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굿 뉴스> 잡담 글
짧은 영화 잡담글_<굿 뉴스>
오랜만에 만난 수작.
시나리오 작가의 꿈이 큰 벽을 마주하다.
어쩌다가 아카이메가네 동진좌가 4점 이상을 주셨을까.
도저히 손이 안 가던 영화를 클릭하게 한 매직은 동진좌의 4점과 영화계의 입소문, 이제는 브런치연재를 해야 하는 압박 등등이 있었다.
여러 여러 이유로 보게 된 이 영화는 엄청난 벽을 느끼게 했다. 캬... 이게 영화지. 언젠가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다짐하던 나는 그저 영화애호가 정도인 범부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진실은 간혹 달 뒷면에 존재한다.
그렇다고 앞면이 거짓은 아니다.
'아무개 (배우 설경구)'는 명언쟁이다.
영화 내내 의미심장한 명언들을 던지는데, 하나같이 영화의 주제 의식을 관통하며 그 말의 두루뭉술함을 이후 영화내용으로써 구체화한다. 기가 막힌다.
허투루 쓰이는 요소가 없다. 작고 디테일한 개그요소도 놓치지 않기에 생각보다 뻔해질 수 있는 영화 대전제의 무게를 조절해 준다. 영화의 익살스러운 코드들과 화면 자체가 보여주는 톤은 전체적으로 올드함을 세련되게 다루고 있어 묘한 이질감을 주었다. 가치의 상충, 출세와 윤리의 이지선다, 이데올로기 갈등, 하이재킹과 협상심리전..... 자칫 이 모든 게 지리멸렬해지고 뻔해질 수 있었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구성했을까? 내가 시나리오를 썼다면 이 정도로 구현해 낼 수 있었을까? 그야말로 프로씬의 벽을 느꼈다.
아무개
이 영화는 영화 구성 상에서 영리함과 기민함이 화면을 뚫고 직접 뇌로 다가온 영화였다.
브로드하게 보면 이 영화는 수수께끼의 인물 '아무개 (설경구 역)'의 수수께끼 같은 행동들로 국면이 계속 전환되는 형태이다. '아무개'라는 인물은 순수히 극 중 인물로서 영화의 서사를 부여하기도 하고, 동시에 시나리오적 장치의 역할까지도 효과적으로 수행한다. 해설자이기도 하면서 때론 전지적이기까지 한 이 인물은 영화의 구조면에서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실화기반의 베이스는 차치하고 영화자체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영화는 한 인물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누군지 명확히 설명조차 해주지 않는 '아무개'가 의미심장한 글귀를 읊고 적당히 사부작거리면서 시작한다. 예능화면처럼 영화문법스럽지 않은 자막과 화면으로 시작하는 점이 제법 힙했다.
아무개는 어떠한 함의가 담긴듯한 오묘한 명언들을 읊으며, '고명 (배우 홍경)'을 앞에 내세운다. 그리고 그를 시험하듯 깐죽거리고 해결책과 동시에 새로운 문제로의 플롯트리거를 던져준다.
'아무개'는 영화 속에서 플레이어로서 굉장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사실상 게임메이커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데, 전반적으로 암약을 하며 '고명'을 기가 막히게 서포트한다. 그 과정이 상당히 영리하고 영악해서 순수하게 그의 이어질 다음 행보나 개입이 너무나도 기대가 되었다. 극의 내외부를 왔다 갔다 할 정도로 특이한 캐릭터빌딩이 역시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일 것 같다. 이 영화가 직접적인 '아무개'의 고군분투를 다루었다면 이렇게 재밌진 않았을 것 같다.
때론 진실도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거짓말도 진실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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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曰 : '그래.. 알게 뭐냐.'
얼핏 고루할 수 있는 논쟁거리들이 이렇게 세련된 이유가 뭘까? 여러 미장센도 분명 훌륭한 영화이지만 영화의 유머보법이 계속해서 극의 완급을 가지고 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성룡영화를 떠오르게 하는 유머도, 슬랩스틱도, 일본식 과장된 쏘시오드라마나 담화식 유머들도 모두 나타나는데, 이게 참 애매했다. '재밌는 건가....?' 싶다가도 영화를 보다 보면 흥미로운 내러티브가 이것들을 그냥 재밌게 만들어버렸다고 해야 할까. 아무래도 재밌는 판이 깔린 이후부터는 무슨 짓을 해도 재밌으니까.
