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 잡담 글
짧은 영화 잡담글_<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
각성하라 씨네필들.
100점을 맞는 게 힘들까? 0점을 맞는 게 힘들까?
확실한 건 0점을 맞은 사람은 100점을 맞을 수 없지만, 100점을 맞은 사람은 의도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0점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아이러니하게도 의도된 오답은 정답을 알고 있다는 반증이라는 것이다.
기대가 되지 않는 제목, 기대가 되지 않는 포스터에도 불구하고 긴 연휴 킬링타임용으로 클릭한 영화가 엄청난 도파민을 선물해 줬다.
'b급영화? 나한텐 이게 s급이야.'
이 영화를 아시나요?
'빨간마스크 KF94'
22년에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에서 16분 정도의 단편영화로 당시에 꽤나 입소문을 탔었다.
오늘 글의 주제가 될 영화인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 개교기념일>이 꽤나 충격으로 다가왔기에 감독의 필모를 찾아봤더니, 아니나다를까 <빨간마스크 KF94> 의 감독이었다. 이 사람은 원래 기인이구나 싶었다.
<빨간마스크 KF94>의 제목만 들어도 알겠지만 꽤나 골 때리고 뻔뻔한 장난이 돋보이는 영화이다. 흔한 소재를 흔하지 않게 만드는 창의력과 관객들의 예상을 예상하여 냅다 정면으로 비틀어버리는 과감함이 이 감독의 무기가 아닐까. 정말 너무 뻔뻔하게 밀고 들어오는 게 기본값이 되니, 이런 특유의 영화문법을 오히려 하나의 장르라고 봐도 무색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작들은 그 자체로 또 다른 창작을 만든다
창작물의 신선함이나 키치함은 창작자의 반골기질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관객들은 이미 많은 창작물들에 학습되어, 기대하고 있는 나름의 다음 장면들을 머릿속에 그리며 영화를 보게 되어있다. 흔히들 클리셰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하지만 하나도 관객의 예상대로 영화가 흘러가지 않는다면 어떨까?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난데없는 다른 클리셰들을 뻔뻔하게 들이민다면? 이 영화는 일부러 정답을 피해 가며 오답을 제시하고, 그 오답을 이 영화만의 정답으로 만들어가는 영화이다.
일찍부터 관습적인 연출이나 내러티브를 비틀어버리거나 오히려 과하게 사용하는 방식으로 정면돌파하는 영화들은 꽤 많았다.
대표적으로 지금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영화학도라면 모를 수가 없는 <싱잉 인 더 레인>이라던지, 누벨바그의 시작을 알린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 등이 있겠다.
현대적인 영화문법에서도 교과서적으로 <스크림>을 예시로 들 수 있다. 공포영화의 할리우드식 문법에 직접적으로 도전했고, <데드풀>도 직접적으로 관객을 우롱하듯 매우 과감한 클리셰트위스트를 보여준다. 이 외에도 <케빈 인 더 우즈>는 영화의 흐름을 자유분방하게 가져가는 수단으로 영화의 시나리오적 프레임을 아예 깨버린 시도를 했었다.
국내의 영화에서는 대표적으로 <극한직업>이 이해하기 쉬운 예시가 아닐까 싶다. 예상과는 일부러 반대로 가는 연출들이 많이 보였었다. <극한직업>이 국내에서 성공을 한 것도, '관객들은 뻔한 영화문법을 파괴하려는 시도에 꽤 고무적인 반응을 보인다'에 대한 유의미한 사례라는 생각이 든다.
다소 결은 다르지만, <범죄도시> 시리즈 또한 그렇다. 내러티브의 치트키라고 할 수 있는 '압도적 강자'가 무력하나로 시나리오의 많은 요소들을 정당화해 준다. 길게 설명이 필요한 서사도 무력하나로 깔끔하게 정리 및 설명이 된다는 건, 일종의 서사적 속도감이나 의식적인 해방감을 가져온다. 그 과정에서 일방적인 주인공의 무쌍이 주는 '장면 자체의 통쾌함'이 서사적 속도감에 상승작용을 주는 것이다.
