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키사라기 미키짱> 잡담 글
짧은 영화 잡담글_<키사라기 미키짱>
선생님들. 무슨 마음인지 압니다. 무슨 생각하시는지 압니다.
다소 의아하실 순 있겠지만 저 믿고 한 번만 봐주세요
<키사라기 미키짱>
12년도 쯤이었나?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꽤나 오래전 보았던 영화로 기억한다.
그때 받았던 영화에 대한 충격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아서, 바로 어제 브런치 리뷰도 할 겸 한번 더 시청했다. 역시 다시 봐도 기가 막히는 정교한 시나리오의 영화였다. 시나리오나 플롯, 내러티브를 공부하는 영화학도가 공부용으로 보기에도 아주 좋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이 영화에 대한 추천을 처음 받고 영화의 제목을 봤을때 들었던 생각은... 아무래도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이 느꼈을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아니 제목이 왜 이러지?'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영화의 특이한 제목조차도 발칙함과 키치함, 펑키함으로 느껴질 것 같다. 속는 셈치고 한번 봐보시길. 이거 진짜 좀 칩니다.
포맷에 대해
해당 영화의 포맷은 '영화로 확장된 연극'이다. 증강현실(AR)처럼 증강연극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유명한 옛날 영화 중에 <12인의 성난 사람들>이라는 영화가 있는데, 전적으로 잘 짜여진 대본으로만 흐름을 이어가는 대표적인 영화이다. <키사라기 미키짱>은 <12인의 성난 사람들>의 오타쿠버젼이다.
연극 시나리오는 상당히 영리하게 구성해야만 한다. 소수의 고정된 인원, 그리고 고정된 세트배경은 넓은 범위의 다이내믹을 구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한정된 공간,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극을 계속해서 생동감있게 이어간다는 건 정말정말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이다. 그 모든 디메리트를 상쇄하는 영리한 대본과 동선을 짜야만하는게 연극의 숙명이다.
요약하자면, 같은 책상에 같은 사람들이 앉아서 두시간동안 떠들고 있는 걸 보는 것이 재밌으려면 반드시 탄탄한 대본이 필수불가결이란 것이다. 계속해서 터져나오는 사건들의 전말과 이면, 그리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다음 전개로 이어지고 그 이후를 계속해서 기대하게 만드는 구성까지, 대본의 탄탄함 속에서 빠짐없이 갖춰져야만 한다.
<키사라기 미키짱>은 연극의 특성을 보일지언정, '영화'이다. 연극의 포맷을 가용하면서도 연극의 단점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기에 무결점 연극과 같다. 대표적으로 전혀 다른 공간에서 일어난 과거의 회상씬이라던지, 작품 속 소품의 디테일이라던지.
(여담으로 지금 글쓰면서 알게 된건데, 아니나다를까 진짜 연극버젼도 있었다. 심지어 국내 연극도 있었음.)
영화는 1년전 의문의 자살사고로 사망한 아이돌 '키사라기 미키'의 1주년 추도회에 모인 팬 5인의 담화로 시작하고, 끝나는 내용이다. 시놉시스는 이게 끝이다.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는 간단한 시놉시스로 이런 알찬 구성을 뽑아낸다는게 놀라웠다. 대사와 행동들만 주고받지만 희한하게 한 순간도 '멈추지 않게' 구성되어 있다.
다만 오덕요소가 살짝 있고, 이에따라 손발이 오그라드는 포인트가 있는데 오히려 이 또한 꽤 재밌는 요소이다. 일본아이돌의 팬들이 모였다는 설정부터 노골적인 부분이지만 오히려 일부러 더 뻔뻔하게 밀고가니까 오히려 웃겼다. 그리고 일본 특유의 호통치고 소리치는 상황강조식 개그도 이 영화에선 꽤 재밌었다. 마치 웃을때까지 들이미는 뻔뻔한 부장님개그처럼.
