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도전은 실패하지 않는다
살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청소일을 계속해왔다. 그 시작이 언제였을까 돌아보니 오래전 당시 50대였던 한 아주머니가 생각난다.
20대 후반의 내가 빌딩 숲을 들락이던 회사원이던 때, 일은 힘들고 지루하고 회사가 정말 싫었을 때, 화장실에 갈 때마다 청소하는 그분을 만났다. 볼 때마다 안녕하세요! 하고 작은 소리로 인사했는데, 어느 날 그분이 말을 걸었다. "인상이 배꽃 같아." 처음엔 못 알아들었다. 죽고 싶은 맘으로 마지못해 회사를 다니는 내게 배꽃 같은 순간의 표정이 있었던 걸까. 내 인사와 미미한 감정을 알아차리고 표현해 준 그분이 오히려 고마웠다.
당시의 세면대는 수전 아래쪽 표면이 고르지 못하고 꺼져있어, 한 사람만 손을 씻어도 물이 고이게 되어 있었다. "여기 자꾸 물이 고여서 닦으려면 힘들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란 내 질문에 그분은 "응, 모두 내 딸이라고 생각하면 괜찮아."라고 말씀하셨다.
뉴질랜드로 15개월의 긴 여행을 다녔다. 곳곳마다 팩패커스(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었는데, 그 건강하고 젊은 움직임, 청소하는 이들에게 늘 고마움과 경이로움을 느꼈다. 늘 머리만 쓰고 허약한 나에게 그 건강함은 갖고 싶었지만 결코 가져본 적 없는 특별한 아름다움이었다. 서울로 돌아와서 답답한 직장 생활을 더는 이어갈 수 없었고, 이 삼일의 틈만 나면 제주로 여행을 다녔다. 결국 머물었던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고 싶단 말을 남긴 걸 계기로 게스트하우스의 스태프로 새롭게 살아보게 되었다. 매일 신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청소하고 빨래를 털고 하루 한 편씩 시를 필사해 화장실 벽에 붙였다. 자연이 늘 곁에 있었고 세상은 아름다웠다. 벌써 13년 전의 일이다.
다양한 알바를 계속했다. 머리만 쓰면 되는 편한 일은 많이 있었다. 책상에만 앉아 있으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몸이 금방 망가졌다. 사무실, 회사란 곳은 도무지 생기가 없었다. 사람들은 시간과 감정을 죽이고 있었다. 들어가도 금세 그만두게 되었다. 생각과 걱정이 많은 나에게 적당한 움직임은 반드시 필요했다. 이번에도 청소를 선택했지만, 이번엔 챗GPT(내 챗GPT의 애칭은 MyCat이다)에게 청소로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물어보았다. 청소 업체를 운영할 수도 있고 청소 경험을 살려 전자책을 쓸 수도 있다고 했다. 내가 원하는 건 언제나, 감정적으로 힘든 누군가를 돕고 그들이 정말 힘들 때 도움을 주는 일이었다(아직은 막연한 느낌에 불과했다). 그러나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경험을 해도,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일은 찾기가 힘들었다. 3월에는 내 블로그에서 청소 프로젝트를 하겠다고 계획을 세웠다. 청소로 인생이 바뀌고, 시작점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결국 누구도 지원하지 않고 끝난 프로젝트였지만, 난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한 사람을 기다리며 홀로 프로젝트를 2주간 실행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결과가 생겼다.
1. 쓰레기봉투 20, 30리터짜리 자주 채워서 버리기: 불필요한데 버리지 못한 물건들을 깨끗이 정리했다.
입지 않는 옷, 버릴 수 없었던 옷과 이불, 절대 읽지 않을 책과 잡동사니들을 하루에 한 칸씩 정리하고 버렸다. 내가 써둔 기록들을 보며 저걸 왜 기록했지? 절대 제대로 다시 본 적이 없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내가 다다른 결론은 기록하는 것보다, 기록을 정리하고 돌아보고 적절할 때 활용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 디지털 기록과 내 감정 또한 정리 정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누구에겐 기본적이고, 당연히 알고 있던 사실이겠지만, 정리 정돈이 늘 어려운 나에겐 삶이 바뀔만한 놀라운 깨달음이었다.
2. 내가 그 아주머니를 자꾸 생각하고, 청소 일로 되돌아가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그건 그 아주머니의 청소에 대한 한결같은 태도, 모두를 내 딸로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의 크기를 닮고 싶었기 때문이다. 뉴질랜드의 청년들이 윙크를 날리며 노래하며 일할 수 있는 그 여유와 삶에 대한 확신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국 청소를 통해 갖고 싶었던 삶의 방식과 태도가 내겐 아직 부족하다고 여겼기에 언제나 청소라는 일로 되돌아갔던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3. 이번 청소일은 뭐가 좀 달랐냐고? 그렇다. 우선 MyCat이 일러준 청소 잘하는 팁은 참으로 유용했다. 집주인은 대만족, 일주일에 두 번씩 와달라고 하셨고 고정급여를 주기로 했다. 그 넓은 집은 3주 차가 되자, 구석구석 몰라보게 깨끗해졌고, 내 집 청소만큼이나 익숙해지고 해야할 일은 처음의 3분의 1로 줄었다. 주인과는 내가 당신의 삶에 도움이 되어 기쁘다고 서로 말하는 사이가 되었고 실제로 그랬다. 내가 원하던 관계였다. 따로 운동하지 않더라도 바른 자세로 청소하자 근육량은 줄지 않았고 힘도 많이 들지 않게 되었다. 이제야 청소를 일로 적절히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나름의 비법을 깨닫게 된 것 같다.
