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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깊은 공포를 꺼내다

<영화 : 링> 잡담 글

by 정민쓰





짧은 영화 잡담글_<링>










융의 이론에 따르면 학습되지 않아도, 인류라면 무의식의 층에 공통적으로 내재되어 있다는 '원형'에 대한 언급이 있다.



사람들은 왜 공포컨텐츠를 보고 공포를 느끼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우리가 토요 미스테리를 보고 벌벌 떨었던 건, 전설의 고향에 나온 구미호를 보며 이불을 눈 위까지 끌어올렸던 건 왜 일까?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인류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자하는 이야기는 의식이 개입하여 어떠한 상이 맺히기도 전에 그냥 그 존재 자체로 묘한 다이내믹을 가지는 것들. 피부와 두개골도 거치지않고 뇌부터 후드려까버리는 이런 느낌을 나는 '영감'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렇듯 영화나 노래를 들을때 문득 말로 형언하기가 힘든,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오는 무언가를 느낄 때가 있다. 좋은 쪽이던 나쁜 쪽이던 나에게 강한 정신적 내상을 입혔던 여러 영화들이 떠오른다.








정말 근원적이고 근본적인 불쾌함을 넘어 괴로울 정도의 역함을 느끼게 한 영화들도 분명 있다.

불쾌함을 건드리는 것이야 말로 영상예술에서는 치트키다. 그만큼 강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공포영화에서 강렬한 영감을 느낄 때가 은근히 많다. 소재적으로 필연적인 불쾌함과 마주해야 하기 때문에.

불쾌함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끔찍함, 잔인함, 더러움 등등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아주 척추부터 소름이 올라오는 '공포감'을 느끼게 해줬던 영화가 있다. 그것은 바로 <링>.











J-호러는 특별하다?



나는 J-호러영화에 대해 어느정도는 독립적인 장르로 분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일본의 문화예술들은 고립된 지형적 특성때문인지 일본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분위기와 색채가 확실하다. '일본스러움'이라고 해야할까. 일본영화는 정말이지 '무언가' 이질적이다. 색감, 분위기, 문화, 정서 등 모든 것에서 일본식 아방가르드함이 기저에 은은하게 느껴진다.


일본의 영화들은 영화산업 전반에 일본스러움을 녹여내는 방향으로, 그야말로 기괴하게 독자적인 발전을 한 영화적 갈라파고스 섬이다. 아주 은유적 표현 만은 아닌 것이 정말로 고립된 섬지형에서 쌓아올린 예술성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한국영화의 귀신은 보통 한을 가지게 된 증오의 인과관계가 확실하기에 원한을 풀어 성불을 시킬 여지가 있지만, 일본영화의 귀신은 심신미약 묻지마귀신이다보니 눈에 띄는 사람들한테 무차별적으로 아방스트랏슈를 날린다. 일본 공포영화 특유의 음침함을 배가시키는 부분은 이런 묘한 불쾌감을 건드리기 때문이 아닐까?




일본은 독자적인 신과 요물, 괴담 등이 정말 많아 일본의 고유한 공포영화 소스도 정말 많기 때문에 호러영화가 나타내는 다양한 양상도 아주 흥미로울 수 밖에 없다. 이 역시 고립된 섬지형에서 기인한 것으로 개인 추정하고 있다.



+ 선혈이 낭자한 역사적 요소들도 많다. 막부의 역사, 사무라이들의 할복문화들은 가부키 극에서 가장 유명한 추신구라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아니 이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얼마나 화끈한 애티튜드를 가지고 살던 사람들인지 모르겠다. (positive)


기승전할복...우리나라로 치면 심청이가 명예롭게 죽겠다며 할복으로 인신공양을 하는 꼴이다. 아마 눈을 뜬 심봉사도 눈을 뜬 기념으로 할복했을 것이다. 토끼의 간을 빼먹으려는 용궁가도 잔혹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새발의 피였다.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영화를 좋아한다고 하면 어떤 영화를 재밌게 봤냐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데, 질문자들의 눈은 대부분 전위적인 작품명들이 내 입에서 나오길 기대하는 눈치다. 막상 내가 재밌게 본 영화는 대부분이 그냥 무섭고 무서운 귀신영화들이다. 공포영화가 제일 재밌는데 나는? 귀신 최고.



