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릅나무 / 실비아 플라스 : 아무리 애써도 흩어지는 나
(루스 페인라이트*를 위하여)
나는 밑바닥을 안다, 그녀가 말한다. 나는 내 크고 곧은 뿌리로 그것을 안다:
그건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이지.
나는 두렵지 않다: 거기 가본 적이 있거든.
당신이 내 안에서 듣는 것은 바다인가,
바다의 불만들?
아니면 아무도 목소리를 내지 않았는데, 그건 당신의 광기였나?
사랑은 그림자다.
그것을 쫓아가며 당신이 얼마나 거짓말하고 울부짖었는지
들어보라: 이것들은 사랑의 발굽이다: 사랑은 말처럼 가버렸다.
밤새도록 나는 이렇게 질주하리라, 맹렬하게,
당신 머리가 돌이 되고, 당신 베개가 작은 잔디가 될 때까지,
메아리치며, 메아리치며.
아니면 당신에게 독毒의 소리를 가져다줄까?
지금 이건 비다, 이 커다란 쉿 소리.
그리고 이것은 비의 열매: 푸른 기 감도는 흰색, 비소처럼.
나는 일몰의 잔학함을 겪어왔다.
뿌리까지 그을린 채
내 붉은 필라멘트들이 타오르며 서 있다, 전선들로 된 손이.
이제 나는 산산조각 나서 곤봉들처럼 날아다닌다.
그런 난폭한 바람은
어떤 방관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
달, 그 또한 무자비하다: 그녀는 나를 끌어당기겠지
잔인하게, 불모가 되도록.
그녀의 광채가 내게 상처를 준다. 아니 어쩌면 내가 그녀를 붙들었는지도 모르지.
나는 그녀가 가도록 내버려둔다. 가도록 내버려둔다
절제수술한 뒤처럼, 줄어들고 납작해진 채로.
당신의 악몽들이 얼마나 나를 사로잡고 내게 기부를 해대는지.
내 속에는 울음이 살고 있다.
밤마다 울음은 날개를 퍼덕이며 나와
자신의 갈고리들로, 사랑할 무언가를 찾는다.
나는 이 어두운 것이 무섭다.
내 안에 잠들어 있는 그것:
온종일 나는 그것의 부드럽고 깃털 같은 회전, 그것의 악의를 느낀다.
구름이 지나가고 흩어진다.
저것이 사랑의 얼굴인가, 저 창백하고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
내가 저런 것 때문에 내 심장을 휘저었단 말인가?
더는 알 도리가 없다.
이건 뭔가, 이 얼굴은?
그것이 가지들로 목을 죄는데도 그토록 살기등등하다니ㅡ
그것의 뱀 같은 산酸들이 쉬익 소리를 낸다.
그것은 의지를 돌로 만든다. 이것들은 끊어져 서서히 나타나는 단층들이다
죽이고, 죽이고, 죽이는.
* 루스 페인라이트(Ruth Fainlight)는 미국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한 여성 시인이자 번역가이다. 실비아 플라스는 죽기 전 몇 년 동안 그와 가깝게 지냈다.
- <에어리얼 Ariel 복원본> 실비아 플라스, 진은영 옮김, 엘리 (2022)
이 책은 공공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 최초의 대출자가 되어 받은 책이다. 내게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이란 뜻이다. 1998년 겨울, 도서관에서 자살과 죽음에 대한 책들을 가능한 만큼 열심히 빌려 보았다. 혹시라도 사서가 내 생각을 눈치채기라도 할까 의심하며 책을 챙겨 도망치듯 나오던 기억이 난다. 그 책들 속에서 '실비아 플라스'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배신과 절망, 극심한 심리적 고통 속에서의 우울증과 모든 것을 끝내고자 거듭된 자살시도 그리고 비극적인 성공, 오직 죽음을 바라는 증상으로만 그녀는 언급되고 있었지만 그렇게 자살했다는 이야기 속 그녀가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독창적이고 강렬한 실비아 플라스의 시가 문학적으로 인정받고 제대로 읽히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65, 66년에 출간된 <에어리얼>은 그의 남편 테드 휴스가 그 원고가 지니는 역사에 대한 순전히 개인적인 관점에 따라 편집한 것이다(9쪽, 시인의 딸인 프리다 휴스의 서문 중) 그녀가 자살한 이후, 실비아 플라스는 '해부되고 분석되고 재해석되고 재창조되고 허구화되었으며, 어떤 경우에는 완전히 날조되기도 했다(22쪽, 서문).'
이 복원본은 사랑의 시인, 진은영 시인이 무한한 애정을 담아 번역했다(그 애정이 시의 행마다 느껴진다). 옮긴이의 말에서 진은영은 실비아 플라스의 삶을 두 가지 버전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 글을 읽으며 '실비아 플라스'의 존재를 처음 알았던 어둡고 두렵고 황폐했던 시기의 내 시간도 이렇게 두 가지 버전으로 설명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가라앉고 오직 죽음만이 해결책인 것 같던 때, 그 바닥에서 사투를 벌이는 일 말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던 힘겨운 시간에도 삶과 아름다움과 열정을 노래한 실비아 플라스. 그의 시를 읽으면 함께 떨리고 지독하게 아프다. 그러나 이 떨림과 고통이 살아있음이란 걸 느끼게 된다. 아래는 진은영 시인의 말이다.
삶은 전자와 같은 비관적 버전 대신 후자의 낙관적 버전을 택하는 이들에게 궁극의 미소를 짓는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모든 이의 삶은 이 두 가지 이야기 사이를 오간다. 절정에서 절망으로, 다시 절망에서 절정으로. 삶은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동한다. 실비아 플라스의 삶도 그랬다. 마지막 순간의 자살 사고가 시인의 삶을 자꾸 비극적인 이야기로만 읽히도록 끌어당기는 경향이 있지만, 시들은 시인이 살았던 순간들, 절정과 절망 사이를 오가며 그가 느낀 모든 떨림을 보여준다. 게다가 시는 시인이 마주한 암담함의 거대한 벽에 작은 구멍 하나를 뚫어준다. 그곳으로 다시 빛이 들어오고 바깥을 볼 수 있다. (...)
<에어리얼>의 독자들이 실비아 플라스의 검은 벽뿐만 아니라 그 위에 뚫린 수많은 구멍들을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시인이 "오, 작은 나사송곳들ㅡ/ 이 종잇장 같은 하루는 어떤 구멍들로 벌써 가득 차 있는가!"(<간수>)라고 탄식할 때, 이 구멍들은 상처이기도 하지만 인식의 빛나는 눈이기도 하다는 것을. (<에어리얼>, 옮긴이의 말, 275,276쪽)
이제야 나는 실비아 플라스의 시를 읽는다. 사랑하며 열정적으로 살았던 한 작가의 시를 읽는다. 소리 내어 읽는다. 실비아 플라스가 "눈이 아니라 귀를 위해 쓰였다"라고 말하며 BBC에서 직접 낭독했던 시들이니까. 진은영 시인 또한 "시를 읽을 때 마침표의 위치에 섬세하게 주의를 기울이며, 꼭 소리 내어 읽어주길 바란다. 시인이 시를 쓸 때 그랬던 것처럼(277쪽)"이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으니 말이다.
절망의 시간을 지나는 당신이 눈을 들어 이 글들을 보면 좋겠다. 누군가 건네는 말이 당신의 마음에 들어온다면 좋겠다. 이 시들이 당신의 하루에 작은 구멍을 뚫어주고 그 구멍을 통과한 빛들이 당신을 눈뜨게 하면 좋겠다. 다정한 마음으로 많은 이들이 지금도 쓰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