주인공 자체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고? 시나리오를 만들기에도 꽤나 편한 IP가 흥행했으니 계속해서 쭉쭉 후속작을 뽑아내는 것도 이해가 간다.
즉 관객심리에서 애당초 큰 해석의 노력을 준비하지 않고 보는, 흥미본위의 영화는 그야말로 관객의 시청피로도를 최소화하면서 관객을 재밌게 만드는 것에 중점을 주는 것이 가장 메리트가 있다는 것이다.
너무 골 때려서 (정신)
진짜 골 때림 (물리)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낯설지 않게 낯선 이 영화는 뭐지?, 왜 재밌지?' 영화를 보며 내내 내 머릿속을 지배했던 감정들이다. 툭 까놓고 말해서 이 영화 너무 재밌다. 의도된 어이없음에 어이없어하며 봤다.
이 영화의 시놉은 꽤나 낯설지 않다. 영화감독을 꿈꾸며 영화를 만들고 있는 방송반아이들이 수능 답안지를 알려준다는 저주의 비디오테이프를 보고, 그 전설에 따라 개교기념일에 불 꺼진 학교에서 숨바꼭질을 하는 내용이다. 이렇듯 메인 흐름만 기술해 보아도 어디에서 본 듯한 소재들이 스까짬뽕 되어있는걸 알 수 있다.
영화는 단순히 B급을 자처하는 뻔뻔클리셰 몸통박치기 연출만이 아니라 요즘 정서에 먹힐만한 포인트들도 감독이 제법 잘 때려준다. '씨네필'이라던지 '신파는 안돼'라던지, 난데없는 만화클리셰라던지.
물론 굳이 분석적인 포인트를 잡지 않고 맨 눈으로만 봐도 웃음을 자아내는 포인트들이 많이 있다.
이 감독 분명히 뜬다
저점매수 ON
좀 더 알기 쉽게 요약하자면, 이 영화는 할리우드의 '못 말리는 람보'나 '무서운 영화'시리즈, 혹은 주성치영화 같은 영화들을 현대식 한국 공포영화로 만든 느낌을 상상하면 된다. 어느 면에서는 광고계에서 핫한 '돌고래유괴단' 사단의 CF 감성 같기도 하다. 클리셰를 일부러 마구 이용한다는 것은 '아는 만큼' 더 보이고 더 즐길 수 있는 영화란 의미이기도 하다.
문득 필요 이상으로 화려한 수사를 사용하면서, 그 내용적으로는 그렇지 못한 1차원적인 평가를 하는 애매꾸리꾸리한 '씨네필 호소인'들이 이 영화를 보면 무슨 평가를 할지가 궁금해졌다. 애매하게 장난칠 거면 이 영화처럼 화끈하게 놀아줘야 애매한 평가도 사라지지 않을까?
예술을 감상하고 나름대로 평가를 하는 눈에는 참 변수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취향이나 선호, 유행마저도 돌고 도는 세상에서, 이것이 당 시대의 창작물평가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언제나 숙원처럼 보이지 않는 애로사항에 머리를 싸매고 있을 창작인들에게 연민의 감정이 들었다.
그래도 최대한 편식하지 않고 넓은 풀의 영화를 보려고 하는 편인데, 영화들을 보면 볼수록 항상 내 감상과 심미안에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든다. 매번 '이런 예술도 있구나.'라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가는 것 같다. 초등학생이 해놓은 낙서에서도 영감을 얻는 게 예술인데, '명확한' 정답이라는 건 없는 것 같다.
한 때 '뭐 이런 영화가 다 있나' 하는 생각을 하던 내가 이제는 '이런 영화도 있어야지'라는 생각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나 스스로도 참 흥미롭다. 예술을 대하는 눈도 그렇지만 나이가 들며 내 자아도 많이 변해가고 있지 않나 싶다.
오늘의 글은 당연한 듯 고집하는 자신의 스테레오타입에서 아주 조금만 자유로워지면, 세상에는 수많은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영화 요약 : '여고생 1명의 전투력은 잘 훈련된 특수부대원 2명과 맞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