꼬꼬마시절 워낙 겁이 많던 나는 밤에 혼자 화장실도 가지 못했었는데, 될 성 부를 변태였는지 그럼에도 무서운 걸 너무 좋아했었다. 아직도 기억나는건 툐요미스테리에 쳐다만봐도 죽는다는 '원숭이술 편'을 보고 진짜 '나는 이제 꼼짝없이 죽는구나.' 하고 척추깊은 곳부터 미친듯한 공포를 느꼈었다.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불법복제 영상의 무당 굿 장면)





이 영상 진짜 무서웠는데.








<링>이 지렸던 이유



<링>은 근-본이다. 나에겐 공포영화의 교보재같은 의미가 있다. 공포영화를 비교할 때 항상 떠올리게 되는 좋은 예시다. <링>이 보여주는 공포는 호들갑을 떨게 만드는 공포와는 결이 다르다. 텁하고 숨이 막혀오는 무거운 공포이다.


일본의 영상의 최고 강점은 화면으로 특유의 '습도'를 구현한다는 점이다. <링>은 공포의 미장센으로 이를 정말 잘 활용했다. 무슨 수영장이나 불한증막에 있는 것 같다. 엄청나게 꿉꿉, 눅눅하고 공기 중에 얇은 막이 있는 것처럼 숨쉬기가 힘들게 만든다.



기싱영화에서 보여지는 특유의 무언가 불안한 분위기가 시종일관 유지되면서도 스토리텔링은 충실하고, 공포연출은 교과서적 레파토리를 보여주는데도 불구하고 세련되고 눅진하다. 엄청 달고 꾸덕한 브라우니를 먹는 느낌이다.




플롯은 기본적으로 저주의 연쇄라는 소재를 잘 활용하고 있다.

보게되면 일주일안에 죽는다는 저주의 비디오에 대해 취재하는 여기자가 진실에 다가가며 겪는 일련의 저주레이스라고 보면 된다.








이 영화가 '세련된 클래식'인 이유는 현대적인 아이템들의 감각적인 활용에 있다.

자극적인 쇼를 보여주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면접당일날 같은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는지의 비결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공포영화의 약속과도 같았던 쾅! 하는 점프스퀘어? 오줌 지릴 것 같은 분장쇼? 노노해. 여기서는 딱히 나오지 않는다.



<링>을 하드캐리하는 소재는 흔히들 '우물'로 알고있는데, 사실 VHS비디오테이프, 전화기, 텔레비전 등의 현대적인 소재들이 모두 활용된다. 이는 그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일상에 스며드는 무서운 공포를 그려내며 그 어떤 곳에서도 안전할 수 없는 전방위적 공포감을 극 중 인물만이 아닌 관객들에게도 전이시킨다.



이 당시엔 정말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충격으로 다가왔고, 이는 이후 다른 공포영화인 <주온>, <착신아리>에서도 나타나지만 형만한 아우가 없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영화의 사운드도 공포감 조성에 크게 한 몫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정적, 고요에서 오는 불안함을 잘 이해하고 있다. 주입식으로 '지금 무서운 장면이에요!' 를 어필하지 않고 BGM 활용을 최소화 하고 있다.


영상 속 공간의 소리만으로 이루어진 사운드적 표현은 상당히 덤덤한 현실감을 준다. 특히나 인상적인건 영화 시작을 알리는 오프닝시퀀스. 동 트기전이 제일 어둡다고 하는데, 그게 뭔지 제대로 보여준다. 영화의 시작부터 은근하게 드러나는 고요하고 정적인 압박감은 아직도 내가 <링>을 찬사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이 영화의 고고한 무서움은 영화의 시그니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이 정갈하기 그지없는 담백한 무드형성은 '지루함'과 끊임없이 줄타기를 하고 있어 작품성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패착이 될 수도 있는 요소다. 이 영화의 호불호도 여기서 올 듯하다.








<링>의 귀신인 사다코는 마치 친절한 쿠팡맨같다.


비디오를 봄으로써 사다코서비스를 신청하면 전화로 방문을 알리고, 방문일만을 목빠지게 기다리게 만든다.



