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섬타로} 나 자신을 위한 스물다섯 번째 편지
자기 자신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기까지 사람에겐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한 걸까. 최근 크고 작은 일들을 맞닥뜨릴 때마다 나란 사람을 돌아보게 된다. 1년 동안 써온 플래너를 뒤적여보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의 약점, 단점들 중에 가장 큰 문제는 어려움이 있을 때 직접적으로 부딪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회피하려 한단 사실이다. 결국 실패하지 않기 위해 요리조리 피하는 쪽으로 선택해 온 순간들의 집합체가 내 삶이었던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싸우고 싶지 않아 그 상황이나 사람을 피해버리고, 큰 어려움을 맞고 싶지 않아, 상처받고 싶지 않아 그대로 돌아서 나가버리는 비겁한 선택을 참 많이도 했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니다. 용감한 선택도 꽤 많았다. 1년을 망친 것만 같아 정말 그랬나 돌아보면 상반기까지 계획했던 대로 차분하게 잘 실행했고 나름의 크고 작은 성과도 있었다. 3월부터 발레를 열심히 해서 단단한 근육이 생겼다는 점은 꽤 자랑스럽다. 11개월 동안 브런치의 이 연재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한 달 한 달 하루 하루 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했다는 점만은 사실이고 나 자신을 칭찬해 줄 만한 일인 것이다.
그러나 강박적일 정도로 완벽한 걸 내보이고 싶어 하는 내 성향은, 지금처럼 이렇게 힘겨우면 모든 걸 손 놓는 나쁜 버릇을 만들어냈다. 좋아하던 시를 읽고 쓰는 일을 아예 놓아버린 것, 열심히 챙기던 건강 식단을 어느 날 그만두고 원래의 습성으로 돌아가는 일처럼. 11월의 절반쯤은 플래너 쓰기를 멈추고 말았다. 모든 게 소용없는 일 같고,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해서. 이런 날이 그래도 오랜만에 찾아왔단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랄까.
어렸을 때 난 참 우울한 인간이었다. 조증과 우울증을 널뛰듯 오가며 십대 이십 대를 보냈다. 성향이 정반대인 두 사람이 존재하는 것처럼, 앞사람의 선택과 의지를 뒤집으며 어두운 터널 속을 통과했던 날들이 지금 생각해 보니 참 끔찍하다.
그러던 내 몸과 마음은 이제는 둘도 없이 좋은 친구 사이처럼 극적으로 화해를 했다. 돌아보니 마음을 먼저 밝게 만들기보다 몸을 먼저 밝게 만들기가 훨씬 쉬웠다. 우리 몸속에 40프로 이상은 미생물들이 관여하는 영역이라던데, 이 미생물들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유산균을 챙겨 먹고 햇빛을 쬐고 운동을 해주는 일이 중요하단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모두 사실이다. 결국 지금의 난 훨씬 밝아졌고, 마음까지 맑고 건강한 때가 훨씬 많다. 그렇게 평온하고 무탈할 때 '행복하다'는 느낌이 올라온다.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음은 행복의 영역이다. 그리할 만해서 하던 일을 그만둘 수도 있는 거니까 말이다.
이런 나에게 지금 필요한 건 뭘까, 타로에게 물어보았다.
첫째, 극단으로 치우치지 말고 몸과 마음의 균형을 유지할 것. 아니라고 완전히 손 놓기보단 조금을 하다 말아도 좋으니 어제까지 했던 일들을 계속 이어하며, 루틴을 유지하며 가던 방향으로 걸음 걸음 나아가라는 것.
둘째, 내 맘대로 되지 않고, 서운한 마음이 생기고, 어쩐지 우울해져도, 마음의 예민함이 느끼는 이 감각들에 감사할 것. 네가 예민한 만큼 아픔도, 갖은 부정적인 감정도 크게 더 생생하게 느껴질 테니. 그러나 그 성장통 없이 어떻게 타인을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하지 못한 채 어찌 공감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좋아하는 시를 쓰거나 읽을 때 그런 감각 없이 어떻게 문장을 따라 읽을 수 있을까. 네가 아프다면 아픈 만큼 충분히 깊이 있어질 테니. 더 아프고 더 감사하길.
마지막으로, 부지런히 움직여! 내 근육을 움직이고 내 손과 두 다리로 힘써 움직이는 만큼의 결과가 있을 테니, 시도한 모든 일들이 좋은 결과가 있긴 어렵겠지만, 가만히 앉아 생각만으로 비판하고 해결하고 무언가를 하는 일은 너를 매번 제자리에 있게 하고, 성장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니까. 바라는 게 있다면 부지런히 움직여서 흐름을 만들어 봐. 바람이 불지 않는다고 한숨만 쉬지 말고 앞으로 뛰어나가며 바람을 만들어봐. 쉬었던 만큼 더 멀리 보고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을 거야. 오늘 하루도 행운을 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