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주유소 습격사건> 잡담 글
짧은 영화 잡담글_<주유소 습격사건>
세기말의 젊음은 야생마와 같다.
내가 만약 영화감독이라면?
날뛰는 호쾌한 젊음과 억눌린 미성숙함이 만들어낸 화(火)를 어떻게 영상으로 표현하려고 할까?라는 생각이 든다.
<주유소 습격사건>은 희한한 영화다. 신나기도 하고, 돌아이같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한데, 찝찝하기도 하다. 하나 확실한 건, 99년 세기말 영화로 상당한 파격을 선보인 영화임에는 확실하다. 천년에 한번 생기는 시너지를 받은 영화. 이전에 영화 잡담을 한 적 있는 <파이트클럽>에 이어 본의 아니게 잡담글을 쓰게 된 두 번째 세기말 영화이다.
특이점
사람에 따라 감상과 그에 따른 즐거움은 다르겠지만, 기존 이 영화를 안 본 세대가 지금 2025년 시점에서 이 영화를 오직 재밌자고 보기엔 어느 정도 무리가 있을 수도 있겠다. 요즘 유튜브나 코미디 추세와는 다소 톤이 다른 코미디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미세하게 성룡식 유머에 가깝다고 해야 하나? (그게 재미없단 뜻은 아니다.) 하긴 근데 어찌보면 수위가 쎈 두시간짜리 코미디빅리그 같기도 하다.
난 개인적으로 코미디적 톤앤매너에 대해서, 세련됨으로 넘어가는 중인 클래식함을 느꼈다. 이 또한 세기의 전환점이었을 수도.
이 영화는 불도저같이 전개된다. 대단할 것 없지만, 대단하다.
특별한 설명도, 스토리텔링도 없이 시작부터 웬 양아치 네 명이 냅다 한 주유소를 개박살 내며 시작한다. 양아치 사인방의 이름은 '노마크, 딴따라, 무대뽀, 페인트'이다.
빨주노초파 알록달록한 차림의 양아치 네 명은 비주얼만으로도 엄청난 생동감을 지닌 인물들임을 한눈에 보여준다. 이들의 폭동과 같은 행보는 큰 이유가 없다. '그냥'.
여기서부터 무언가 묘한 이질적인 감각이 들며 영화를 보게 되었다. 심지어 극 중 인물들의 이름도 없다. '깔치, 건빵, 샌님, 페인트, 딴따라, 노마크, 무대뽀, 사장 등등..'. 이 영화는 척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세팅을 맞춘 후 마음껏 폭주하도록 야생마들의 고삐를 풀어놓았다.
희한할 정도로 막 나가는 주인공 양아치 네 명은 무뢰한에 폭도들처럼 보인다. 이들은 존재 자체로 한 명 한 명이 날뛰는 젊음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스토리는 생각보다 난잡해 보여도 뒤로 갈수록 꽤 완성도 있게 맞춰진다.
풍자는 의미심장하고, 여우처럼 영리해야만 할까?
<주유소 습격사건>은 매우 직접적이고 말초적인 직구만 던진다. 떄리고 부순다.
어떤 면에선 무식하게 영리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곡해의 소지조차 없이 직접적인 맞짱으로 들어오니까. 성품 최악의 경찰관들, 무례한 기성세대, 발랑 까진 게 자랑인 줄 아는 철없는 건달들 등, 꽤나 직접적인 악인들이 등장하기에 사실 애당초 이게 풍자인지 그냥 이런 스토리인지도 헷갈릴 정도다.
주인공들이 애당초 매우 나쁜 놈들이기 때문에, 시나리오에 따라 계속해서 나쁜 놈들이 등장해도 선악 간의 긴장 따위가 없는 게 이 영화의 독특한 포인트다. 약간 '이이제이'의 특이점이 온 영화라고 해야 할까.
이 영화는 불량배가 불량배를 패는 영화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름의 드라마가 있다. '죽어도 해.'라는 '무대뽀'의 압박에 강제로 학교 짱과 맞짱을 뜬 '건빵'은 겁내던 것이 무색하게도 생각보다 쉽게 학교 짱을 이겨버렸다. 동네 양아치무리들은 '딴따라'가 강제로 노래를 시키자 생각보다 엄청난 노래실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모든 과정이 살아있는 젊음이다.
