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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독의 처절한 여정

<영화 : 반지의 제왕> 잡담 글

by 정민쓰





짧은 영화 잡담글_<반지의 제왕>




더 할 말이 있나. 무려 '반지의 제왕'인데.











영화에도 체급이란 것이 있다면, 판타지 장르에서 이 영화의 체급을 이길 수 있는 영화가 있을까?


덕후의, 덕후에 의한, 덕후를 위한 최고의 선물.

영화사에 족적을 남겼다 해도 과언이 아닌 '반지의 제왕' 트릴로지는 내 문화적 감수성에 상당 부분 관여하고 있기도 하다.










톨킨의 위엄과 <반지의 제왕>의 위치





톨킨이란 사람은, 이 사람이 창조한 세계를 연구하는 학파가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현재까지도 교과서처럼 나오는 이종족 및 이세계의 근간과 초석을 만들어 낸 사람이다. 현재는 톨킨의 후손들에게 까지 톨킨세계관이 세습되어 계속적인 세계관관리를 하고 있다는 게 얼마나 진심덕후력인지를 알 수 있게 한다.




현시점 지구를 기준으로만 봐도 다양한 세계사와 다양한 지역과 지형, 세부적인 부족들, 셀 수 없이 많은 언어들, 각지의 독자적인 문화와 신화, 동화 등등 다양한 요소들이 셀 수 없이 많다. 톨킨은 지금 앞서말한 모든 세상자체를 창조해 냈다. 이게 말이 되나. 실제 톨킨은 언어학자이자 문헌학자였으니 더더욱 깊은 견식으로 고퀄 세상을 만들어낸 것 같다. 배운 덕후는 무섭다.


영화 '반지의 제왕'은 사실 엄청난 톨킨세계 역사책의 극히 일부분을 담고 있다.

이원복 교수님의 '먼 나라 이웃나라' 중 미국 편의 진주만 부분이라던지, 삼국지의 '동탁토벌전' 부분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말도 안 되게 방대해서 어디부터 건드려야 될지도 모르겠는 톨킨의 세계관을 이렇게 성공적으로 영화화를 했다는 사실은, 알면 알수록 정말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여담인데, 개인적으로는 책으로 읽을 때는 톨킨 특유의 긴 수사법이 읽는 피로도가 심했다. 엄청나게 재밌는 책이니 꼭 읽으라고 추천을 하진 못하겠음 ㅎㅎ.....





가운데땅의 지도. 톨킨의 세상 중 특정 시대 땅들의 일부이다.









피터 잭슨의 위엄





절대 영화화가 될 수 없다고 말했던 톨킨 측 입장과는 다르게 피터 잭슨 감독은 영화화를 시도했다. 그리고 보기 좋게 성공. 어떻게 보면 긴 서사의 세계관을 다루는 장편 영화들에 트릴로지(3부작) 포맷을 신드롬처럼 불러일으킨 시리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활한 자연의 로케이션, 웅장함과 비장함과 정겨움을 표현한 수많은 명품 사운드트랙, 뽕맛이 넘쳐나는 전투씬과 명대사들, 모든 게 완벽한 영화다. 대서사에 할리우드의 문법이 가미될 때 이런 미친듯한 시너지가 나는 듯싶다. 영화와 관련된 다양한 후일담들은 이미 너무나도 유명하고 찾아보기도 쉬워서 구구절절 적진 않겠지만, 피터 잭슨 감독은 아무래도 파이오니어의 명칭을 듣기에 가장 적절한 감독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



개인적으로 너무 체급이 큰 영화라 오히려 소소한 평가나 잡담을 나눈 적이 많이 없는 영화인 것 같다.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워낙 마니아층과 덕후층이 공고하여 신앙과 같은 IP이기 때문에 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러운 탓일 것 같다.




엄청난 스케일을 자랑하는 이 영화의 서사는, <반지의 제왕>이라는 영화에만 국한하여 봤을 때 결국 '언더독의 반란'이다.

워낙 방대한 스케일이라 온전히 모든 내용을 관통하는 명제는 아니지만, 영화의 시작과 끝은 결국 '작은 것들을 위한 찬가'라고 생각한다.


