비슷한 갈등이다. 그러나 누구라도 겪으면 몸서리치게 되는 끔찍한 현상이다. 우린 왜 이리 타인으로 인해 괴로움을 겪어야 할까.




  H님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그 상사 분이 과연 H님께서 그 전날 했던 말씀을 다 기억하고 있었을까요? 왜 당연히 다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사람은 타인에게 사실은 그리 관심을 갖지 않아요. 내 일도 잘 모르는 게 많고 신경 쓸 게 많아서, 사람들은 남의 얘길 귀 기울여 듣지도 않고, 들어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요. 오늘 H님이 업무가 많은데 퇴근 전 이런 일까지 시킨다고 생각하고 괴로워하셨지만, 그분은 과연 H님이 오늘 얼마나 일했는지 알기나 할까요? 그 정도로만 신경 쓰고 있다면 괜찮은 상사일지도 모르겠어요. 정말로 일부러 모른 척하거나 H님을 보란 듯이 고생시키려고 그러는 걸까요?  - {숲섬타로}의 상담일지 중에서


  H님은 한참을 대답 없이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생각해보진 않았던 거 같아요."


  어쩌면 남의 이야길 귀담아듣고 다음날 내게 안부를 물어오거나 그 일 잘됐냐고 물어보는 동료가 희귀할 정도로 드물고 훌륭한 사람인 거 같아요. 이해하지 못하고 관심 없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걸 당연하다고 여기는 일이 회사생활에 훨씬 수월한 느낌을 갖게 할 것 같아요. 누가 내게 진심 어린 관심을 보인다면 고맙다고, 그걸 잘 알아주는 당신의 섬세함이 참 좋다고 표현하면 어떨까요. 내가 어제 이런 말을 전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기억하지 못할 거란 전제하에 다시 설명해 주시면 어떨까요? 내가 도저히 힘들어서 못하는 업무가 있다면, 있는 그대로, 이러한 이유로 할 수 없다고 담백하게 표현해 보면 어떨까요. 감정을 섞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전하고 이해한다면 내 에너지가 저 사람의 의중을 알기 위해 고민하거나 애쓰지 않아도 되니 편안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동안 너무 참기만 하셨잖아요. 그러나 언제나 속해있는 그룹에서 훌륭한 역할을 해오셨던 걸로 보이고, 그 그룹이 잘 되는 데에 큰 활약을 하셨어요. 나와 좀 맞지 않는 성격일지라도 다른 이들 또한 마찬가지로 중요하고 존중받아야 할 사람들이지요. 내가 내 생각에 빠져있기만 하면 나와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삶의 방식에 대해 보고, 듣고, 배울 기회가 눈앞에서 사라져 버려요. 생겨난 감정을 억압하고 통제하고 해결하려고 에너지를 다 써버리면 창의적으로 일하고, 친구를 사귈 에너지가 바닥나버려요. 그러니 편안하게 존재하세요. 칼을 들고 있다면 그 칼을 적재적소에 잘 쓸 수 있어야겠지요. 그런 훈련들을 하세요. 이 검들은 내가 가진 생각들을 의미해요. 이런저런 생각으로 나를 다치게 하지 마세요. 꼭 필요한 때에 한번 꺼내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내 자리와 모두의 공간을 충분히 지켜낼 수 있어요. H님 마음이 편안해지시면 자연스레 관계도, 일도, 삶도 편안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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