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섬타로}가 자신에게 보내는 스물세 번째 편지
오랜만에 통화하며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렇고 그런 사람살이에 관한 이야기.
그간 왜 그리 친구들에게 소홀했었나 묻는다면 내가 하는 일에, 순간에, 몸에, 마음에 집중하느라 관심이 없었단 이야기가 맞겠다. 실은 통화하기 전 그리 묻고 싶었다. 넌 나란 존재에 대해, 내 삶에 대해 눈곱만큼의 관심이나 있냐?라고. 그러나 그렇게 관심이 없는 사람은 그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언제나 남에게 '그럴 것이다'라고 빗대어 보는 무언가는 내 안의 것인 경우가 많았다. 거울처럼 남들은 그저 내 안의 것들을 반사시켜 낱낱이 보여주고 있을 뿐.
수없이 많이 쏟아지는 읽을거리, 볼거리들을 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인다. 아름다운 문장들이 흔해졌지만, 내가 읽고 싶은 문장은 아직 쓰인 적 없다. 아직도 난 어떻게 살고 싶은지 간절히 꿈꾸지 못했고, 목표를 정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다 자주 멀미를 한다. 수도 없이 갈래길을 만난 것 같고, 서너 개의 포춘쿠키를 닮은 운명 중 하나를 뽑아야 할 기로에 놓인 것 같고, 이 사람이냐 저 사람이냐 원치 않은 배우자를 결정해야 할 순간을 맞은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 내 앞에 타로가 있고, 시가 있고, 선택들이 있다. 지극히 평범하나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일상이 있다.
눈송이처럼 가볍게 내리다가 기어이 눈사태가 되고 마는, 한강의 소설들을 읽으며 '쓴다'는 것, 특히 '제대로 쓴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문장과 작품들 속에서 언뜻언뜻 비치는 한강 작가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마치 벼르고 별로 온 살풀이 굿처럼 크고 장중하게 가슴을 때리고 동화시키는 문장들을 읽고 또 읽으며 문학 특히 소설이 줄 수 있는 커다란 반향과 감동과 고발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인간이 무엇인지를 기꺼이 생각하게 하고 돌아보게 하는 놀라운 글을 쓰는 한 인간이 있다는 사실, 그토록 힘든 국가 폭력의 현실을 하루하루 건너온 사람들을 주목하고 그들에게 공감하며 마치 내 이야기처럼 그들의 이야기를 글로 써낸 한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글을 읽는 내내 감동인 듯하다. 한강 작가의 글을 읽고 그 울림에 응답하는 사람들의 존재 또한 놀라운 희망이다. 오직 사람만이 지금의 우리에게 희망이 되고, 위안이 되는 듯하다.
우리를 이루는 것 또한 불과 물, 바람과 흙이다.
그것으로 이루어진 우리라는 존재 안에서 그 4원소는 생성되고 조화를 이루고 극적으로 반응한다. 언젠가는 결국 원래의 원소로 되돌아갈 우리이기에, 이렇게 연약하고 깨지기 쉽기 때문에 인간은 인간이다. 그 연약함과 섬세함의 힘을 새롭게 느끼고 있다. 강하고 잔인한 총검보다 가늘고 약한 펜이 기록한 진실한 문장의 힘이 얼마나 클 수 있는지를 느끼며 희열을 느낀다.
타로로 어려움에 처했거나 지친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 시를 쓰고 싶었던 이유도 같다. 읽히는 시, 누군가에게, 웃음을, 마음 쓰라림을, 위안과 공감을 주는 글을 써서 나누고 싶은 사소한 마음. 그 마음은 내밀쳐진 채 그 행위 자체로, 결과로만 판단되고 마는 지금의 시간들... 원래의 내 마음에 대해서, 순순했던 의도에 대해서 나조차 잊고 지냈던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쉽게 그만 내려놓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이면 난 다시 시를 쓸 것이고, 카드를 펼치고 춤출 것이다. 좋아하니까. 정말 좋으니까. 하루하루 이어온 일들을 어린 나이 때 그랬던 것처럼 한 순간 그만두거나 포기하진 않을 거다. 아주 가느다랗더라도 희미하더라도, 내가 읽고 쓴 것들은 나름의 흔적을 남긴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스크래치를 내며 그림을 그리는 일인지, 점을 찍어 점묘화를 그리는 중인지, 지도를 그리는 건지 가장 중요한 무엇인가를 지우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오늘도 한다. 내일도 할 것이다. 그렇게 11월의 하루가 또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