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섬타로}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스물네 번째 편지
* 위 배경사진은 올가 토카르추크가 글 쓰고 요안나 콘세이요가 그린 그림책 <잃어버린 영혼>에서 가져왔습니다. 마음이 헛헛하거나 힘들 때 혹은 아무렇지도 않은 때에도, 일생에 꼭 한 번쯤은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이 섬에 정착한 지 12년이 지나자,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로 온 것처럼, 여행을 끝내고 이제야 내 집으로 돌아온 것처럼, 그때에도 했지만 마무리짓지 못했거나 모자람이 많던 일을, 12년 만에 다시 하게 되는 경우가 생겨났다. 그때 읽었던 책을 우연히 다시 읽는다거나, 그 가을 바닷가에서 순비기 열매를 따서 오랜 시간 손바느질로 동그란 배게 하나를 만들었었는데, 다시 만들어보고자 최근 순비기 열매를 따서 모으기 시작한 일이라거나. 그때 하려다 못했던 다림질을 시작한 일이라거나, 그때 시작된 일이 이제 마무리되어 하지 않게 된 걸 발견하거나. 놀랍게도 이제는 그때와 완전히 달라졌고 대부분의 일들이 어느새 편안해졌단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23살 겨울, 내가 나 자신처럼 여기던 이들에게 일생에서 가장 힘든 일로 기억될 법한 나쁜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나도 그들만큼이나 아팠던 것 같다. 너와 나의 경계가 없다고 느낄 만큼 사랑하던 존재들이 서서히 멀어져 간 건 서로를 만나는 일이 그 기억과 사건들을 상기시키기 때문이기도 했고, 각자의 상처를 치유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했겠다. 그리고 정말 긴 시간이 지났다. 거의 24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얼음처럼 딱딱해져 그때의 기억을 고스란히 몸과 마음속에 간직하며 살아온 내가, 최근에야 부드럽게 녹아버려 이젠 홀가분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가벼워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야 그들이 보고 싶었다. 이후의 삶과 그들의 일상이 궁금해지고 진심으로 안부를 묻고 싶어졌다. 흐르지 못한 시간들은 어디에 고여있다 다시 흐르기 시작했을까.
최근 자전거 사고 이후 난 천천히 움직이고 천천히 말하고 천천히 걷게 되었다. 병원 통원치료를 마치는 날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어가던 길에 맥도널드에 들렀다. 피시버거를 주문해 천천히 먹었다. 그때 이후 처음으로 내가 그토록 사랑하던 Y가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그녀는 유난히 맥도널드 피시버거를 좋아했었다. 최근에 맥도널드에서 오랜 시간 근무하다가 이사 때문에 그만두었다는 이야길 들었다. 내가 그녀를 미워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너무나 그리워하고 있었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다. 늦었지만 내 마음을 알아차려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젠 내 영혼의 소릴 진심으로 듣고 존중하고 싶단 간절한 마음이 생겼다. 그녀가 보고 싶으면 다음엔 전화해서 조심스레 안부를 물을지도 모르겠다.
한강 작가님의 책 때문이다. 최근 한 달간 한강의 책들을 다시 읽으며, 좀 더 강인해 보이려고, 견디려고, 아닌 척, 센 척하며 지내온 습관들이 와르르 흔적도 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토록 오래 위장술로 버텨왔던 것이 맨몸이 다 드러난 것처럼, 날 것으로 모든 것을 오감으로 감각하기 시작한 것처럼, 이제야 인간이 된 것처럼, 더 기쁘게, 더 아프게, 더 뜨겁고, 더 거칠게 감각된단 사실을 느낀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이게 원래의 나인 것이다. 난 이토록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다만 겁이 많아서, 그들이 아픈 게 너무 싫어서, 어렵고 혼란스러워서, 남들처럼 적당히 살아보려 했던 것 같다. 내가 나를 모른 척할 때마다, 나의 영혼은 고개를 떨구고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돌아보니 어느새 난 허약하게 눈물만 쏟던 아이에서 강인한 어른이 되어있다. 건강한 예민함은 많은 순간 재능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언제나 타인의 마음을 먼저 살피고 도닥여주는 사람이고 싶었다. 나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지 못한 젊은 시절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을 것이다. 원래의 나대로의 삶. 고요하게, 천천히, 언제나 내 영혼과 함께 하는 일상을 살고 싶고, 그런 기회가 내게 기적처럼 매일 주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