극한의 플롯
내러티브의 정점
조만간 한 번 리뷰를 할 생각이지만, 요즘 아주 핫한 <진격의 거인>이 정교한 플롯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호평의 안에서 플롯 외에도 액션, 명대사, 뽕맛 등등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인 호평을 받고 있는데,
<키사라기 미키짱>은 그 여러가지 중에서도 정교한 플롯을 아주아주 극대화한 작품이다.
플롯과 내러티브는 시나리오에선 거의 전부라 할 정도로 중요한 요소이다. 해당 개념들에 대해 다들 의미는 알지만 느낌을 못 잡겠다면 이 영화를 보면된다.
극의 흐름은 아주 유기적인 플롯에 의해 흘러간다. '키사라기 미키'의 사망을 추도하려고 모인 다섯 남자가 그녀의 자살에 대한 의문점을 던지며 본격적인 플롯 차력쇼가 시작된다.
아이돌의 자살사건이라는 큰 줄기에 5인의 팬들의 개인적인 시각과 경험들이 정교하게 점점 아귀가 맞아가는 과정이 상당히 흥미롭다. 단순히 늘어놓기만 해도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인데, 사건의 진상이 밝혀져 나가는 쾌감이 상승작용 할 수 있도록 인물들의 행동과 실체가 밝혀져가는 순서들을 배치해 놓았다.
분명 영화짬밥이나 눈치가 좋은 분들은 유추하고 예측하면서 보겠지만, 장담컨대 분명히 두번 이상은 경악하면서 볼 것 같다. 난 심지어 이미 봤었는데도 육성으로 감탄을 내지르며 보았다.
난 정석적이고 탄탄한 영화의 기본기를 느끼거나 공부하려면 사실 헐리웃영화가 좋다는 주의이다.
상업영화는 대중용, 전위적인 예술영화는 숙련자용코스라고 친다면, 일본영화는 조금 특별한 깍두기코스다. 정답은 이미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일부러 오답을 배치하여 장난을 친다거나, 영화의 특정 요소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 기상천외한 장난들은 일본영화만의 펑키함을 선사한다. 전라도의 아귀처럼 노름판에서 또다른 노름을 하는 거라고 해야할까. (ex. 일본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 외화감독 중엔 나이트샤말란이라던지.)
영화에 대해 잡담하는 이 브런치북의 첫 글이 <살인마 잭의 집>이었다. 그 영화는 미장센이 강렬했던 영화의 예시였다. 그리고 지금 글인 <키사라기 미키짱>은 플롯이 강렬했던 영화로 좋은 예시인 것 같다. <프리즌브레이크> 시즌1이나, <진격의 거인> 같은 예시와 비슷한 느낌을 생각하면 된다.
일본 아이돌문화에 대해 관심도 없고 애정도 없지만 이 영화에서만큼은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물론 아이돌문화를 설명하려는 영화는 아님.) 오히려 아이돌이 왜 아이돌인지. 아이돌을 왜 사랑하며 오타쿠가 되는지. 어렴풋이 느껴지기 까지 하는 포인트들도 있다. 진짜진짜 이상하게 이 영화에는 감동이 있다. 아니 대체 왜 감동적인거지 이거.
<키사라기 미키짱>은 말초적인 재미도 있지만, 흥미롭게 재밌다는 점이 포인트이다.
이 영화가 숨기고 있는 어택포인트들을 정확히 느끼기 위해선 절대 다른 리뷰들을 보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공식 줄거리도 마찬가지다. (몇몇 공식 줄거리에서도 스포가 있는 것을 확인)
그리고 또 신기했던 것 중에 하나는 연재중인 내 또다른 브런치북인 <습작소>의 이야기들도 뭔가 전반적으로 <키사라기 미키짱>같은 플롯을 많이 함유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십 몇년전 봤던 영화가 은연중에 나의 문학적 사고에 큰 영감으로 뿌리내리고 있었나보다. (그런 의미에서 제 '습작소' 많이 봐주세요....)
영화를 보게되면 알겠지만 알면 알수록 미키짱은 정말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나도 미키짱 팬 할래. 나도 다음 추도회에 초대해줘. 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