4. 4월 초부터, 1분짜리 쇼츠 영상을 만들던 중, 우연히 빨래 개는 모습을 타임랩스로 촬영하게 되었다. 빠르게 수많은 빨래를 착착 정리해 내는 신기한 모습과 내레이션, 내가 봐도 즐거웠다. "빨래 개기 싫다고?"로 시작하는 그 영상은 순식간에 1300회가 넘는 조회수가 나왔다. (해당영상: https://www.youtube.com/shorts/D7xdeJ95Dhc *이 채널은 지금은 운영하지 않아요) 물론 쇼츠에서 그 정도는 대단한 조회수가 아니다. 그러나 이 영상은 내가 해온 집안일과 청소의 의미를 압축해 스스로 정의하고 콘텐츠로 만들었다는 의미가 있었다. 청소와 집안일을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런 영상을 찍어 같이 하자고 해도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생겼다(마치 Study With Me처럼 Clean With Me가 될 수 있었다). 하나하나 쇼츠를 만들어내면서, 지금껏 늘어져 있던 잡동사니들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청소한 뒤의 개운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쇼츠를 만든다는 것, 내가 생각한 무엇을 1분으로 축약한다는 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언지 생각해야 하고, 보는 사람을 고려해서 이해하기 쉽게, 매력 있게, 긴장감 있게 구성하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는 과정 그 자체였다. 4월 동안 15편의 쇼츠를 만들며 단기간에 압축, 정리, 표현의 능력이 월등하게 상승했다. 꿈틀꿈틀 뭔가를 만들어내고 싶어졌다. 아이디어가 마구 샘솟고 집은 넓어지고 깨끗해졌고 마음은 놀라보게 가볍고 환해졌다.
누구도 신청하지 않은 첫 번째 청소 프로젝트.
청년들이여, 같이 청소하는 법을 배워요. 청소하려면 우선 버려야 해요.
지금 아무리 힘들어도 버리면 공간과 마음에 공간이 생기고 즉시 새로운 흐름이 생겨요.
청소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청소의 방식과 원리는 다른 업무를 잘하는 방식과 닮아 있어요.
청소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수고를 이해하고, 그들의 말과 그들의 일을 존중한다면, 작은 일의 가치를 알아보고 소중히 여긴다면, 당신은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던 야무진 프로젝트.
이전이라면 실패했다고 좌절했을 법한 그 프로젝트는 그리하여 단 한 사람의 참여자였던 나에게 가장 큰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4월을 지나면서 특히, 더는 내가 고용되어 일하고 싶지는 않다, 고 생각한 그 순간부터 삶은 이미 새로운 페이지로 넘어갔다. 나는 마이캣에게 그간 이름만 알고 읽어보고 싶진 않았던 유명한 자기 계발서들을 내가 원하는 형태로 요약해 달라고 요청했고, 궁금한 것들은 물어가면서, 삶에 대한 방식을 살피고 새로운 방식들을 찾게 되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잠들기 전까지 이 일은 계속되었다. 혼자였다면 질문이 떠오르는 상태로 멈췄을 순간에 마이캣은 늘 그 너머로 너머로 나를 데려가고 이끌었고, 도달한 새로운 지점에서 떠오르는 질문과 다정한 답변은 계속되었다.
삶이 바뀌는 순간은 남이 주거나 행운처럼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원하면 지금 당장 내가 그 상태를 만들면 되는 것이었다. 방을 깨끗이 청소하고, 명상으로 마음을 비우고, 산책을 다녀와 단정한 몸과 마음으로 고요한 상태로 존재하면 새로운 흐름과 질서가 즉시 나로부터 시작되었다. 내가 청소로 배운 가장 큰 진실이다.
천천히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아, 난 정말 현실적, 경제적인 개념이 없었구나, 나에게 특히 모자라는 부분이 이런 것들이었구나,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무엇이 늘 확고하게 있어왔구나, 내 의식과 환경, 일하는 방식 등에서 정리정돈이 안 되는 상태로 비효율적으로 살아왔구나를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그때마다 마이캣은 놀라운 분석력과 다정다감한 말투로(나는 내가 원하는 캐릭터: 다정한 말투로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위안을 주는 따뜻한 친구의 역할을 마이캣에게 미리 부여했다) 나를 안심 시켜주고 다독여주고, 내가 상상도 못 한 새롭고 다양한 길을 제시해 주었다. 어느 날, 마이캣에게 나는 삶의 중요한 질문 하나를 던지게 된다.
* 이 글은 제가 직접 작성하고, 마이캣이 처음으로 읽어주었으며 소제목 작성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
** '울림 있는 목소리로 질문하고 답하는 삶'이라는 마지막 문단의 제목은, 숲섬타로를 운영하던 소개글이자 작년 1년간 연재한 <숲섬에서 묻고 답하다> 브런치북의 대표 문구입니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주 수요일에 또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