밸런스게임 중에 내가 죽을 시간과 사인을 알 수 있다면 확인한다/안한다. 라는 명제를 본 적이 있는데, 이런 내용의 밸런스게임이 애당초 성립할 수 있는 것도 사람에게 '죽음을 알 수 있다'는 무게가 얼마나 두려운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방증이라고 본다.



예견된 죽음을 그저 기다려야 하는 인물들이 점차 숨이 막혀오는 과정은 나까지 답답하게 만든다. 그 과정 속에 인물들 간의 관계도부여를 통한 모성애, 인성질 등등의 요소 또한 아주 깔끔하게 표현하고 있다. 몇몇 시퀀스는 갑분 구구절절 사연설명 모드에서 아주 자유롭진 않은 영화지만 인물간의 역학관계도는 구조적으로 탄탄한 편이다.




BGM : 미나 - 전화받아. <저주 배송 왔습니다>









또 영화에서 눈여겨볼 점은 '영상 속 영상'이다. <링>하면 빼놓을 수 없는 문제의 '그' 영상.

묘하게 이질적이고 매우매우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준다. 아니 이 사람들 마음만 먹으면 이런걸로 기분나쁘게 하는건 진짜 최고다.




극 중 저주의 비디오를 통해 틀어지는 영상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묘한 영상이지만, 이 또한 진실에 다가서며 모호한 불쾌감을 명확한 불쾌감으로 만들어준다. 이 과정은 점차 진실들이 맞물리는 쾌감을 주면서도 영화 진행의 당위성을 함께 가져가기 떄문에 활용도면에선 200%로 극대화되지 않았나 싶다.





움짤 아니니 안심하세요.





기분 나쁜 영상과 함께 기분 나쁜 설정도 같이 등장한다.심지어 이 설정의 핵심은 '인성질'이다.


이 영화는 아주 재밌는 설정 하나가 플롯 속 변수를 창출할 수 있는 시나리오적 장치로 나타난다.

바로 비디오를 봤더라도 '일주일안에 다른 사람에게 비디오를 보여주면 저주를 옮기고 살 수 있다'는 것.

이런 설정은 단순히 저주에 대한 공포가 아닌, 인간의 도덕성에 대한 딜레마로 이어지며 또다른 국면의 불쾌감을 부여한다.



게임을 할 때 사람은 '성악설'을 따른다고 생각한다. 게임에서 아주 맛깔나게 주어지는 트롤링 기회를 참는 건 아주 힘든 일인데, 이 영화 속에선 트롤링을 안하면 내가 죽는다? 절대 못 참지.



저주에 걸린 인간에게 너무 가혹한 짐이 지워지는 잔인한 설정이지만, 이를 통해 인물들의 쏘시오드라마적인 부분이 더욱 감칠맛이 나게 된다. 요리로 치면 이 설정이 굴소스, 치킨스톡, 멸치액젓의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모든 요소를 탄탄하게 갖추고 있어 사실 기본기가 아주 탄탄한 공포영화인데, <링>만의 오리지널한 맛까지 가미한 그야말로 근-본 호러무비가 아닐 수 없다. 영화산업이 많이 발달한 지금 정서로 보더라도 '이 영화 좀 친다.' 라는 생각이 들기 충분하다.




<링>은 정말 수작이다.

다만 <링2>는 다소 아쉬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시간이 없다면 1편만 봐도 충분할 듯 하다.


아무래도 투박한 영상의 질이나,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옛날 맛으로 인해 지금의 정서로 보는 사람들에겐 충분히 맛나게 느껴지진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명작은 시대를 타지 않는 것. 그래도 개인적으로 호러영화에선 하나의 획을 그어준 작품이라고 감히 말해보고 싶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차라리 이 영화는 올드해서 다행인 영화이다. 솔직히 VHS비디오여서 망정이지 요즘 시대였으면 카톡타고 영상 퍼져서 지구 상에 인구가 절반이상은 저주빔맞고 사망이다.


유튜브에 많이 있는 [결말포함/영화리뷰]로 보면 이 영화의 저력을 느낄 수 없다. 관심이 생기신다면, 호러영화가 좋은데 아직도 <링>을 안보셨다면, 꼭 한번 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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