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읽고 쓰는 건

<세월> 아니 에르노 / <그리스 신화>

by Soopsum숲섬


공립, 사립 할 것 없이 학교는 비슷했다. 침묵 속에 불변의 지식을 전하는, 질서와 위계를 존중하며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장소: (…) 질문할 권리는 선생님에게만 있었다. 단어나 설명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잘못이었다. 우리는 엄격한 규율에 제약을 받으면서 갇혀 있는 것을 특권으로 알고 자랑스럽게 여겼다.

ㅡ《세월》 아니 에르노, 1984BOOKS (2019), 56쪽



아니 에르노의 소설을 읽는 내내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는 줄조차 몰랐던 기억들. 아빠에게 안겨 만져본 턱수염의 까끌거리는 감촉과 냄새, 이야기를 끝낸 어른들이 밖으로 나갔을 때 맛본 김 빠진 맥주의 맛, 중학생이 되어 화장실에 쌓인 생리대를 보던 충격, 칼로 손을 베이던 감각이나 호기심에 가위로 책받침을 썰어본 기억 같은 것들, 집과 학교에서 생긴 감정과 감각이 살아나는 경험을 한다. 아니 에르노는 작은 송곳이나 칼을 들고 나를 가끔씩 쑤셔주는 것 같고 이런 일을 해준 건 작가 중 그녀가 처음인 것 같다.


자라면서 뭔가 잘못되었다고는 느꼈지만 이유를 도통 알 수 없었던 이유를 요즘 읽는 <그리스 신화>에서도 찾는다. 김헌 교수님의 강연에 푹 빠져서 하루에 한 번은 꼭 듣는 것 같다. 그는 신화 앞부분(아래 인용), 초기 신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해석한다.



가이아(대지의 신)는 타르타로스(지하세계, 암흑의 장소)로 던져진 자식들(티탄들)의 파멸에 앙심을 품고 티탄들로 하여금 아버지(우라노스, 하늘의 신)를 공격하도록 설득한다. 그리고 크로노스(티탄 중 막내, 농경과 계절의 신)에게 강철로 된 낫을 준다. 그래서 오케아노스(티탄들 중 바다의 신)를 제외한 다른 자식들이 우라노스(아버지)를 공격하고, 크로노스는 아버지의 성기를 잘라 바다로 던진다.

ㅡ 도서관1권 1장 4. 32쪽 《그리스 신화》아폴로도로스, 강대진 옮김. 민음사 (2005)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신화를 통해 다음 세대에게 <파트로크토니아> 즉 '친부살해의 전통'을 전한다. 그것은 '주어진 틀을 깨지 않고서는 자신의 세계를 찾을 수 없다'는 메시지다. 기성세대가 쌓아놓은 틀을 새로운 세대가 깨트리는 것, 기성세대의 틀 안에 갇히게 되면 자신의 세계를 찾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스스로 힘을 길러 덤벼봐라, 기성세대의 틀을 깨야 너희들의 시대가 열릴 수 있다는 메시지를, 그리스 인들은 신화를 통해 아이들에게 전했다." ㅡ 김헌 교수님의 그리스 로마신화 1 강연 요약.


부모님이나 선생님, 국가의 의지에 반하거나 거역하는 일에 커다란 저항감이 늘 있었던 것 같다. 그 억눌림은 대단히 오래된 것이다. 수많은 시에서 아버지를, 어머니를 죽이고 부정하고, 태워버리는데, 그런 것들을 읽을 때마다 몹시 불편했었다(그때 그 불편함에 주목했더라면 발견할 수 있었을까?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 언저리에 언제나 답도 함께 있다). 내가 나의 정체성을 인정하는 일 자체가 부모와 사회에 대한 거역이었기에 내 선택대로 살고 있으면서도 늘 죽어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리스 초기 신 우라노스와 크로노스는 자식들이 반발할까 두려워, 그들이 태어나자마자 다시 가이아의 자궁으로 넣거나, 스스로 삼키고 잡아먹는다. 그렇게 좁은 공간에 가둬서 키우는 것이 현실이고, 대부분의 자식들은 불편해도 모두가 그렇게 하니까, 하라고 하니까, 당연한 듯 주어진 틀 안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자식이 태어나면 역시 지금껏 살아온 세상이 전부라 믿으며 그들을 가두어 키우는 것이겠지. 자꾸만 플라마리옹의 목각화(《다정한 서술자》올가 토카르추크가 인용한 그림(12쪽))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읽고 쓰는 건, 이토록 몸부림치는 건, 이 틀을 벗어나기 위해서다.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세상의 끝, 혹은 지금 나를 가로막는 답답한 무엇인가를 뚫고, 부수고, 열어서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서다. 책은 도끼다, 란 말은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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