인물들의 자조적인 모습은 '웃긴 씁쓸함'을 유발하고, 그들의 어딘가 하나씩 나사 빠진 면들이 강조되며 유머가 아닌 것도 유머로 만든다. 블랙코미디의 본질이다. 유쾌함이 극을 관통하고 있지만 어딘가 100% 상쾌하진 않다는 것이다. '아무개'는 걸어 다니는 스탠드업 블랙코미디쇼의 사회자가 아니었을까. 때론 직접적으로, 때론 간접적으로.
시민을 포로로 하이재킹을 한 폭도들과 사업체 및 국가 높으신 분들의 실리를 재는 심리싸움들이 분명 나오지만 이건 영화 속 크고작은 콘텐츠이자 사이드디쉬정도라고 생각이 든다. 사실 메인디쉬는 협상심리쇼보다는 그 안을 관통하는 대주제가 아닐까 싶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영화의 메시지가 감상적인 포션이 더 크다고 느낌)
사람, 혹은 사람들의 눈에 셀로판을 씌우는 언변과 언론공작. 어찌 보면 프로파간다적 원리를 영화적으로 강의해 준 재밌는 명강의 같기도 했다. 그 메인디쉬를 깔고 '블랙코미디와 스파크 튀는 대화들'이라는 서브메뉴들이 감칠맛을 효과적으로 내준 듯하다.
요컨대, 자극적인 메뉴들이 많이 있지만 사실 진짜는 '메뉴'가 아닌 '식당'자체였다는 것.
이념 VS 신념
강한 이념에 대해 죽음도 불사하는 의지를 보여준다면, 어지간한 사이코라도 납득은 못할지언정 이해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극단적인 행동자체가 일종의 호소이므로.
이 영화는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는 사람들의 이념'과 '잃을게 많은 사람의 신념'이 부딪히는 영화이다.
그리고 그 판단의 눈을 가리고 환각 시키는, 진실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고도화된 거짓공작의 테크닉 쇼이다.
배수진을 치고 모든 것을 걸었다는 건 분명 대단한 일이다. 그들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 보면 배수진의 케이스와 반대로 뒤에 많은 책임을 짊어진 사람의 극단적인 선택 또한 대단하다. 잃어야 하는 것, 취할 것에 대한 저울을 부수고 오직 신념을 지키기 위한 선택을 한다는 것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닐까 싶다.
사회문화적인 현상들은 워낙 변화무쌍하고 제 멋대로기에 제 아무리 저명한 사회학자들이라고 해도, 사회현상 앞에 결국 코끼리 만지는 맹인처럼 되어버리곤 한다. 그렇기에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들의 집단적인 지성과 행동을 개미행렬 구경하듯 바라보는 일은 꽤나 흥미로울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은 공통의 무언가로 동질을 느끼고 자연스레 군집을 형성한다. 모여있는게 생존에 유리하니까. '무리로서의 개인'은 단독으로 있을 때 보다 훨씬 더 사회적 테크니션을 요한다. 무리를 형성한 인간은 용감해지고 그만큼 우매해지기 때문이다. 군중의 가운데에서는 내가 속한 무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볼 수가 없다. 그러니까 가끔은 까치발을 들고, 혹은 반 보 정도만 뒤로 물러나서 내가 속한 무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중간점검 정도는 해주는게 아주 중요하지 않을까? 우매해지기 싫다면. '아무개'같은 사람이 언제 등장해서 호구 잡을지 모르니까.
'난 이미 이렇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어.'는 정말 위험하다. 나중엔 정말 내 자신조차 속이고 더이상 처음 무리를 형성했던 이유는 중요해지지 않은 채 '알게 뭐냐'로 변모하게 된다.
집단지성에 휩쓸려 생각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적어도 내가 봐온 한국사회는 너무나도 갈 길이 멀다.