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B는 자신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쇼핑을 즐기고 좋아했던 나와 A는 내게 없는 것, 다른 이들이 가지고 있는 것에 종종 눈을 뺏기고 그것을 '사는 것'에만 집중했다.
반면, B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남들과의 비교, 부족함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도 않았다. 그것에 대한 가장 큰 출발은 바로 ‘자신을 믿는 것’이었다. 안정적인 자기의식, 즉 자기 자신을 느끼고 판단하는 부분에 있어서 B는 너무 모자라거나 너무 넘치지도 않았다.
자의식이 너무 낮은 사람은 자신을 냉철하게 바라보지 못하고 부족한 것만 의식한다. 그래서 나와 A처럼 자신감이 낮고 움츠러든다. 자기 자신을 잘 믿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괜찮은 사람이며 좋은 것들로 나를 꾸미지 않아도 충분히, 멋지다는 자기 신뢰가 없다. 그래서 명품이나 고가의 물건들로 나를 포장하기 바쁘다.
하지만 자의식이 충분히 발달된 사람은 자신이 하는 구매에 대한 냉정한 시각을 가진다. 내 경제적 수준을 벗어나는 물건을 살 여유가 내게 없고, 갖고 싶지만 갖는다고 해서 나의 본질이 달라질 것은 아니라는 시각. 충분한 자의식을 바탕으로 적절하게 발달된 자신감은 애초에 값진 물건을 찾아다닐 필요성을 느끼지도 않는다.
굳이 명품이어야 할까?
이런 말을 할 수도 있겠다. ‘나는 원래 예쁜 것을 좋아하는데? 그래서 난 명품을 사는 거야’. 취향에 따라 달라지는 장신구들을 그저 나의 기호에 맞는다는 생각으로 구매했지 자신의 낮은 자신감을 높이려는 수단으로 산 것이 아니라고.하지만, 그렇다면 그것들이 굳이 고가의 명품일 필요는 없다. 적절한 비용의 제품들도 훌륭한 것이 많은데 왜 당신과 나는 브랜드의, 고가의 제품을 선호했던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하여 우리는 한 번쯤 깊이,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잠시 가짜 여왕이 되어 가짜 자신감을 구매했다.
자, 당신은 매장으로 들어섰다. 친절한 점원이 다가와 당신에게 인사를 하고 말을 건넨다. 직장에서 상사에게 깨지고 일하는 만큼의 대우도 제대로 못 받는 일개미지만 지금 이곳에서만큼은 나도 여왕이 된다. 옷을 고르고 점원이 맞는 사이즈의 새 옷을 가져올 때까지 당신은 안락한 소파에 앉아 잠시 사치스러운 분위기를 즐긴다. 피팅룸에서 시착을 해본다. 역시 고급스럽고 예쁘다. 날씬해 보이고 부티나 보이고, 마음속으로 이 옷을 사야 할 이유를 한 열 가지쯤 생각한다. 이 걸 사버리면 당장 다음 달 내내 쫄쫄 굶어야 할 판이지만, 그 걱정은 잠시 뒤로 하고 카드를 꺼내 긁고 옷을 받는다. 점원이 무한 감사 인사를 하며 문을 열어준다. 집에 돌아와 샀던 옷을 꺼내 입으며 사진을 찍는다. 친구들 단톡 방에 사진을 전송한다.
“
어머, 예쁘다.
얼마야?
나도 사고 싶다.
”
긍정적 피드백을 확인한 후 옷장에 다시 옷을 잘 걸어놓는다. 아침에 그 옷을 입고 출근을 해야지. 설레는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그런데 가슴이 텅 빈 느낌이다. 좋은 옷을 샀으니 마음도 좋아져야 하는데 왠지 그렇지가 않다. 가짜로 된 자신감을 사서 그렇다. 정말 제대로 된 것으로 나를 채워야 하는데, 잠시만 나를 채워 줄 무언가를 계속 고르고 있기에 채워도 채워도, 나는 채워지지 않는 것이다.
무엇으로 나를 채울까?
쇼핑할 때 행복했던 순간은 그게 전부였다. 예쁜 옷을 입으며 거울을 보면 순간순간 나도 더 예뻐진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메일로 도착한 카드 명세서 금액을 보는 순간, 올여름 가장 무서운 호러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 소름이 쫙 돋는다.
이거, 내가 썼던 카드 금액이 맞아?!
자, 이제 나의 자의식을 생각해 볼 시간이 다가왔다. 좋은 옷을 샀지만 행복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자. 상점에 들어갈 때 풍기는 좋은 향기에 취해 예쁜 옷에 반해, 대접받던 그 순간에 취해 내가 저지른 것은 뭐지?
바로 내 통장을 가난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한번 가만히 ‘나’를 떠올려 보면 좋겠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누구고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정신건강 의학과 전문의 윤홍균은 저서에서 남의 눈치를 오랫동안 봐온 사람은 자신에 대해 잊는다고 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잘 모른다고. 그래서 자신의 욕구와 행동이 서로 일치하는지 불일치하는지도 판단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는 이런 사람에게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종이와 펜을 꺼내 구체적으로 적어보길 권유한다. 부정형이 아닌 긍정형의 문장으로 타인이 주어가 아닌 나가 주어인 주체형으로, 과거 시점이 아닌 미래의 시점으로 적는 것을 권유한다. 나는 그의 책을 읽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물건을 찾는 나의 소비욕구를 멀리하고자 쇼핑, 구매라는 기준을 적용하여 일기처럼 적어본 적이 있다.
쇼핑으로 나를 채우지 않아도 편안한 나의 모습
나는 쇼핑에 의지하지 않아도 충분히 당당한 사람
앞으로는 물건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쇼핑으로 자신감을 채웠던 내 모습이 불쌍했다. 내가 나를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해 주지 않는데 누가 나를 인정해 줄까 싶었다. 그리고는 굳이 쇼핑이 아니어도 내 허전한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것들을 생각했다.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의 시간, 사랑하는 가족과 따뜻한 밥 먹기, 식물을 키워 친구들에게도 한 뿌리 씩 분양해 주기, 시간이 날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공공 미술관이나 박물관, 도서관에 가기, 수영하기 등등. 주변을 돌아보니 내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것들은 참 많기도 많았다.
그래서 나처럼 쇼핑으로 얼룩진 인생을 사는 사람에게는 꼭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다.
당신은 예쁜 옷을 입어서 예쁜 사람이 아닙니다. 좋은 구두를 신어서 멋진 사람이 아니며, 비싼 가방을 들었다고 해서 비싼 사람이 아니에요. 우리는 우리 그 자체로도 너무 훌륭한, 충분히 아름다운 여자인걸 잊지 말아요!
지난 겨울 보았던 작가 하이메 아욘의 전시 중에서 마음에 쏙 와 닿았던 문구.
참고문헌
1. 윤홍균 '자존감 수업'
2. 다음 사전, 백과 '자의식'
3. 여성의 외모 관리 행동에 대한 자아존중감과 정보탐색에 관한 연구 2012 이주영
글 커버 사진 -마법의 자신감 때문에 생기는 해프닝을 그린 영화 '아이 필 프리티'의 스틸 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