반지를 운반하는 엄청난 과업을 짊어지게 된 '프로도'는 겉보기에 한주먹거리도 안되어 보이는 호빗종족이다. 호빗족의 키는 인간의 반토막인데다가 농사를 짓고 소소한 일상을 사랑하며, 마을 안에서 유유자적함과 농담 따먹기 같은 초식문화를 사랑하는 유순한 종족이다. 재밌는 포인트는 이 점에서 드러나는 것 같다. 강인하고 전투력이 높은 다른 종족들이 많지만, 그들은 모두 절대반지의 유혹을 장시간 이겨낼 수 없다는 점. 가장 순하고 선한 호빗족이야말로 높은 악에 대한 저항성을 갖고 있기에 프로도가 가장 중책인 '반지 운반자'가 되었다는 점이 그렇다.




영화 속 악의 세력은 굉장히 막강하다. 언더독은 프로도만이 아니다. 악의 세력을 제외한 나머지들도 마찬가지이다. 나름의 세속적인 이유나 역사적, 관계역학적인 이해관계로 각 종족이나 국가들은 하나로 뭉칠 수 없었다. 이들이 공통된 악을 처단하기 위해 하나로 뭉쳐가는 서사 또한 이 영화의 관전포인트 (ex. 서로 앙숙인 종족이었으나 마지막에 최고의 친구가 된 레골라스(엘프)와 김리(드워프)) 중 하나이다. 우정, 사랑, 화합, 투쟁, 모험, 용기, 희망 등 다양한 인간사의 메시지들이 영화를 보는 내내 큰 감동을 준다. 그 정점이 특히 마지막 넘버링인 3편 '왕의 귀환'에서 미친듯한 뽕맛으로 다가온다.




상술했듯 악의 세력은 매우 막강하게 나온다. 이들 또한 나름의 연합군을 형성하고 있는데, 그들의 무력에 저항하는 주인공 측 연합군의 처절함이 매우 잘 표현되어 있다. 정말 처절하다. 죽음을 각오하고 오직 인류의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불태우는 대군의 진격장면은 마음속에 어떠한 불씨를 지핀다. 몇 번이나 영화를 다시 봐도 항상 뜨겁게 타오르는 그 느낌은 기나긴 러닝타임 동안 쌓아 올린 서사가 얼마나 훌륭한지를 방증한다. 3편이라는 긴 러닝타임이 독이 아닌 득이 되는 모범케이스이다.




'김리 :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전투에 요정과 함께 싸우다 죽을 줄은 몰랐다.' / '레골라스 : 그럼 친구와 함께 싸운다고 하는 건 어떤가?' / '김리 : ....그건 좋군.'









난 아직도 <반지의 제왕>을 사랑하고, 몇 번이나 재 시청하더라도 그 감동에 전율한다.


프로도의 여정은 외로운 싸움을 해나가는 우리 각자의 모습이고, 우정과 사랑으로 뭉친 반지원정대 및 군대의 전투는 이 사회 속에서 함께하는 우리들의 싸움이다. 미약한 개개인으로서의 자신은 사실 누구보다 강하게 각자의 악과 싸워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든든한 친구와 동료들이 있기에 우리는 험난한 세상에 한 치의 의심 없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만화 <천원돌파 그랜라간>의 유명한 대사가 문득 생각난다. '너를 믿지 마. 너를 믿는 나를 믿어'











우리 각자의 숙적들은 태산처럼 어마어마해 보이겠지만, 그곳에 돌격하는 우리들이야말로 더욱 어마어마한 존재들이다. 모두 톨킨의 세계만큼 커다란 각자의 세상이 있을 것이다. 모두 승자의 역사를 쓸 수 있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첨언하여, 프로도는 반지를 파괴한 후 '어떤 상처는 낫지 않기도 한다.'라는 독백을 하며, 안식과 불멸의 땅인 발리노르로 떠난다. 이것이 정년퇴직한 노후 아닐까? ㅎ.ㅎ




발리노르로 떠나는 배. '어떠한 상처는 아물지 않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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