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 빠진 마음에 쇼핑 채워 봐라 자신감이 채워지나.

자신감 대체소비

by 단팥


행복이라 믿었지만

나에게는 A와 B라는 친구 둘이 있다. 우리 셋은 대학시절 항상 붙어 다니곤 했다. A는 얼굴이 예쁘고 몸매가 날씬했고 항상 밝은 표정과 재미있는 말투로 동기나 선배, 남자들에게 인기 또한 높았다. A가 입는 옷은 누구나 부러워할 정도로 좋은 옷들이었다. 2000년대 초반의 그녀는 늘 백화점에서 가장 핫한 외투를 골라 강남 보세의 청바지나 티셔츠와 함께 어울려 입었다.

반면, B는 도통 옷이라곤 관심이 없었다. 옷보다는 자신의 종교 활동, 취미생활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평범한 대학생들이 입는 옷 중 가장 저렴한 옷을 사서 입었고 동글동글한 얼굴에 수더분한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성격은 꽤 쾌활한 편이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튀거나 묻히지 않고 자기의 색깔을 잘 나타냈으며 조용히 어울렸지만, 자신의 목소리도 잃지 않고 잘 전달하는 편이었다.

대학 졸업 후 우리는 점점 만나는 횟수가 줄었다. 사회 초년생의 회사 생활은 고단했고 서로의 직장이 꽤 먼 거리에 위치해 만나기도 힘들었다. 일 년에 한 번, 이 년에 한 번, 급기야는 만나는 횟수가 연 단위를 넘어섰다. 그렇게 몇 년에 한 번 드물게 만나다 한 5년 전부터는 A의 직장 이직으로 만남을 자주 하게 되었다.

대학 때야 내가 잘 알고 있는 친구들이라 생각했지만, 졸업 후 전혀 다른 세계에서 만나게 된 친구들은 내가 전에 알던 친구들이 아니었다. 모두 각자 다른 세계에서 적응하여 살고 있었고 변한 것이 많았다. 그래도 소비습관만큼은 달라진 것이 별로 없이, 각자의 개성 그대로 남아있는 것은 참 신기하게 느껴졌다.

A는 여전한 멋쟁이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해 이제 명품을 사랑하는 명품녀가 되어있었고 B는 늘 그렇듯 물건을 사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어느 날, A가 들고 온 신상 명품백을 두고 내가 눈이 휘둥그레져 가방에 관심을 보이자 B는 그게 뭐냐고 물어보았다. A와 내가 웃으며 '너는 아직도 이런 데는 관심이 없구나!' 하고 말했다. B가 웃으며 대답했다. '맞아. 나는 항상 그렇더라고. 누가 뭘 들고 입고해도 그게 잘 안 보여. 신기해 나도.'

근데 술이 한 잔 들어서였을까. A가 갑자기 자신의 본심을 털어놓았다.

나는 말이야, 아빠와 일찍 떨어져 살며 언니와 엄마 나 이렇게 셋이 살았잖아. 리 셋이 씩씩하게 잘 살았지만 솔직히 허전함이 있었어. 근데 이런 가방을 하나씩 살 때마다 그게 채워지는 느낌이더라. 그래서 좋은 옷이나 가방으로 나를 채워왔던 거 같아. B야, 너는 늘 든든한 부모님이 있으셨잖아. 믿음직한 오빠도 있었지. 나는 네가 항상 부러웠어. 너는 이런 게 이도 행복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A의 예상치 못한 고백에 B와 나는 할 말을 잃었다. A에게 있어서 물건이란 허전함을 채우는 수단이었구나. 이렇게 예쁜 A가 혼자서는 자신이 없어 물건들에 의지했다니. 나는 들고 있던 A의 가방을 내려놓고, 대신 A의 손을 잡았다.

A와 나의 손이 포개져 있는 시야에 나의 옷과 가방 그리고 핸드폰이 들어왔다. 모두 좋은 것들로만 가지고 나온 나의 '자신감의 키'또한 A와 다를 것이 없었다.



평범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왜?

특별한 가정환경이나 상황 속에서 자랐다고 해서 모두 A처럼 쇼핑으로 자신감을 채우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아는 다른 친구는 A보다 더 힘든 가정가 있었지만 쇼핑의 쇼자도 모르고 누구보다 자신 있게 세상을 살아간다. 오히려 나는 3남매 중 막내로 키워지며 언니, 오빠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지만 가슴속에 늘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있어 그걸 극복하기 위해 별 짓 다 하고 살아보다 오랜 기간 쇼핑에 매달렸다. 같은 환경에서 자라난 우리 언니는 지독한 짠순이다.

우린 모두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타고난 기질로 뒤범벅이 돼 고유한 인간 특성을 발전시킨다. 결국, 내가 이렇게 되어 버린 건, 네 탓도 내 탓도 아니라는 거다. 그저 문제를 알았다면 그것을 들여다보며 고치고 극복하려는 의지만이 우리의 숙제로 남은 것일 뿐.

