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섬타로} 열네 번째 상담일지
오랜만의 여행이었다. 3박 4일 중 하루는 옆지기의 오랜 지인 커플의 집에서 자기로 했다. 서로 안부도 묻고 일상 이야기도 나누고 식사도 같이 할 수 있고 서로의 시간도 아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도착해서 서로 반가워하고 근황도 나누고 거기까진 좋았다. 타로를 봐드리겠단 말이 화근이었다. 우선 옆지기의 지인인 C님의 현재 건강상태를 보았는데, 마음이 불안하고 침울하고 무척 힘든 상태로 보였다. 실제 몸의 상태는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았으나 마음이 우울하기에 현실 생활이 하나부터 열까지 어려운 상태였다. 카드를 그대로 읽어드렸을 뿐인데, 그는 그동안의 힘겨움을 토로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눈물까지 흘리고 말았다. "안 그래도 요즘 신경안정제 먹고 있어, 엄마 돌아가시고 나서 정말이지 내 마음을 헤아려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가장 가까운 이를 앞에 두고 하는 고백을 듣고 있자니, 커플인 M님이 무척 불편할 거란 생각이 들어 자꾸 쳐다보게 되었다. M님은 답답해하면서도 자신의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하지는 않았다. 이번엔 M님께서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보고 싶다고 하셨다. M님은 태양처럼 강인한 힘을 가진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었다. 전차처럼 할 일이 있으면 빠르게 앞으로만 달려가는 사람. 거기에 비해 C님은 모호하고 위태로운 달처럼 불안한 상태였다. 두 사람은 있는 힘을 다해 서로를 괴롭히는 중이었다. 서로 극과 극인 성향인 채로 거의 20년을 같은 공간에서 살아왔는데, 철길의 두 평행선처럼 결코 그 간격이 좁혀진 적이 없다고 했다. 그 이야길 시작으로 두 사람은 손님인 우리 커플을 앉혀주고 언성을 높이며 싸우기 시작했다. 그 싸움의 말들은 어딘가 익숙한 풍경이었다. 어느 커플에게나 있을 법한 사연이었고, 우리들 역시 처음 몇 년간은 그런 모습으로 싸웠던 적이 있기에 마치 사이코 드라마를 보는 심정으로 열심히 두 사람의 말을 경청하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에게 타로가 주는 조언은, 두 분 모두 자신이 가진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기준의 틀을 깨는 일, 즉 인식의 깨어짐이 필요하고 서로를 다르게 볼 수 있는 관점을 갖게 해 줄 경험이나 시간, 기회를 갖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었다. M님은 "방법이 없네, 없어."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저녁 식사 후 긴 산책을 하며 이번에 처음 본 M님과 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아쉽게도 서로가 다르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서로를 위해 나를 내려놓을 의향은 전혀 없어 보였다. "왜 그렇게 해야 하죠? 난 그러고 싶지 않은데." 두 사람은 매번 똑같은 일로 싸우고, 똑같은 패턴으로 움직이며 생활해 왔다. M님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어쩌면, 나 스스로 이 패턴을 바꾸고 싶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어요." 정말로 방법이 없어 보였다. 다음날 아침까지도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상황은 계속되었고, 우린 아침을 일찍 먹은 후 짐을 꾸려 그 집을 나섰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이란 단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이란 단어 없이도 편안하다. 서로가 변화하길 그토록 바라면서도 자신을 먼저 내려놓지 못하는 마음은 무엇으로도 가릴 수 없이 가난해 보인다.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닌 것 같아 안타까웠고, 오히려 반 발짝 만 비켜서 보면 서로의 소중함을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더 속상했다. 이제 몸까지 심각하게 아픈 C님을 보며 우선 각자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단 생각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 복잡한 마음이었지만, 그 또한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아, 괜히 타로를 봐드린다고 했나 봐. 이 일이 계기가 되어 변화할 수 있는 물꼬가 터지면 얼마나 좋을까." 아주 작더라도 두 사람의 일상에 변화가 생겨나길 간절히 기원한다. 20년이나 함께한 서로이기에 평소엔 알지 못했던 감사함, 편안함이 있단 사실을 두 분이 얼른 알아차리시길 바라본다. 씨앗 속에 담긴 무한한 가능성이 그날의 타로 상담 속에 숨어 있었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