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숲섬 Oct 30. 2024

계속 발레복을 구입하게 된 이유

{숲섬타로} 마음을 다잡기 위한 스물두 번째 편지



  20대 후반 처음 타로의 세계에 입문했을 때는 단 한 벌의 타로덱을 가진 것만으로도 충만하고 황홀했다. 그 한 벌도 제대로 이해하기가 그렇게도 어려웠을 정도로 경험이 부족했고 무엇보다 어렸던 것 같다. 그러나 40대가 되어 시작하게 된 본격적인 타로의 세계엔 놀랍고도 다양한 타로덱들이 수백, 수천벌은 있어 계속해서 구경하고 후기를 읽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저 구입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각 덱마다 디자이너들의 의도와 구성, 각 카드 낱장들의 의미를 하나하나 공부해야만 제대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카드의 의미를 익히는 와중에도 새로운 카드를 더 갖고 싶어 장바구니에 담기도 했다. 최근 발레를 배우면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제 겨우 발레의 ㅂ을 맛보고 있는 발레 초보이면서, 발레에 필요한 레오타드와 타이즈, 발레 슈즈 말고 더 필요한 게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시간을 지나고 나니, 다양하고 놀라운 레오타드와 발레 스커트의 세계, 각종 워머의 토끼굴로 빠져들고 말았다.



발레를 할 땐, 근육 전체를 따뜻하게 해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발레 하는 몸 자체도 아름답지만, 그 몸을 더 아름답게 꾸며주는 다양한 소품들이 참 많기도 하다.



  지난 3월부터 집에서 혼자 발레 스트레칭을 하는 동안에도 많은 것들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우선 무리해서 근육을 늘리면 안 된다는 사실, 근육을 늘리려면 몸을 최대한 따뜻한 상태로 웜업 한 후에 스트레칭해 주라는 사실이 가장 중요한 팁이었다. 그러고 보니 많은 영상 속에서 발레리나들은 겹겹이 껴입은 채로 매트운동이나 바워크를 한 후 몸이 덥혀지는 대로 하나씩 벗는 경우가 많았다. 어느새 쌀쌀해졌고, 늦은 저녁 학원 수업에 참여하게 되면서 나 역시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워머들이 필요해졌다.



  팔과 어깨를 가려주는 슈러그 형태의 상의 워머, 카디건 형태의 겨울용 워머, 얇은 스웨터 형식의 워머, 메쉬 타입으로 속이 투명하게 비치는 워머 등 종류도 다양했다. 발목 부상을 방지하기 위한 웜업부츠부터, 땀복이라고 불리는 웜업팬츠들. 타이즈 위에 껴 신는 길고 짧고 다양한 색의 토시 형태의 다리 워머 등등. 그 수와 종류가 너무나도 다양했다.  그러나 내가 정말 놀란 건 다양한 레오타드의 세계였다. 끈나시 형태로 등이 V자나 U자 형태로 파진 가장 기본적인 캐미솔 레오타드부터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듯 보이는 강렬하고 화려한 디자인의 럭셔리한 레오타드까지... 다양함과 화려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대체 왜 이리 많이 필요한 건가 싶어졌다.



겨울철 발레수업의 기본 복장. 추운 몸이 열을 잃지 않고 제대로 춤추기 위한 비책들이다. 나탈리 포트만이 안에 입은 레오타드는 기본 캐미솔 형태이다.


  그리하여 정신없이 아이쇼핑을 하고 또 하다가 너무 값비싼 발레복의 가격에 좌절하는 일이 계속되었다. 예쁜 옷은 많은데, 지방에 사는 관계로 직접 입어볼 수도 없고, 두루두루 입을 수 있으면서 저렴한 옷을 찾으려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취미발레 하는 분들의 카페에선 중고물품 거래가 흔했다. 알고 보니 보랜드마다 레오타드의 사이즈가 천차만별이었고, 또 직접 입어보고 제대로 골랐다 싶다가도 발레를 해보면 몸에 맞지 않아 불편할 때가 많다고 한다. 게다가 값이 비싼 반면 교환이나 환불이 어려운 상품이 많다. 그런 이유들로 중고로 판매하거나 교환해서 입는 경우가 자주 생길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기본 디자인의 블랙 레오타드와 핑크색 레오타드, 화이트와 블랙 스커트와 워머 두 종류만 새 제품으로 구입했다. 이렇게 사고 보니 색이 단조롭고 재미없단 생각이 살짝 들었다. 중고 거래로 라벤더와 크림 컬러 스커트와 7부 화이트 메시 탑을 하나 주문했다. 그 상품이 도착하길, 부디 나에게 잘 어울리길 기대하고 있다.



  대체 발레만 해도 시간이 모자랄 판인데, 발레복에만 빠져있고, 난 왜 이 모양일까. 타로를 펼쳐 보았다.


최미는 당신의 삶을 훨씬 풍요롭고 여유 있게 가꿔준다. 그 취미가 운동이라면?! 이건 재테크보다 더 큰 투자가 될 것이다.


  발레복에 집중하는 것 또한 잘하고 싶은 마음과 같은 종류의 것이라고 한다. 발레는 하루아침에 되는 종목도 결코 아니고, 게다가 성인이 되어 시작한 취미 발레인 경우, 더욱 더디게 늘고 그 과정 또한 쉽지 않다. 이미 살아온 날들 또한 결코 성공이라고 볼 수 없기에 어딘가 실패한 듯 느껴지고, 불안한 일상의 감정이 쇼핑으로 빠져들게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나도 알고 있다. 실은 레오타드만 하나 걸친 사람의 몸이 만들어내는 곡선이야말로 발레를 하게 된 원인이자 결과이니까.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고 아름다운 우리 몸의 곡선들. 이미 우리 모두의 몸은 있는 그대로 온전하고 아름답다. 몸과 마음이 자신의 영혼과 닿아있을 때 우린 가장 나 답기도 하고 지혜롭게 활짝 열린 상태일 것이다. 명상 상태인 시간, 혹은 고요히 존재하는 시간이 매일 필요하다. 발레는 내가 아는 최고의 명상이다. 발레 하는 동안은 바른 동작과 반듯한 자세로 존재하기 위한 노력이 있을 뿐이다. 이런 노력들이 미래의 건강과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의 씨앗이 될 거란 사실은 타로를 보지 않아도 자명하다. 그럼에도 타로는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당장 하루하루 씨앗을 심고 가꾸는데 꾸준히 힘쓰라는 메시지를 준다. 완벽한 동작과 순간을 위해 애쓰다 보면 내가 원하는 모습과 좀 더 가까운 모습이 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생긴다. 이 글을 업로드한 후 블랙 레오타드와 스커트를 입고 오늘도 발레를 하고 잘 거다. 꿈속에서도 손끝 발끝까지 힘을 주고 어깨와 척추를 반듯하게 펴고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싶다.




* 숲섬에서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이전 13화 눈송이 같은 한강의 문장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