상징의 4인방, 그리고 묘한 불쾌감
주인공 4인방의 특징은 뚜렷하다. 개개인별 서사가 있고 각자 고유의 캐릭터성을 영화 내내 보여준다. 4인방의 캐릭터성이 영화의 주축이 되기에 이는 시나리오를 더 풍성하게 해주는 요소다.
'노마크'는 부모와 관련된 말에, '딴따라'는 음악이 없으면, '페인트'는 어려운 말을 쓰면, '무대뽀'는 무식하다는 말을 들을 때. 이렇듯 각자 다른 트리거로 이성을 잃고 발작한다. 이 역시 4인의 캐릭터성을 극명히 보여주는 요소인데 이 점이 영화를 보다 보면 퍽 흥미롭다.
'그냥' 주유소를 터는 4인방의 극악무도한 폭력성은 아주 '그냥'만은 아니다. 이들은 모두 모난 돌이고 편견 속 이단아로서의 개인이며, 기성세대, 사회부조리의 피해자들이다. 억눌린 젊음의 상징인 그들은, 아주 극단적으로 주유소라는 작은 세상에서 그들의 혁명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다만 영화라는 수단이기에 극단적인 <주유소 습격사건>으로 표현되었을 뿐이고.
하지만 상식적이지 않은 그들의 사고방식과 행동들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내용이 지극히 범법적인 범죄들로 이루어졌기에 영화적 상징성을 염두하고 보아도 다소 불편한 건 어쩔 수가 없다. (순수히 시각적으로)
<구타유발자>의 펑키한 버전이라고 해야 할까? 결은 좀 다르지만.
난, 한 놈만 패.
이 영화는 단어 그대로 천년에 한번 나오는 영화이다.
그럴 수밖에, 2000년 밀레니엄을 목전에 둔 세기말의 감성을 듬뿍 담았으니까. 영화 속 4인방과 수많은 무뢰배들, 건달, 왈패, 꼰대, 못난 어른들 등등의 모든 이들은 단순한 인물이 아닌 '시대' 그 자체이다.
모든 시대의 주역들을 주유소라는 한 무대에 모아놓고 윽박지르고 부수고 소리 지르는 아사리판을 상상해 보라. 이건 시대의 격동이고 젊음의 파고요, 프레임을 직접적으로 깨버리는 포스트모던이며 Y2K의 신호탄이다.
가엾고 못돼 먹은 4인방의 영화 속 무대는 회상신을 제외하면 전적으로 주유소이다. 일련의 사건 끝에 그들은 결국 오픈카를 탈취하여 주유소라는 작은 세상을 나와, 새벽의 도로를 질주하며 영화가 끝난다. 그 시원함은 영화에 깔린 노답상황의 해소 이상의 시원한 것이었다.
깨부순 세상에서 나온 그들의 앞날에는 어떤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을까.
변화하는 시대는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
사회와 시대가 계속해서 쏘아대는 총알탄들은 우리에게 끊임없는 상처를 준다.
곪아있는 상처는 어떤 식으로든 결국 터질 것이고, 터진 상처는 새로운 국면으로 우리의 삶을 이끌 것이다. 투쟁하고 부수는 것이 능사는 아니지만 '무언가에 억눌려있는 무언가'를 간접적으로, 추상적으로나마 드러내주는 영화의 매력은 이래서 도무지 끊을 수가 없다. 좋은 작품이 더 많아져야 할 텐데.
아무튼 뽕이 차오르는 영화의 OST를 듣고 영화의 엔딩을 보며, 다들 마음속에 어떠한 가오를 충전하길 바란다. 무언가 가슴속이 답답하고 참고 사는 것에 익숙해진 우리들은 절대 약해서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우린 다들 언제 주유소를 털지 모르는 사람들인데, 참아주니까 한도끝도 없이 까불고 긁어대는 무뢰배들은 언젠가 크게 한 번 혼날 거다. 내가 장담함.
모두 기운차게 역동의 시대를 살아갈 수 있길 바라며 글을 마무리한다.
필요하다면 모두 주유소를 습격할 용기를 가질 수 있길.
<주우소 습격사건> 추천 OST <쉘 - 작은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