그렇다면, 나는 무엇이, 어떤 감정이 부족해서 그렇게 물건에 집착했던 것일까? 나의 경우엔 그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첫째, 나는 어려서부터 잘못된 소비 교육을 엄마로부터 이어받았다.

우리 엄마는 전업주부로, 다섯 식구의 생활을 책임지는 역할을 했다. 엄마는 요리 솜씨도 좋고 살림도 잘하는 만능 주부였고 아주 알뜰한 편이었다. 콩나물 값 100원도 아껴 가계부에 적고 그 돈을 한 푼 두 푼 모아 저축도 열심히 다.

엄마에겐 한 가지 부끄러움이 있었는데 어려서 수두를 심하게 앓아 얼굴에 자국이 심했던 것이었다. 그 시절 흔한 말로 '곰보'라 불리던 얼굴이 바로 우리 엄마의 얼굴이었다.

아빠의 사업이 조금 잘 되기 시작하자 엄마는 이전까지 자식들에게 해주지 못했던 것들을 사들이고, 또 동시에 당신의 한 맺힌 외모도 꾸며가기 시작했다. 가끔, 엄마는 아빠가 좋아하던 고 김자옥 배우를 보면 '피부가 참 하얗고 예쁘지'라고 했다. 외모에 자신이 없던 엄마가 쇼핑을 하며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에 기뻐하던 모습이 가끔 떠오르는데, 한편으론 참 안쓰럽기도 하다.


엄마가 백화점에 본격적으로 다니기 시작한 것은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다. 빠의 가게가 이전보다 잘 되기 시작하자 엄마의 주머니 사정에도 여유가 생겼다. 삼 남매 중 막내인 난 시간이 많고 엄마와 더 친밀했기에 쇼핑메이트로 아주 적격이었다. 엄마는 그렇게 나와 함께 그간의 한을 풀 듯 쇼핑을 즐겼고 우린 사이좋게 백화점 입점 브랜드를 하나씩 익혀나갔다.

백화점 할부제도는 무이자를 품었고 당시 유행이던 구매금액 10%의 상품권 페이백 사까지, 백화점은 모녀 고객을 위해 쇼핑의 풍년도 기원해 주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백화점, 카드 할부, 포인트 행사를 즐겼으니 본격적으로 쇼핑을 즐기기 시작한 사회 초년생 이후부터는 쇼핑에 있어서 아주 거침이 없었다. 엄마와 그런 사춘기를 보낸 나는 어떻게 해야 물건을 좀 더 많이 살 수 있는지를 이미 알고 있 것이다. 그래서 이런저런 물건을 사 모으며 정신이 없는 내게 폭풍 같은 잔소리를 하던 엄마도 결국 끝맺음을 ‘누구 탓을 하겠냐, 내 탓이지’로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 나는 어려서부터 ‘자신감’이 많이 낮은 아이였다.

일명 새가슴에 트리플 A형의 극소심 형 인간이 바로 나다. 아마도 이 글을 읽고 계신 분이라면 거침없는 소비습관을 지닌 내가 소심하다는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 남들 앞에 서면 난 늘 속이 떨렸고 누군가의 사소한 말 한마디도 며칠이고 목에 걸려 밥도 못 먹었다. 친구나 연인 관계도 맺고 끊지 못해 질질 끌려다니기 일쑤였다.

친척 집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잘 먹는구나, 더 먹을래?' 하는 질문에는 '모르겠어요...'라는 애매한 대답을 했다. 성적은 늘 어정쩡하고, 운동엔 젬병이며 그림도 잘 그리지 못했다. 하다 못해 글씨도 예쁘게 쓰지 못해 남들 앞에서 글씨 쓰는 것도 두려워했다.

하지만 쇼핑은 달랐다. 철저한 '나 중심'의 자기 주도적 행동이었다. 누구도 내 돈을 내가 쓰는데 뭐라 할 수 없으니. 자신감의 부재는 그것을 채우려는 다른 통로인 쇼핑으로 발현이 되었다.

늘 좋은 물건들로 나 자신을 예쁘게 꾸미고 남들에게 관심을 더 많이 얻는 것을 원했으며, 스스로 당당하지 못하고 물건에 의존하며 나의 자신감을 채우려는 잘못된 노력 했다. 행하는 것들을 몸에 두르고 꾸민 뒤 남들이 예쁘다고 하는 칭찬을 들으면, 마치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된 거 같았에.



그래. 자신감이 낮은 내가 쇼핑으로 채웠던 것은 바로 '가짜 자신감'이었다.


이미지출처- 다음영화 쇼퍼홀릭 스틸 컷


-다음 편에서 자신감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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